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도심, 가을 야생꽃들의 향연

광화문단상 고운 미소 띠고 예쁘디예쁜 자태 뽐내는 무명화들...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9/26 [02:38]

한가위 도심, 가을 야생꽃들의 향연

광화문단상 고운 미소 띠고 예쁘디예쁜 자태 뽐내는 무명화들...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9/26 [02:38]
한가위를 하루 앞두고 집 옆 올림픽공원엘 갔습니다. 참 오랜만에 동네 나들이를 나섰나 봅니다. 많은 이들이 고향 찾아 떠나버린 텅 빈 서울 도심. 너무도 낯설기만 합니다. 뜻 모를 외로움이 끝없이 엄습해 오고요. 오갈 데 없는 이웃들이 보고파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덩그런히 남은 건물, 차, 사람. 모두가 싸늘하고 차갑습니다. 가을단장을 벌써 시작했는지 고운 미소를 띠고 예쁘디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식생 친구들만 빼고요.

산책로 옆 감나무는 연지곤지를 찍었습니다. 긴 여름 더위에 지친 까치를 하나 둘 유혹합니다. 아직은 푸르스름한 감들이 진한 주홍으로 물들어갈 때면 공원길도 노랗게 물들어가겠죠. 그 때엔 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잎사귀를 떨 구는 나무들이 외로워 보이는 게 싫어서요. 아닙니다. 낙엽을 보는 내 마음이 시려서 그럴 겁니다.
 
▲ 익어가는 감, 그 가지 곁에 앉은 까치.     © 최방식
▲쑥부쟁이가 반깁니다. 담백한 미소, 그리운 님의 얼굴을 한 자태입니다.     © 최방식
▲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상사화라 불리는 꽃무릇.     © 최방식

“곧 노랗게 물들어가겠지요”

산책로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쑥부쟁이가 반깁니다. 담백한 미소, 그리운 님의 얼굴을 한 자태입니다. 쪽빛 가을 하늘을 스쳐가는 하얀 뭉게구름을 닮았죠. 서글서글한 눈매, 미치도록 예쁜 머리카락. 그래서 더 서글펐던 가을국화를 쏙 빼어낸 모습니다.

아직도 이글이글 타는 태양 볕이 제법 따가운 숲 사이로 빨간 왕관이 가을에 어울리지 않는 색감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양귀비가 부럽지 않은 자태입니다. 꽃무릇입니다. 어쩜 저렇게 매혹적일까요. 집단으로 군무를 추는 요정 딱 그 모습입니다. 잎과 꽃이 서로 그리워 상사화라고 한다지요?

그 곁엔 나비를 꼬이는 제법 화사한 꽃밭입니다. 야생화가 아닙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큰꿩의비름’이라는 군요. 홍자색이라고 그러나요. 솜털이 포근해 보입니다. 산방꽃차례라고 그러지요. 맨 아래 꽃자루는 길고 위로 갈수로 길이가 줄어들어 모두가 한곳에 모여 피는 꽃처럼 보이죠.

 
▲ 큰꿩의비름.     © 최방식
▲하얀 무명화. 눈여겨보는 이 없지만 저만의 외모를 뽐내고 있습니다.     © 최방식
▲긴 꽃자루 끝에 하나 가냘프게 고개 숙인 하얀, 그리고 자주색 무명화.   © 최방식

나비가 왜 이 꽃에만 모여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향이 아름다워서 그렇겠지요? 모습이 고와서 그랬을까요? 호랑나비입니다. 노랑나비도 보입니다. 꽃마다 서넛씩 사랑의 몸짓을 하고 있군요. 막 희열이 피어오르는 듯합니다. 오르가즘은 분홍빛으로 발산합니다.

하얗고 앙증맞은 꽃도 있습니다. 눈여겨보는 이 없지만 저만의 외모를 뽐내고 있습니다. 자연은 아름다움을 숨겨놓았습니다. 소풍 때면 숨겨놓았던 그 보물처럼이요.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이질 않습니다. 한가한 이에게만 그 고운 미소를 선사합니다.

