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칼럼] "머슴이 뭘 알겠어?"

오너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해야 할텐데...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12/13 [01:39]

[이준구 칼럼] "머슴이 뭘 알겠어?"

오너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해야 할텐데...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12/13 [01:39]
"머슴이 뭘 알겠어?"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사라져 가고 있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의 도화선 중 하나로 작용했던 한보그룹 부도사태 때 지금은 도망가 사라져 버린 정태수 회장이 했던 말입니다.

전문경영인을 머슴에 비유해 오너인 자기가 알지 전문경영인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 한 발언입니다.

전문경영인을 머슴 정도로 취급하는 회장과 그가 이끄는 그룹이 결국 부도를 맞게 된 것은 사필귀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그룹이 번성한다면 그게 이상한 거죠.

최근 대한항공의 오너 딸이 일으킨 소동을 보면서 문득 정태수 씨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백보를 양보해 승무원들이 실수를 했다 쳐도 그런 방식으로 모욕을 줘야 조직이 움직일 수 있는 건가요? 오너 가족이면 오히려 자기들을 위해 일해주는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마땅한 일 아닌가요?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    
난 수업할 때 제자들에게 기업에 취직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가장 똑똑한 인재들이 기업쪽으로 가줘야 우리 경제의 앞날이 밝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벌그룹에 들어가 온갖 어려움을 겪어가며 자리를 잡아도 오너가 머슴 취급한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기업에 들어가라고 권하는 내가 무책임한 일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한항공측의 사과문을 보면 진정한 사과와는 거리가 멀더군요. 그런 쓸모없는 소동을 벌여 놓고서도 정당한 대응이었다고 변명하기에 급급한 걸 보니까요.

내가 늘 지적하는 바지만, 우리 경제에서 재벌이라 해서 기업의 진정한 오너가 아닙니다. 단지 변칙적인 지배구조를 이용해 오너 행세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소동을 일으켜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부사장은 다수의 대한항공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기업의 임원이 아랫 사람들을 어떻게 지휘, 통솔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떠나, 이번 사건은 높은 자리에 있다고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용서 받기 힘든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평생 직장으로 알고 열심히 일해 오던 사람들을 그렇게 모욕한다는 건 인간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사건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드네요.
 
출처 :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 홈피 http://jkl123.com/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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