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 샘’, 만평가들이 뽑은 ‘올해의 인물’

영미식 정치만평을 답습하다보니 주요 대상으로 정치인만 등장

박세열 기자(뉴스툰) | 기사입력 2007/01/08 [10:39]

‘엉클 샘’, 만평가들이 뽑은 ‘올해의 인물’

영미식 정치만평을 답습하다보니 주요 대상으로 정치인만 등장

박세열 기자(뉴스툰) | 입력 : 2007/01/08 [10:39]
연말이다. 이맘때가 되면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느라 바쁘다. 얼마 전 타임지(TIME誌)는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를 선정해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바야흐로 인터넷의 발전은 불특정 다수인 당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을 세상의 주인공으로 바꿔놓은 셈이다. 그것은 UCC(직접 만든 콘텐츠)의 열풍, 나아가 누리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뛰어다니는 수많은 인터넷 언론인들과도 맞닿아 있다.

만평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대부분 한정되어 있다. 주로 정치인들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풍자만화, 즉, 만평이 아무래도 영미식의 정치만평(Political Cartoon)을 염두에 두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스타인버그 등, 유명한 풍자만화가를 배출하는데 일조한 뉴요커(The New Yorker)와 같이, 다양한 인물을 다루는 잡지를 우리나라의 서점가에서 보기 힘든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만화가 극화나 단편에 너무 치중해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여하튼 올해 신문 만평에는 수많은 정치가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만평이 가장 사랑한(?) 올해의 인물은 누구일까?

먼저 줄기세포 진위 파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황우석이 있다. 작년 말에 불거지기 시작한 이 사건은 올해 초까지도 수많은 이슈를 몰고 다녔고, 우리 사회는 그 후유증을 톡톡하게 치러내야 했다. 황우석은 과학자로서, 정치인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만평에, 그것도 여러 번 등장한 최초의(장담은 못하겠다) 인물일 것이다.

또한 올 3.1절을 기해 터져 나온 ‘이해찬 골프’ 파동이 있다. 일국의 총리를 물러나게까지 한 골프라는 스포츠, 우리나라 사회에서 그것이 얼마나 계급적 위화감을 조성하는지 그 특수성을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연희는 또 어떤가? 술집 여주인인줄 알았다는 터무니없는 변명으로 국회의원의 위신을 ‘개’의 수준까지 깎아내린 장본인이다. 실제로 만평에서 ‘성추행범’은 ‘개’의 은유를 등에 업고 자주 등장한다.

박근혜는 ‘커터칼’ 사건으로 일약 전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된 여인이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지만, 그런 테러는, 우리 정치사에 다시는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여러모로 씁쓸한 사건이었다.  

올해 탄생한 정치 스타는 뭐니뭐니해도 청계천 신화의 이명박이다. 테니스 파문으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지만 그의 지지율은 현재 꿋꿋이 상승선을 타고 있다.

고건 역시 이명박과 함께 가장 주목을 받았던 정치인이었다. 그의 ‘구름 속에서 걷는’ 행보는 미디어의 지대한 관심을 얻었고, 결국 대선을 앞두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노무현의 코드인사 논란은 김병준에서 시작해 전효숙에서 정점을 맞았다. 전효숙은 조순형이라는, 부활한 노병을 만나 헌재 재판소장직을 눈앞에 두고 좌초되었다. 이 논란은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맹목적 실력행사 문제에 대한 논란을 낳기도 했다.

물론 좋은 일로 만평 지면을 채운 인물들도 많았다. 자수성가한 미 프로 축구(NFL) 한국계 스타 하인스 워드는 혼혈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되었고,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어 한국 외교가의 신화로 떠올랐다. 이들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1차대전 당시 미군 모병포스터의 엉클샘     ©인터넷저널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올 한해, 만평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 중 하나임과 동시에, 가장 중요한 인물을 뽑으라면 주저 않고 엉클 샘을 뽑겠다. 엉클 샘은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엉클 샘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초 한 미국인 쇠고기 납품업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군납용 쇠고기에 찍혀 있던 U.S.가 Uncle Sam의 이니셜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그가 ‘쇠고기’ 납품업자였다는 것은 그 사실여부를 떠나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습게도 한미 FTA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있어 만평에 등장한 아이콘은 대부분 ‘쇠고기 군납업자’ 출신의 엉클 샘이었던 것이다.

엉클 샘의 전통적인 캐리커쳐는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작가 제임스 몽고메리 플래그(James Montgomery Flagg)가 영국의 모병 포스터를 모방하여 그린 캐릭터에 Uncle Sam이라는 이름이 붙인 것을 시초로 한다. 이후, 그 캐릭터는 우리가 만화에서 흔히 보는 엉클 샘의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4월 18일자 만평     © 인터넷저널

엉클 샘은 쇠고기 수입 문제 외에도, 한미 FTA의 미국측 협상가로 테이블에 앉기도 했고, 북한과 티격태격하는 탐욕스러운 신사가 되기도 했으며, 숨어서 대추리 사태를 지켜보기도 했고, 미국계 투기자본 론스타를 상징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 이용호 화백의 9월 8일자 만평     © 인터넷저널
이 모든 이슈의 주인공, 엉클 샘이 한국의 만평에 등장할 때의 이미지는 알록달록한 신사복을 입은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자였다. 그가 출연한 데뷔작을 상기해보라. 모병 포스터의 캐리커쳐 아닌가? ‘우리는 당신을 원한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 엉클 샘을 올해의 인물로 뽑은 필자도 기분이 과히 좋지 않다. 작년에 뉴스툰은 올해의 인물로, ‘검찰과 농민’을 뽑았다. 이들은 미국의 상징, 엉클 샘과 같은 대표적인 캐리커쳐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은 그 어느 정치인들보다 많이 등장했고, 검찰의 경우 부끄러운 모습으로, 농민의 경우 치열한 표정으로 만평 지면을 채웠다.

역시 이들을 올해의 인물로 뽑는데도 주저하지 않았으나, 기분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앞으로 좋은 인물, 따뜻한 인물들이 내년 한해의 만평 지면을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시사만화가들도 즐겁게 일 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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