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편집자를 슬프게 하는 것들

[온라인포럼] 이종근 데일리서프라이즈 편집국장

이종근 데일리서프라이즈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07/01/03 [18:34]

인터넷 편집자를 슬프게 하는 것들

[온라인포럼] 이종근 데일리서프라이즈 편집국장

이종근 데일리서프라이즈 편집국장 | 입력 : 2007/01/03 [18:34]
이종근 데일리서프라이즈 편집국장  © 인터넷저널

기껏 회의를 끝내고 누리꾼들에게 읽힐 기사만이 아니라 읽어야할 기사도 내보내야한다는 당위에 모두 공감하고, 며칠간 발가락 마디마디에 땀을 묻혀가며 취재를 하고 실명보다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나가야한다고 기사 작성하고, 감성보단 이성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제목을 갖고 논란을 거듭하다가 그래도 인터넷이니 감성 쪽으로 나가자며 정성을 들여 컷을 만들고 연재 박스 배너 만들고, 드디어 시간 맞춰 올린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기사...

올린 지 수 시간이 되어도 조회 수가 세 자리를 넘기지 못하는 가운데 동시에 올린 어느 야당의 국회의원의 막말 발언, 세 줄짜리 기사임에도 주유소 미터기처럼 돌아가는 조회 수의 숫자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선배 아직 밥을 못 먹었어요”
“시끄러워, 네가 일간지 종이신문에서 일하는 줄 알아?! 아님 시사주간지에서 일하고 있니?! 지금 일하는 곳은 인터넷 매체라구. 그걸 잊으면 안 돼!!”

 “선배 아직 밥 못 먹었어요”

 기껏 닦달을 해가며 현장에서 기사 쓰게 하고 사진 찾아 포토샵 손질하고 후다닥 기사 올리고 포털에 보내놓고 다른 매체보다 빨리 기사 올린 것에 자위해 가며 그래 우린 지금 속도가 생명이야 중얼거리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아도 포털 기사 댓글은 줄줄이 달리는데 정작 우리 사이트 해당기사의 댓글란은 깜깜 무소식이었다가 드디어 하나 달린 댓글의 야동 사이트 접속 홍보 글귀 “일 끝났으면 빨리 전화 줘요!”의 느낌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네, 인터넷매체 XXX입니다”

 오전의 햇빛이 창문에 드리워질 때 문득 걸려오는 전화, 그 흔한 “여보세요” 한마디도 생략한 채 다짜고짜 “야, 빨리 그 기사 안내려, 창피하지도 않니, 부끄럽지도 않니” 상대방 말도 안 듣고는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는 전화를 받는 중에 졸지에 뚜껑당 당원이나, 딴나라당 한패나, 민노찌질이가 된 것은 좋은데 전화를 끊지도 못하고 인터넷 언론의 역할과 기사제작의 ABC 강의를 들으면서 오후만 있던 어느 날의 전화 벨 소리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Whitch side are you on?

 넌 까야, 넌 빠야, 넌 어느 쪽이야...인터넷의 승리니 민중들의 혁명이니 아웃사이더들의 반란이니 국익이니 온갖 말들로 치장하며 그저 누리꾼들이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면 그것이 대세고 진실이고 진리인양 선동하는 인터넷 논객들의 천박한 칼럼들을, 단지 올리면 조회 수 몇 만 몇 천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기사 창에서 발견해야하는 날 눈에 들어온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어느 IT 관련기업의 뒷북 광고 문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3년의 좌절 끝, 넌 까야 빠야?”

인터넷 매체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3년이라는 시간동안 숱한 좌절을 겪어야했다. 어느 매체에서라도 편집자들이 겪어야하는 고충의 무게와 부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특성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쌓여가며 사실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나 착잡해하던 중에 <인터넷저널>로부터 청탁을 받고서야 “나도 이제 말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돌아본 지난 3년의 기억들이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자괴감일까.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안톤 쉬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을 읽고 느낀 감흥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씩 기억의 창고 저편에서 꼬깃꼬깃 접혀져 있다가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불쑥불쑥 상처를 확인시킨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 가를 왔다갔다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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