몽골시위, 희망적 미래와 짜릿한 흥분

[몽골리포트] 첫 정치적 집단행동에 고무된 듯 환영 분위기

윤경효 | 기사입력 2008/07/10 [15:45]

몽골시위, 희망적 미래와 짜릿한 흥분

[몽골리포트] 첫 정치적 집단행동에 고무된 듯 환영 분위기

윤경효 | 입력 : 2008/07/10 [15:45]
6월 29일은 일요일. 몽골 총선이 있었다. 여당(인민혁명당)의 부정선거시비로 울란바타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투개표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전언. 개표가 완료되기도 전에 인민혁명당이 구체적인 의석수까지 밝히면서 승리를 선포한 것이 화근이 된 듯하다. 그 와중에 한 개표요원이 뇌물을 먹었다는 고백도 이어져 몽골 언론에서 난리가 났었다.

그 뒤 이틀간 인민혁명당사 앞에서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는데, 300여명의 부상자가 나고 몇몇 외국기자들도 다친 것으로 보도됐다. 홍수피해를 입은 성긴 조림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수흐바타르광장을 지나는데, 시위대가 인민혁명당사를 향해 돌을 던지고 유리창을 깨는 모습이 보였다. 몽골역사상 시위하는 것이 처음이라더니, 한 무리의 시위대와 그 시위대를 구경하는 시민들로 수흐바타르광장이 꽉 찼다.
 
▲ 인민혁명당사 앞에서 시위하는 시민들과 불에 탄 인민혁명당사 그리고 계엄령으로 서커스경기장 앞 서울의 거리에 탱크가 들어선 모습.     © 윤경효

 
책에서 봤던 ‘비상계엄’ 첫경험
 
결국 2일부터 사흘간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언론이 통제되고 주요도로에 탱크가 들어섰으며, 밤 10시부터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책에서나 봤던 ‘비상계엄’을 몽골에서 경험하다니...

살벌한 분위기를 예상한 것과는 달리, 울란바타르 시민들의 모습은 평화롭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늘씬한 몽골여인네들이 깔깔거리며 탱크 옆을 지나다니질 않나, 밤 10시부터 통행금지라는데도, 택시가 돌아다닌다. 하긴 수흐바타르광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내 사무실에서도 전혀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 왼쪽부터 세케, 다와 팀장과 여자친구, 그리고 보양아저씨. 4만원을 들여 성긴조림장에 간이샤워장을 만들어 놓고 자랑하는 아저씨의 얼굴에 행복이 묻어난다.     © 윤경효

 
역사상 첫 비상계엄령이라더니, 비상계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몽골인 특유의 대범함으로 심각한 상황을 부드럽게 넘기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몽골의 지식인들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역사상 첫 시위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그것이 폭력으로 얼룩지고 단발에 그친 것에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적인 집단행위를 했다는 것에 고무된 것 같았다.

그동안 몽골의 부패된 정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박정희와 같은 강력한 리더가 나타나야 할 것 같다며 시민운동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그들이었다. 비록 정치적인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 소극적인 지식인들이 많지만, 이번의 시위가 몽골의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나에게도 짜릿한 흥분을 던져주었다.
 
▲ 군포의제와 충남의제 관계자들이 바양노르 조림장을 찾아 후원기념식을 하고 있다. 나무가 무럭무럭 잘 자라라고 몽골식으로 기원식을 치렀다.  © 윤경효

▲ 16명의 의제관계자들이 바양노르 조림장을 찾아 하루 종일 하르간을 제거하고 나무 주변 흙 고르기 등 자원봉사를 했다. 점심 뒤에는 축구게임도 가졌다. 손에 손잡고 한국 노래 한곡, 몽골 노래 한곡을 부르며 마음을 나누었다.     © 윤경효

▲ 한국인은 수건으로, 몽골인들은 보드카와 초콜릿으로 고마움을 나누고 있다.     © 윤경효

 
몽골특유 대범함으로 위기극복
 
5~6월 조림사업과 에코투어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놓치고 지나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 조림장 관리문제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각 사업장 매니저들에게 언성을 높인 적도 있고 소소하게 언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돌아보니 사람들을 너무 닦달한 것은 아닌가 싶다.

다와 팀장과 관리문제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최근 소극적으로 변한 세케와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단체를 운영하는 것에 많은 재능과 노력을 요한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끼와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최고의 ‘심부름꾼’이 되리라 마음먹었건만, 매 순간 나를 버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구나.

실무자일 때는 내가 중심이었지만, 운영자인 지금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의기소침해진 사람은 없는지, 너무 앞서가는 사람은 없는지, 개인적인 사연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는지, 소통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 새벽 4시, 어둠을 헤치고 엘승타사르헤(바양고비) 돌산(약 2,000m)을 등반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막과 초원의 모습. 몽골의 옛 수도 하라호린에 있는 에르덴죠사원(라마불교) 안에서 몽골 전통군복과 평상복을 입고.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분명 말달리고 활을 쏘던 북방민족이 맞나보다.    © 윤경효

▲ 에르덴죠사원에서 약 10km 떨어진 산등성이에 위치한 ‘남근바위’. 아가씨들이 사원근처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라마승들이 설치했단다. 어찌나 지대로 만들었던지... 호호홍*^^* 세케와 함께 남친 만들어달라고 소원 빌다...ㅋ     © 윤경효

 
엘승타사르헤에 머물고 있는 유목민을 방문해 그의 생활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는 마차로 일주일 넘게 이동했다는데, 요즘은 문명의 이기덕택에 트럭으로 2~3일 만에 이동한다고. 500여 마리의 가축을 기르고 있는 이 유목민은 여름동안 이곳에서 머물다가 9월이 되면 동북쪽으로 이동할 거라 한다.
 
때론 달래고, 때론 윽박질러가면서 다시 함께 어깨동무하고 ‘으쌰, 으쌰’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역할...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지 잘 모르겠다. 세심하게 배려해야하는데 행여나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지 동료들의 눈을 볼 때마다 그들의 눈에서 방향을 찾고 있다.
 
“나를 버리는 게 쉽지 않구나”
 
아울러 지난 6월 23일부터 엿새간 군포의제와 충남의제 관계자들이 몽골로 에코투어를 왔다. 오랜만에 옛 동료들을 만나니 눈물겹게 반가웠다. 기후변화문제로 연수를 왔다지만, 갑자기 몽골로 와버린 나를 격려하기 위해 어렵게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짧은 일주일 동안 예전처럼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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