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싹 다스리려 새벽까지 수놓아”

[몽골리포트] 조림작업 준비하느라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

윤경효 | 기사입력 2008/05/06 [13:32]

“불신 싹 다스리려 새벽까지 수놓아”

[몽골리포트] 조림작업 준비하느라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

윤경효 | 입력 : 2008/05/06 [13:32]
▲ 시내 중심가를 오가는 울란바타르 시민들. 낮 최고기온이 어느새 20도를 육박하고 있다. 성질 급한 어느 여인네는 벌써 민소매 옷을 입고 있다.     ©윤경효
비자문제 때문에 잠시 한국에 다녀온 사이, 울란바타르는 어느새 봄기운이 그득하다. 여인네들의 옷들이 가벼워지나 싶었더니 어느새 시내 검은 물결이 밝은 색으로 바뀌었다.

5월에 본격적으로 진행될 조림작업 준비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출장을 다녀오자마자 4/14(월)~4/20(일)까지 방문하는 YMCA 조림투어팀을 맞이하느라 활동가 한명을 바양노르사업장에 파견 보내고, 트럭 고치랴, 고장 난 우물펌프 수리하랴, 조림 협약식 프로그램 협의하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발바닥에 땀나게 뛰었다.

올해, 바양노르 사업장 규모를 확장하면서 작업용으로 사용할 중고 1톤 트럭을 샀는데, 이게 오자마자 몸살이다. 바양노르로 내려가는 도중 차가 엔진과열로 다시 돌아와, 판매업자한테 따지고, 몽골정비공과 한국정비공까지 총동원하여 다시 수리하고 점검한 후에 다시 출발시켰는데, 글쎄 얼마 못가 또 엔진과열로 돌아왔다.

여인들 옷 가벼워지나 싶더니...

라디에이터에 잔뜩 낀 먼지 때문이란다. 정비공들도 설마하고 간과했었던 모양이다. 몽골사람들 못 믿겠다고 잔뜩 예민해지셨던 이재권 전문위원도 맥이 빠지셨는지 어깨가 축 쳐졌다. 어쨌든, 이 트럭 때문에 지난 4/12(토)에 바양노르로 내려가야 했던 이재권 위원은 5일이 지난 뒤에서야 겨우 살림살이를 옮길 수 있었다.

▲ 오자마자 말썽을 일으킨 트럭. 액땜했다 칠 테니 앞으로 10년 동안만 무탈해다오.     ©윤경효
차량정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내가 이제는 기본 구조를 다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위로를 삼아야 하나? 헐~

쉽게 가는 일이 없다. 트럭이 내 발목을 잡더니, 우물이 뒷덜미를 잡아챈다. 몽골에서 7년 동안 잔뼈가 굵은 한국의 우물시공업체에 바양노르 우물 공사를 맡겼는데, 1차 작업시 난색을 표하더니,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바짓가랑이 붙잡고 어떻게 해서든 뚫어달라고 애원했지만, 우리 기술로는 더 이상 뚫을 수가 없단다.

지하 75m지점에 있는 암반층까지 가려면 30m 깊이의 모래층과 45m 깊이의 단단한 진흙층을 지나야 하는데, 이 진흙층이 얼마나 단단하게 서로 엉켜있는지 퍼 올릴 수가 없다는 거다. 지난 7년 동안 몽골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600여 개의 우물을 팠지만, 이런 토질은 처음이라나...

“중고트럭 말썽에 또 말썽”

러시아 기술로 파면 가능할 것 같은데, 공사기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 한다. 건실한 업체를 소개해 주기로 하고 일단 철수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우물 공사를 위해 몇 곳의 건실한 몽골업체에 견적을 의뢰했었는데, 바양노르라 하니, 모두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진인사대천명... 오늘부터 고사를 지내야하나... 쩝...

사람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불신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묘목구입에서부터 트럭구입까지 몽골사람들과 거래하면서 혹시 속이는 것은 없는지 살피고, 또 살피고... 한국에서 힘들게 모금해 온 돈이 행여나 엄한 곳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신경쓰다보니, 몸도 마음도 반쪽이 되어버렸다.

▲ 친구들한테 선물도 하고 마음이 번잡할 때 정리도 할 겸 서울출장 갔을 때 십자수 재료를 잔뜩 사왔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3달 동안 쿠션 4개     ©윤경효
언어도 다르고 시장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하다 보니, 계약을 해도 판매자가 주도하게 된다. 행여나 바가지를 썼을까봐 있는 인력을 총동원해 재확인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도 걸리고 진이 다 빠진다. 왜 외국에 나가면 오히려 사기당하는 경우가 많아도 자국 사람들끼리의 상거래를 선호하는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마음속에 커져가는 불신의 싹을 다스리기 위해 퇴근하고 돌아와 새벽까지 수를 놓아본다. 아무생각 하지 말고 그저 하회탈만 같아라, 같아라...

“가장 피곤하게 하는 게 불신”

일요일, 일기를 쓰고 있는데, 어제 한국으로 갔어야 할 YMCA 조림투어팀이 항공기 결항으로 출발을 못해 윤전우 팀장과 몇몇 친구들이 간식거리를 싸들고 오후에 놀러 왔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의 11명의 여학생들로 구성된 이번 팀은 꼬박 이틀 동안 1,000개의 구덩이와 2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손에 물집이 나도록 열심히 나무를 심는 11살~13살 바양노르 학생들을 보면서 도저히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입 밖으로 안 나오더란다.

4명이 1.5리터 물병하나로 목을 축였던 얘기며, 양동이 물 하나로 씻느라 고생한 얘기들, 시장기가 반찬이라고 양고기냄새 때문에 먹기 힘든 음식을 비워낸 얘기들로 웃음꽃을 피웠다. 아이들이 윤전우 팀장 안티카페를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는 걸 보니 보통 힘들었던 것이 아닌가 보다. 파견나간 은희씨는 입술이 온통 부르텄다. 헐~

▲ 말로는 악마 같다고 하지만, 친구들의 눈에서 윤 팀장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볼 수 있었다. 함께 한 고된 노동 속에서 얻은 끈끈한 연대감이랄까.     ©윤경효

 
조림투어를 마친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의 근심도 함께 날아가 버리는 듯하다.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을 다시 돌아본다.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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