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타는 남한산성, 만추의 유혹"포토에세이 무지갯빛 산천은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한 불꽃...남한산성의 가을은 붉고 시원하더이다. 쪽빛 하늘 뭉게구름 한 점, 그 아래 펼쳐진 산속 세상은 무지갯빛 낙원이었습니다. 재잘대는 새소리, 웅성대는 행락객의 대화, 살랑대는 갈바람도 모두 경쾌했습니다. 네케의 ‘코시코스 우편마차’를 듣는 기분이랄까요? 노랑, 빨강의 산천은 금방 타오를 듯한 불꽃이었죠. 한잔의 막걸리는 정염의 묘약이었고요.
지난 일요일입니다. 제법 노는 ‘건달교’ 번개팅이 있었습니다. 오후 2시 성남에 있는 봉국사에 모이기로 돼있었습니다. 회원인 효림 스님께서 다섯 달에 걸친 ‘금강경 강해’를 시작했기에 축하할 겸 그리 한 것이었죠. 한데 한 분이 어차피 갈 거 남한산성 구경을 하고 2시에 모이면 어떻겠냐고 해 오전 산행약속이 새로 잡혔습니다. 산행 하려는 이는 ‘빗물’님과 기자(평화사랑)만 이었습니다. 그 덕에 둘은 재미있는 등산을 즐겼지만요. 마천에서 만나 남한산성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마천동 일대는 아직 가을이 한창이었습니다. 골짜기 마다 빨간 단풍과 노란 느티나무·은행 잎으로 정말 화려하게 차려입고 등산객을 유혹합니다. "네케의 '코시코스 우편마차' 듣는 기분..."
2백여미터도 못 올라 저는 가을 정취도 잊은 채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합니다. 허구헌날 술에 찌든 몸뚱이니 그럴밖에. 빗물님은 성큼성큼 잘도 오릅니다. 건강한 분입니다. 산행길이 1Km도 안 되는 짧은 여정이지만 꽤 가파른 코스여서 나름대로 힘이 들었습니다.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1시간 남짓. 숲속 바윗길을 오르니 하늘이 열립니다. 하늘과 맞다은 성곽에 오르니 제법 싸늘한 갈바람이 땀으로 흥건한 머리를 식혀줍니다. 조금 전 출발했던 마천 고을이 저 아래 아련합니다. 청군을 맞아 인조를 지키며 장군이 머물렀다는 수어장대가 저만치 앞에 보입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 떡입니까? 막걸리 향이 그윽합니다. 주변엔 벌써 한잔씩 즐기는 이들이 있군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죠. 한 잔에 2천원이니 비싼 편인데 돈이 아깝진 안더이다. 그리곤 수어장대. 붉게 타오르는 주변 단풍으로 마치 불이라도 난 듯한 풍광이 볼만합니다. 한 귀퉁이 섬돌에 걸쳐 앉으니 빗물님 따뜻한 커피 한잔 나옵니다. 건달들 대화라는 게 뭐 다 그렇고 그런 거지만 빗물님의 솔직한 이야기 정말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딸 이야기, 가정 내역 참 흥미 있게 들었지요. 등산 잘 하시는 분들의 또 하나 특징이 음식준비인데 역시 맛 좋은 커피로 기자를 감동시키는 군요.
남한산성에서 최고의 맛 집인 산성두부집을 들렀습니다. 다행히 정오가 좀 안된 시간이라 자리가 한둘 밖에 안 남았습니다. 손두부, 순두부를 시켜놓고 동동주 한잔씩을 했죠. 정오를 조금 넘기니 벌써 손님이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이집 손맛을 아는 이들이죠. 꼭 이집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이들일 테니까요. "수어장대의 늦가을은 활활 타오르고..." 손두부와 동동주 맛을 즐기랴, 잡담하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 그만 시간을 놓쳤지 뭡니까. 오후 1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습니다. 정류장으로 종종걸음 쳐 달려가니 금방 버스가 출발해 저만치 가고 있네요. 오늘도 ‘머피의 법칙’은 여지없습니다. 어떡합니까? 10여분을 더 기다려 버스를 탔는데 건달교주(유요비) 전홥니다. 어디냐, 몇 시까지 올 거냐... “좀 늦을 듯 하니 산성아래 도착하면 바로 택시를 타라.” 잔소리가 대단합니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버스로 내려와 성남 어딘가에 도착했는데 정말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택시로 옮겨 탔죠. 봉국사 앞에 도착하지 벌써 낭랑한 금강경 낭송이 들립니다. 효림 스님 목소립니다. 몰랐는데 불경낭송 목소리가 꽤 매력적입니다. ‘심검당’으로 들어가려는 데 바로 앞마당에 세워놓은 큰 천막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문이 조금 열려있어 가만히 들어섰죠.
아는 얼굴이 몇 보입니다. 유요비, 오거리님이 와있습니다. 바닥에 앉으려니 뒤에서 누가 방석을 밀어 돌아보니 봉국사 종무실장으로 부임한 선배의 부인이십니다. 그리고 앞에는 ‘빠박이 머리’ 안은미 선생이 뒤를 돌아보며 손을 내밉니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허리를 세워 앉습니다. 그제서야 법상의 스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앞줄에는 상좌 스님들이 쭉 앉았군요. 기사를 써야겠기에 돌아다니며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전 몰랐는데, 요비님이 나중에 “니네 들어올 때 막걸리 냄새 죽이더라”고 하더군요. 신도님들 용서해주십시오. 그래도 금강경 강의는 열심히 들었습니다. "니네 들어올 때 막걸리 냄새 죽이더라" 조금 있으니 새 건달교 회원이 된 변00님도 오셨습니다. 송파 당주를 하겠다는 분이죠. 혼자가 아닙니다. 남편과 시누이까지 모시고 오셨네요. 스님이 자기 방에 가 차 한잔 하자고 그러십니다. 변 당주의 견물생심. “붓글씨 한 점...” 스님은 그 자리에서 일필휘지 ‘도화홍색’을 써내려갑니다. 분이 작품을 받았을 겁니다. 종무소에선 맛난 과일도 가져오고요. 다섯 시 쯤이나 됐을까요? 스님이 저녁 먹으러 가자고 그럽니다. 남한산성 오르는 길 어디쯤에 있는 칼국수집입니다. 사골 만두전골이 일품이었죠. 백세주도 한잔씩.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숨쉬기가 힘들 정돈데 송파 당주가 서울가서 한 턱 쏜다고 하네요. 스님은 절로 가시고 건달교인들은 모두 송파 어느 술집으로 옮겼죠.
생맥주집에서 타임 킬링, 술 킬링. 일어나려니 또 누군가 “한 잔 더.” 또 일식집(이즈가야)으로 옮겨 별의별 맛난 안주에 소주 한잔씩. 조금씩 취해가는 데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 해산. 산정의 아름다운 풍광, 정겨운 가을바람, 땀 흘려 상쾌한 몸을 간직하기 위해 더 취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죠. 올 마지막 가을여행이 될지도 모를 테니까요.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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