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여자분? 내 젊음 돌리도”

[몽골리포트] 고기비린내와 기름진 음식 적응하려면 시간이...

윤경효 | 기사입력 2008/04/24 [08:06]

“나이 많은 여자분? 내 젊음 돌리도”

[몽골리포트] 고기비린내와 기름진 음식 적응하려면 시간이...

윤경효 | 입력 : 2008/04/24 [08:06]
이번 주말엔 시내를 돌아다니며 봄을 맞이하는 울란바타르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뭐에 그리 지쳤는지, 토요일 아침 눈 뜨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기 싫다. 이틀째 고양이 세수로 눈곱 대충 떼고 머리도 빗지 않은 채 옆구리 벅벅 긁으며 방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한 손엔 군것질거리, 다른 한 손엔 TV 리모컨을 쥔 채 널브러져 있다.

한 주일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도 안 난다. 뭔가에 쫓겨 야근도 했는데, 도대체 뭘 하느라 그랬는지 도통 기억이 안나 다이어리를 뒤적여 더듬어 본다. 바양노르 조림작업일정과 예산계획 세우고, 지난 달 회계정리하고, 올해 묘목구입수량 확정하고, 비자절차 진행하고... 이 일을 처리하는데, 야근까지 한 겐가....

그러고 보니, 계획세우는 데 이재권 위원, 다와 팀장, 서울본부와 협의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듯하다. 많은 일, 복잡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기억도 못하다니... 허탈하네...
 
“고양이 세수로 눈곱 대충 떼고”
 
12시 다 되어 대충 첫 끼니를 때운다. 주말마다 청소한다고 설쳤는데, 이번에는 그마저도 귀찮다. TV 보는 것도 지겨워 성경책이며, 몽골 회화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한국에서 같이 온 다른 KOICA단원들과 영화 보러 외출을 나간 은희씨가 사과며, 러시아산 귤 등 과일이랑 야채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몽골식 왕 튀김만두인 '호쇼르', 볶음면, 볶음밥, 감자야채수프.     ©윤경효


바깥바람을 쐬러 나간 이재권 위원도 양손 그득히 장을 봐왔다. 이번 주엔 된장국도 끓여 먹고, 참치에 쌈장 얹어 상추쌈도 해먹을게다. 감자볶음, 오징어채, 참치전 등 도시락 반찬거리도 마련되었다.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한국음식 실컷 먹여준다고 하는데, 사실, 여기서 한국식으로 삼시 세끼(점심 식사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고 있다)를 먹고 있으니,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별로 없다. 한국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사셨던 이재권 위원 덕분에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잘 먹는 것 같기도 하다... 헐~

지금까지 여행 다니면서 그 나라 음식이 입에 안 맞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몽골에서는 잘 안 맞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듣던 대로 고기비린내와 기름기 때문에 한 그릇을 비워내기가 쉽지 않다. 느끼함을 줄일 수 있는 야채라도 곁들인다면 좋을 텐데, 단품요리문화라 그런 것도 없다.
 
“젠장 피클도 없이 스파게티만...”
 
어쨌든, 야채를 몹시 그리워하게 만드는 몽골음식이 아직은 입맛에 익숙지 않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양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등등 별 종류의 음식을 시도했지만, 지금은 무조건 닭고기로 된, 야채가 최대한 많이 나오는 음식만 시킨다.

게다가 1인분의 양이 거의 1.5~2인분 수준... 지금까지 음식 시켜서 다 먹어본 적이 없다. 일반적인 여성들 같은 경우, 2인 1조가 되어 1인분을 주문하지 않는 한, 빈 그릇 운동을 하기는 힘들다.

한번은 고기음식이 먹기 힘들어 서양인들도 많이 찾는다는 식당에서 까르보나라 크림스파게티를 시켰는데, 젠장, 피클도 없이 크림스파게티만 달랑 나온다. 피클 없는 스파게티는 팥 없는 찐빵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한국에 가면 꼭 피클 가득 나오는 게살크림스파게티를 먹으러 갈 거다.

그래도 몽골의 감자요리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먹어본 것들 중에서는 가장 맛있는 것 같다. 몽골 고기음식의 대표주자가 양고기라면, 야채음식의 대표주자는 감자이다. 삶은 감자를 튀기거나 볶기도 하고 굽기도 하니, 훨씬 부드럽고 고소한데다, 국에 들어간 감자를 베어 물면 입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지며 고소한 맛을 낸다.
 
“엔돌핀이나 생산해내야겠다”
 
나중에 몽골음식에 좀 더 익숙해지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호쇼르와, 감자와 보츠(찐만두)를 넣은 만둣국을 만들어 볼 테다. 먹음직스러운 호쇼르는 몽골의 대표적인 서민음식 중 하나이다. 워낙 커서 나는 2개밖에 못 먹었는데, 몽골사람들에게는 기본이란다. 만두속은 소고기와 양파가 다인데, 고기가 워낙 많기도 하고 기름이 좀 많아서 느끼한 감이 있다. 양파를 더 넣으면 한국인 입맛에 딱 맞을 듯...

KOICA 단원들과 교회를 다녀온 은희씨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준다. 지구촌나눔운동(NGO) 봉사단원으로 온 친구들 중에 몽골 입국시 공항에서 나를 잠깐 본 적 있는 사람이 있는데,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사무국장이 누구냐는 대화가 오가던 중에 ‘아, 그 나이 많이 드신 여자 분이요?’라고 아는 체를 했다는 게다. ㅜ.ㅜ 작년까지만 해도 5살 연하 남자한테 헌팅도 되었는데... 내 젊음 돌리도~~!!

오락 프로그램 보면서 엔돌핀이나 생산해내야겠다... 쩝... ㅠ.ㅠ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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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4/24 [11:24] 수정 | 삭제
  • 젊으신데, 왜 그런 말을 들으셨을까?
    그 봉사단원 혼내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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