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라의 언덕위에 평화의 종 울린다”

르완다 난민들의 ‘복수의 악순환’ 걷어낼 ‘평화학교’ 건립

뉴스앤조이 | 기사입력 2007/01/15 [10:51]

“카게라의 언덕위에 평화의 종 울린다”

르완다 난민들의 ‘복수의 악순환’ 걷어낼 ‘평화학교’ 건립

뉴스앤조이 | 입력 : 2007/01/15 [10:51]
새해가 우리에게 뜻 깊은 이유는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계획, 새 꿈들을 실현할 텅 빈 너른 공간이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지는 것이 바로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일 것이다. 그러나 전쟁과 살상으로 파괴된 세상에서는 그 미래가 사라진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고통과 슬픔, 증오심을 가슴에 품고 복수의 칼을 갈며 과거를 향해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바늘을 따라 악몽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르완다에 내전이 일어났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운송 차량을 타고 거대한 바나나 농장을 지나 우간다와 탄자니아를 가르는 카게라(Kagera)강을 건너 르완다 국경에 접한 한 난민촌을 찾아갔다.
▲르완다 카게라언덕에 평화학교를 지은 송강호씨. 어린이들과 힘께.     ©인터넷저널

그 곳에서는 수만 명의 후투족 난민들이 작은 천막 하나만을 두른 채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UN 천막 앞에 줄을 지어서 옥수수와 콩 그리고 식용유를 배급 받고 좀 더 큰 여자들은 하루에 두 차례 정도 물동이를 이고 약 3~4Km를 걸어가서 더러운 식수를 구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땔 나무조차 없었기에 불을 펴놓을 수도 없는 난민촌에서 밤만 되면 캄캄한 가운데서도 노래 소리가 들렸다. 무리지어 어른이 매기는 소리를 하면 어린이들이 받는 소리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하루는 한 그룹을 찾아가서 무슨 노래를 밤새 부르는지 물어보았다. 자기 종족의 원수인 투치족들을 죽여 눈을 빼고 코와 귀를 잘라서 씹어 먹자는 내용의 노래라고 설명해주었다. 너무 놀라 어린 세대에게 평화를 위한 노래를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분노로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들이 빛나는 게 보였다. 나는 도망치듯 뒷걸음질을 쳐 내 천막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깊은 어둠 속에서 뜬 눈으로 뒤척이며 밤을 새우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이튿날 깨어 날 즈음에는 이미 천막 문틈으로 환한 아침햇살이 내 얼굴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커튼을 거두고 밖을 내다보니 늘 그렇듯 건너편 언덕에는 우중충한 옷을 걸쳐 입은 난민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노름을 하거나 마약을 함께 씹으며 소일하고 있었다.

수만 명의 후투족 난민들이 투치족들의 복수를 피해 죽음의 강을 간신히 탈출해 나와서 이곳 난민촌에 정착했다. 그들은 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조차 도박과 마약, 매춘으로 세월을 보내며 자녀들에게는 밤마다 복수와 증오를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또 다른 복수의 전쟁이 준비되고 있는 카게라(Kagera)의 언덕에서 수없이 늘어선 난민들의 천막들을 바라보며 하나의 환상을 품게 되었다. 평화를 가르칠 온 세계의 젊은이들을 불러서 이 언덕 위에 천막 학교를 세우고 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언덕 높은 곳에서 아래 너른 분지로 울려 퍼지는 그 종소리를 듣고 저 밑에 늘어선 난민들의 천막들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 학교를 향해 뛰어 올라오리라. 눈을 감으면 평화를 배우겠다고 언덕 위로 달려오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과 빛나는 눈망울이 떠올랐다. 과거의 원한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이나 분쟁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리라.

이것이 내가 개척자들을 통해 평화 사역을 하기 위해 분쟁 지역에서 평화 캠프를 열고 평화 학교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이 평화 학교의 꿈은 아프리카의 분쟁 현장 한 복판에서 피어났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이 발발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어서 당사자들은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큰 전쟁도 사실은 작은 갈등들이 연쇄적으로 확대되어서 벌어지는 것이어서 누군가 막을 수도 있고 개입할 수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분쟁이 인류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고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이기주의적인 편견과 무관심으로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쟁을 막고 평화를 만들도록 부탁하셨고 그를 수행할 수 있는 힘도 주셨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대 평원에는 수천수만의 물소들이 군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물소들은 얼마 안 되는 사자들의 밥이 되고 있다. 실은 물소에게는 크고 강한 뿔이 달려 있어서 몇 마리가 힘을 합쳐 사자에게 대항하기만 해도 사자들은 물소의 뿔에 받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자들은 사냥할 때 교활하게 물소 떼들이 두려움 속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게 하고 그 중의 하나를 사냥감으로 희생시킨다. 이기심과 두려움 속에서 숨을 죽이고 살아가는 물소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사자처럼 이 세상을 지배하는 군사 문화에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자.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가 다수다. 

총과 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대추리의 철조망을 걷고 버려진 땅을 농민들에게 다시 돌려드리는 우리 시대의 희년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다. 소나 돼지의 생명조차도 죽이지 않는 이 땅의 불교도들에게서 생명 존중의 뜻을 배우는 겸손한 기독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송강호 (개척자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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