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野 건설, 천정배·이종걸 투톱이면 가능하다

거대여 새누리당 세력과 맞붙어 한판승부도 가능할 수 있을 것

임두만 칼럼 | 기사입력 2015/05/10 [01:41]

새野 건설, 천정배·이종걸 투톱이면 가능하다

거대여 새누리당 세력과 맞붙어 한판승부도 가능할 수 있을 것

임두만 칼럼 | 입력 : 2015/05/10 [01:41]

▲ 천정배 의원, 이종걸 원내대표     © 편집부

새정치민주연합 새 원내대표로 이종걸 의원이 당선되었다. 이 의원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친 손자다. 우당은 일제 강점기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으며, 무장단체인 ‘흑색공포단’을 이끌면서 일본군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시다가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서 옥사하셨다.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은 이희영 선생의 친 동생이므로 이종걸 의원의 종조부(작은 할아버지)이고,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이종걸 의원의 사촌형이다. 가문으로만 치면 대한민국 성골 중의 성골인 셈이다. 때문에 이종걸 의원은 고등학교 때부터 박정희 정권에 항거한 학생 운동권이었으나, 또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선 된 이종걸 의원의 손을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전임 원내대표가 들어주 고 있다. ⓒ 신문고뉴스 






1. 이종걸은 누구인가?

이종걸의 학력사항만 보면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율사출신 정도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민변 창립멤버로서 인권변호사를 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영입된 법조출신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이런 외면적 사실 외에 그가 피아노 전공의 학생으로 예원(중)학교를 졸업했다는 내용을 아는 이는 드물다. 또 중학교 3년을 예원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던 예능 특기생이 당시에 최고명문이라는 경기고에 합격한 점도 아는 이가 드물다.

이후의 학업과정도 남다르다. 이 의원은 경기고 재학 중에 유신반대 유인물을 뿌리는 등 학업을 등한시하다 1977년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서울 마포 지역 노동자 야학운동에 투신, 야학 은강학교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다 강제징집을 당해 입대하는 등 대학생활도 온전치 않았다. 사실상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그가 친일파 만주군 출신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강압통치를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육군에서 3년 복무 후 만기전역을 한 이 의원은 성균관대를 중퇴하고 1983년 서울대에 응시한다. 그리고 인문계로 합격한 뒤 1987년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다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에 학사편입, 공법학과에 재학하던 1988년 10월 비로소 제30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다. 졸업 후 연수원을 마치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는데 그가 가는 길은 당연히 민변 소속 인권변호사였다.

1991년 변호사를 개업한 이종걸은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위원,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박원순 변호사와 사무실을 공동운영하면서 참여연대 설립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는  또 박노해, 백태웅 등의 사노맹사건,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등 많은 시국관련 사건과 인권관련 사건을 맡아 승소하는 유능한 변호사였다.

이런 이종걸의 행보가 김대중 대통령의 안테나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 소수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를 새천년민주당으로 확대 재창당하면서 재야 인재들을 영입했는데 이때 이종걸 변호사도 영입되어 16대 총선에 안양 만안에 공천했다.

무난하게 당선된 이 의원은 이후 이 지역에서 내리 4선을 한다. 그러나 특정계보에 소속되지 않아서 앞서 세 번의 원내대표 경선에서 낙선했다가 이번에 4수로 당선되었다. 이런 이종걸이 원내대표가 되자 당장 당 밖에서 ‘야권신당’의 핵으로 지목되고 있는 천정배 의원과의 관계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종걸 대표와 천정배 의원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천정배 의원이 지난 4.29 보궐선거 유세도중 지역구의 한 농협에서 조합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임두만


2. 이종걸과 천정배의 인연


천정배 의원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2014년 광주로 내려가서 ‘호남정치의 복원’을 주장하며 정치연구소 ‘호남의 희망’을 개설했다. 이 정치연구소는 천 의원이 열린우리당 창당 핵심으로 활동하다 참여정부 법무부 장관이 되던 2003년 자신의 ‘베이스 캠프 형태로 설립한 ’동북아전략연구원의 부설로 개설된 것이다.

앞서 2003년 5월 천정배의 싱크탱크로 설립된 사단법인 동북아전략연구원은 이사장 외에 따로 원장을 두고 원장 밑에 4명의 이사와 함께 연구위원회와 기획위원회 등에서 10여명의 상근 비상근 연구원이 연구활동과 정책 개발 활동을 하도록 했다.

설립 당시 이사장은 최병모 변호사, 이사는 장하성(고대 교수), 이성재(김대중 정부 청와대 수석) 등이었다. 또 이들 외에 천 의원 핵심 측근들도 동북아전략연구원을 베이스 켐프로 하여 천정배 정치의 큰 그림을 그렸었다. 그러나 사실상 성공하지 못했다.

