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언론의 권력형비리 조작과 신정아

데스크칼럼 꼴통신문 기자들의 저질 삼류 소설쓰기의 속셈...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9/21 [14:15]

황색언론의 권력형비리 조작과 신정아

데스크칼럼 꼴통신문 기자들의 저질 삼류 소설쓰기의 속셈...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9/21 [14:15]
경악했다. 말문이 막혀버렸으니까. ‘쌍시옷’ 육두문자부터 터졌다. 황색언론의 권력형 비리 만들기는 순식간이었다. 진위여부는 애초부터 상관없다. 흠집만 내면 되는 게임이니까. ‘불륜’ 덧씌우기까지 성공했으니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 것도 ‘몸 로비’를 받고서. 이젠 논공행상을 기다리겠지?

정론에, 고급독자를 자랑하는 언론이라고 자처한다. 알몸사진 2장을 게재하고는 특종이라고 으스댔다. ‘사건의 본질’을 보여주려고 그랬단다. 기사 제목도 재밌다. ‘신정아 누드사진 발견-고위층에 성로비 가능성 관심’, ‘신정아게이트 급속 확산’이란다.

신정아게이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조선’이 뒷심이 돼 주었다. 그 사진 그대로 복사한 대가로 ‘초록동색’이 돼 주었다. 어떤 언론은 ‘구글어스’까지 동원했다. 신씨와 변양균씨 거처가 10분 거리에 있다며 실감나게 보여주려고 그리했다. 변씨만으로는 성이 안찼을까? 더 큰 실세가 있다는 소문까지 내면서 말이다.
 
 © 인터넷저널

전두환 정권이 저질이라고 폐간했던 딱 그 선데이서울이다. 아니면 말고 바로 그 스타일에 내용불문이다. 성적 호기심만 불러일으키면 된다. 남자들 아랫도리만 묵직하게 하면 성공이다. ‘몸에 자국이 없는 것이... 내의를 벗은 지 한참...’ 완벽한 그 표현 그대로다. 정론직필을 가문의 영광으로 아는 기자들의 저질 삼류소설인 것이다.
 
“논공행상을 기다리겠지?”
 
한 도색잡지가 여성의 알몸을 국민의 알권리 대상으로 바꿔놓은 순간이다. ‘마사지 걸을 고를 때는 덜 예쁜 여자를 고르라’는 한 야당 후보의 성유희 노하우를 전해 듣고 시시덕거리며 좋아 했던 그 언론이다. 제 매체에 아예 알몸사진을 실어버렸다. 그리곤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이다.

누드 사진 2장 정도로 황색저널리즘이라 하면 좀 섭섭해 할지도 모른다. 연재소설 ‘강안남자’를 들먹이는 것도 ‘뭐 그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냐고 할 성 싶다. 수구·보수의 천국, 바로 그 정치시절을 되살려 보겠다고 멋대로 소설을 써대는 저질 작가정신을 꼽으면 또 모를까.

옐로우페이퍼 얘길 하며 100년도 넘은 퓰리처까지 거론하는 게 좀 우세스럽긴 하다. 대중의 흥미를 부르는 건 모두 기사라 했던 퓰리처의 작가정신을 발휘한 것인가. 광고도, 심지어 개인의 사생활까지도 돈벌이 기사로 둔갑시킨 20세기 최고 언론업자의 작문 솜씨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으니 말이다.

1백년이 넘은 퓰리처의 바로 그 황색저널리즘 정도라면 유치하다고 치부하고나 말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건 흥미·선정, 그보다 훨씬 이상이다. 추악한 정치적 야욕을 위해 팜므 파탈을 동원한 분탕질이다. 거두절미도, 소설쓰기도 마다않는 웃기는 언론이니까.

이쯤 되면 노림수가 궁금해진다. 눈치 챘겠지만 분명 정치허무주의다. DJ정권 4년, 노 정권 4년 내내 조중동문이 써먹었던 닳고 닳은 바로 그 수법. ‘그 놈이 그 놈’ 설득이론이다. 독재와 부정부패를 청산하겠다는 민주개혁에 사사건건 딴죽을 걸며 주둥이가 아프도록 떠들어댄 그 물 타기.

‘차라리 개발독재가 낫지 않겠냐’는 사탕발림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를 해온 인사가 인기 최고의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걸 보면 낡은 수법이 아직도 약효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니 너무 따지지들 말고, 밥이나 안 굶길 후보가 낫지 않겠냐는 낭설을 퍼뜨리니...
 
“두길보기 성공했을까...”
 
이게 끝이 아니다. 욕먹을 줄 알면서도 황색저널리즘까지 동원한 건 다 의도된 것이니까. 민주개혁과 진보에 덧칠을 하자는 것이니까. 노 정권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중도·진보세력을 뭉뚱그려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릴 속내이니까. 한국에서 ‘물 흐리기’ 최고 수법은 뭐니 뭐니 해도 불륜이니까.

이들의 이중잣대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마사지걸 발언’에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이 후보 말을 직접 들었다는 이들 언론사 편집국장들이 짐짓 모른 채 한 것까지는 뭐 그렇다 치자. 인터넷언론이 이슈화하고 여성단체들이 대거 해명을 요구해 사회적 의제가 됐는데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건 왜인가? 이런 철면피가 있나.

그렇겠지. 수구기득권이다. ‘아 옛날이여’ 권토중래를 외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에게, 정론직필이 뭐고 불편부당이 다 무슨 소용있겠나. 객관·공정성 따윈 애초부터 관심 밖이다. 긴 세월 권력의 떡고물을 즐겨온 이들이니 민주개혁이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하지만 알아야 할 게 있다. 당신들이 옷을 벗긴 건 신정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컷의 군침을 자극하는 댁들의 더러운 음모에 성적 수치심을 느낀 건 신정아 하나가 아니라 당신들의 어머니요 누이이자 딸들이었으니까. 게다가 그토록 흠집 내고 싶어 하는 중도(진보)세력이 그렇게 허약해 보이지도 않으니 어떡하나. 정치야 막판까지 대결해봐야 알 테고. 당장 국민적 분노를 잠재우려면 양자택일밖에 없을 텐데. 사라지든가, 무릎을 꿇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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