“사랑의 몸짓, 막 희열이 피어...”

무명의 야생홥니다. 한참을 뒤져야 비로소 찾을 수 있습니다. 긴 꽃자루 끝에 하나 가냘프게 고개 숙인 하얀 꽃병. 수줍게 내민 꽃술. 사랑의 밀어가 들려옵니다. 가만히 귀기울이면요. 곁에선 분홍의 신부가 윙크합니다. 감미로운 눈길이 퍽이나 예쁩니다. 잠시 망설임을 부릅니다.
 
▲ 분홍의 무명화. 예쁜 신부의 화사한 얼굴을 닮았습니다.     © 최방식
▲ 억새풀.     © 최방식
▲ 은빛 억새풀. 연인들의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 최방식

하얀 억새풀은 쪽빛 하늘과 너무도 잘 어울립니다. 은빛 물결, 그 억새가 뿜어내는 앙상블입니다. 그 뒤로 연인들의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이제 막 모퉁이를 돌아서는 그 들 몸에선 진한 후레지아 향이 은은합니다.

아, 저만치 황금빛 벼가 익어갑니다. 참새를 쫓느라 허수아비는 제법 바쁩니다. 나들이 나온 벽안의 여인들 재잘거림이 꽤 익숙합니다. 새를 쫓는 카메라맨들의 익숙한 손놀림은 지루한 일상입니다. 아이스바를 입에 문 꼬마 눈엔 가을하늘이 가득합니다.

산모퉁이 홀로 선 나무는 힘겹게 하늘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 덕에 가을나들이 길은 수월합니다. 하늘로 오르는 길은 곧 내려갈 걸 알기에 그리 고단하지 않습니다. 가을의 꽁무니를 따라 걷는 길은 쓸쓸하기만 합니다. 갈바람에 도토리도 제법 고운빛깔을 꺼내듭니다.
 
▲ 황금빛 벼가 익어갑니다.     © 최방식
▲ 참새를 쫓느라 바쁜 허수아비. 그리고 하얀 메밀꽃.     © 최방식
▲산모퉁이 홀로 선 나무는 힘겹게 하늘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 최방식

“이별 준비를 막 시작했습니다”

꽃길이 향연을 마칠 때면 미미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금빛 야생토끼가 발자국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듭니다. 차가운 눈길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습니다. 세상사 놀랄 일이 하도 많으니까요. 손을 내밀면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빈손을 아쉬워하면서요.

가을수목은 벌써 제 몸을 사립니다. 햇볕이 얕아짐을 깨달았나요. 이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제 몸을 물들이고 끝내는 잘라낼 테지요. 회자정리의 시간을 기다리며 그 수려한 자태를 뽐낼 것입니다. 유혹의 가을 내음을 내뿜으면서요. 다시 만날 날을 준비하겠지요?

▲ 공원 잔디밭 위에서 노는 꼬마와 개.     © 최방식
▲ 야생토끼.     © 최방식
▲가을 나뭇잎이 벌써 이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 최방식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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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다 2007/09/30 [03:11] 수정 | 삭제
  • 정말 멋지네요....
    거대한 도심의 저런 모습...낙원이 따로 없지요.
    황금빛 벼도 예사로 보이지 않네요...
    즐겁고 감사히 감상합니다.*^.^*
  • 평화사랑 2007/09/27 [11:05] 수정 | 삭제
  • 고맙고요. 이런 때 공부해야지요.
    살랑살랑 가을바람 타고 날아보시와요.
  • 자미 2007/09/26 [15:46] 수정 | 삭제
  • 감나무와 직박구리
    큰꿩의비름과 네발나비
    하얀 무명화는 서양등골나물
    자주색 무명화는 주름잎
    분홍의 무명화는 이질풀 인 것 같습네다.
    살랑살랑 가을바람 타고 싶은 날입니당. ㅎㅎ

    (*직업병이 도져서 지송합니다. 용서하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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