더구나 안산 4선 후 서울시장 도전 실패와 서울 송파 을의 도전 실패는 천정배를 ‘개혁의 아이콘’ 이미지까지 잃어가는 과정으로 몰아넣었다. 엄격히는 동북아전략연구원이란 싱크탱크가 천정배의 큰 정치인 만들기는 실패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천정배의 광주행이 결정되었다. 광주에 ‘호남의 희망’이란 새로운 싱크탱크를 개소하고 ‘호남정치 복원’이란 이슈로 전국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호남의 희망이란 정치연구소 뿌리가 사단법인 동북아전략연구원이며 원장이 이종걸 의원이다.

실상 이종걸 의원은 그동안 정동영 전 장관과 더 가까운 것으로 언론에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내면은 천정배의 싱크탱크로 개설된 동북아전략연구원이 이사장 천정배 원장 이종걸의 투톱체제인 것이다. 이들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천정배 의원은 장관을 그만 두고 당으로 돌아와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되었으며 이종걸 의원을 원내 수석부대표로 지명 자신과 원내전략의 호흡을 맞추게 했다. 아마 이런 인연으로 천정배 싱크탱크의 원장을 이종걸 의원이 맡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이 싱크탱크는 결국 호남에서 꽃을 피운다.

2014년 11월 사단법인 동북아전략연구원 부설 연구소 ‘호남의 희망’은 이사장 천정배, 원장 이종걸을 투톱으로 광주로 이전, 정식으로 개설된다. 이후 4.29 보궐선거에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까지 4회의 공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활발한 정책개발을 하는 등 싱크탱크로서 제대로 된 활동을 했다. 토론회를 통한 정책개발의 키워드도 호남의 미래였다.

1회는 ‘호남의 미래를 위한 정치적 전망과 과제’ 2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 호남차별과 대책’ 3회는 ‘호남의 사회적 문화적 소외와 극복방향’ 4회는 ‘호남 낙후극복과 격차해소를 위한 정치전망과 정책과제’란 주제에서 보듯 이름 그대로 호남의 희망찾기 정책개발이 목표였다.

이에 대해 천정배 의원은 “호남이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호남의 정책적․ 정치적 비전을 세우고자 이번 토론회를 준비했다”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소외와 배제의 호남에서 기회와 약속의 호남으로, 희망과 미래의 호남으로, 민주와 통일의 중심으로, 호남을 다시 찾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종걸은 이런 토론회를 주최하고 이끈 ‘호남의 희망’ 모체인 사단법인 동북아전력연구원 원장으로 후방 지원했다.

이윽고 천정배는 호남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말하면서 지난 4.29보궐선거에서 새정치연합 후보를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 때문에 야권정치 변혁의 태풍의 눈이 되어 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새정치연합 내의 가장 확실한 비노이자 천정배 우군인 이종걸이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3. 이종걸 당선, 어떤 의미가 있나?

원내 130명의 새정치연합 계파 구도는 친노 70명 비노 60명 정도로 본다. 이날 친노계는 이해찬 전 총리, 구속 수감 중인 김재윤 의원 말고는 68명 전원이 투표에 참석했다, 때문에 2차 투표에 오른 정세균계 친노인 최재성 의원이 어렵지 않게 당선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투표결과는 예측과 반대인 이종걸 66표, 최재성 61표였다.

결국 친노계에서 최재성 반란표가 나온 것이다. 이에 경선이 끝나자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진 최재성 의원은 망연자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들은 이런 선거 결과에 대해 새정연 의원들이 문재인 체제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견제 심리’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당 대표와 원내 대표의 ‘투톱’이 모두 친노 인사로 구성될 경우 당 밖의 천정배 원심력에 의해 당의 분열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비노계의 수장으로 꼽히는 김한길 박지원 안철수 의원 등이 이종걸을 강하게 지지한 것은 친노계가 당선될 경우 천정배 신당이 물위로 오르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즉 당의 원심력이 천정배의 원심력을 제어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선거가 끝난 뒤 “이런 게 야당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이를 간접 인정했다.

따라서 새정연은 당분간 분당 수준의 흔들림은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천정배 의원도 당에서 사람을 빼오거나 하면서 당과 척을 질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천 의원은 새로운 세력을 말하면서 ‘뉴DJ’의 발굴을 통한 신진인사 위주의 진용을 말했다. 신진인사를 발굴, 기존 새정연 기득권 국회의원들과 한판 승부를 통해 정치세력 물갈이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호흡하는 생물, 움직이는 생물은 앞으로 어떤 획을 그리며 움직일지 아무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릴 때 같은 꿈을 꾸는 천정배와 이종걸이 만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둘의 만남이 시너지를 일으켜 新야권 건설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꿈이 현실화 될 때 거대여당 새누리당 세력과 한판승부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새정연의 이종걸 선택은 그래서 매우 주목되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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