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진실을 말하다

광화문단상 미군 횡포 그린 ‘리텍티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9/11 [15:33]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진실을 말하다

광화문단상 미군 횡포 그린 ‘리텍티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9/11 [15:33]
▲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
베니스에서 재미있는 영화이야기가 들려왔다.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색욕, 경계’라는 영화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이다. ‘브록백 마운틴’으로 같은 상을 받은 지 2년만에 다시 세계인을 놀라게 한 것. 전수일 감독의 한국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도 새 영화 발굴 부문인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을 받았다. 한데 기자를 놀라게 한 건 두 소식이 아니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최고 감독상을 받은 것이었다.

이라크전쟁이 일어나고 꼭 3년쯤 되는 3월 어느 날.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20마일 떨어진 마흐무디야 마을 초소. 경계근무 중이던 미군 병사 몇 명이 초소 앞을 지나는 예쁜 소녀 한명을 찍어뒀다. 이들은 위스키에 취한 상태에서 카드놀이를 하다 말고 중무장을 하고 그 소녀집으로 찾아들었다.

5명의 병사가 집 밖에 있는 그녀와 아버지를 발견했다. 스티브 그린(21) 일병이 아버지인 카심 함자를, 제시 스필먼(22) 일병이 검문소에서 봐뒀던 소녀 아비르 카심 알 야나비(14, 여)를 붙들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폴 코르테즈(24) 병장과 제임스 바커(23) 상병이 따랐다. 그린 일병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을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 문을 잠갔다.
 
“모두 죽었다, 내가 그랬어...”
 
침실 밖에서는 코르테즈 병장이 먼저 아비르를 바닥에 눕힌 뒤 저항하는 그녀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강간이 시작됐다. 뒤를 이어 바커가 그녀를 덮쳤다. 침실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린이 AK-47을 들고 밖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모두 죽었다. 내가 그랬어.” 그린이 세 번째로 그녀를 범했다. 그린은 그 뒤 AK-47로 그녀의 머리를 난사했다. 그리곤 등유램프의 기름을 그녀 몸에 부었다. 그들은 유유히 사라졌고 그 집은 불타올랐다.

▲ 드 팔마 감독이 제작한 영화 '리덱티드'(편집한)의 한 장면. 이라크 미군의 강간·살해 사건을 다룬 작품. 

 
세계인들은 미군의 짐승만도 못한 폭력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 미국은 곤혹스러워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해야 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혐의를 부인했다. 미군의 이라크 내 범죄가 심심찮게 터져나오던 때라 이라크 당국도 만약 미군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으면 이라크가 직접 조사에 나서겠다고 불만을 표출했었다.

범행을 부인하던 죄인 중 4명은 검찰의 ‘사형’ 압박(플리 바겐, 범죄를 인정하면 형량을 감해주는)에 혐의사실을 인정했다. 자백을 근거로 최근까지 하워드 5년, 바커 90년, 코르테즈 100년, 스필먼 110년 선고가 이뤄졌다. 스티브 그린은 지금도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스릴러 영화의 귀재인 드 팔마 감독이 이 뉴스를 놓칠 리 없다. 그는 당시의 뉴스, 이라크 현지에서 전해오는 동영상과 스틸 사진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영화로 꾸민 것. 다큐멘터리 자료를 영화에 활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리덱티드’(편집된)가 탄생했고 64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감독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 ‘팜므 파탈’, ‘캐리어’, ‘스카페이스’ 등 걸작을 만들어 낸 드 팔마 감독은 전쟁 고발영화로 다시 한 번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다. 영화가 상영된 뒤 뉴스컨퍼런스에서 드 팔마 감독은 “반인륜적 미군의 전쟁과 점령을 종식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팜므 파탈’에서 ‘반전영화’로
 
스릴러 영화감독으로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드 팔마. 그는 시류에 안주하지 않고 영화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시대정신을 작품에 불어넣어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70년대 초 송 미 라이(Son My Loi) 학살사건을 폭로해 퓰리처상을 받았고 미국 내 반전여론에 기름을 부었던 세이무어 허쉬 기자의 시대정신에 견주어 볼만 하다.

1969년 11월 뉴욕타임스 기사 하나로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베트남에서 작전 중인 20보병사단 1대대 3중대 캘리소대가 한 마을의 비무장 민간인 500여명을 몰살시킨 사건의 전모가 1년 8개월만에 공개된 것이다. ‘손 미라이’ 보도로 세이무어 허쉬 기자는 퓰리쳐상을 받았고, 미전역은 반전여론으로 들끓었다.

1968년 2월 25일. 베트남 중부 쾅나이성 손미(Son My)지역의 한 고을을 순찰 중이던 캘리소대는 한 대원의 지뢰를 밟는 실수로 6명의 전사자를 냈다. 12명이 중상을 입었다. 캘리소대는 보복작전을 짰다. 그리고 3월 16일. 중무장을 한 30여명의 소대원이 미라이-4지구에 헬기로 이송됐다.

▲ 1968년 베트남 전 당시 미군에 살해된 손 미라이 마을 주민들의 시체. 캘리소대원 30여명은 이날 비무장 민간인 500여명을 무차별 살해했다.  일부 여성은 강간한 뒤 살해했다. 당시 한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 

 
순식간이었다. 마을이 불타올랐다. 소대원들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면 수류탄을 까 던지고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한쪽에선 젊은 소녀들을 집단으로 강간하고 사살했다.

하지만 그 속에도 양심은 있었다. 작전을 지원하러 헬기를 타고 있던 톰슨 준위는 캘리소대의 난동을 보다 못해 헬기를 착륙시킨 뒤 총으로 부대원을 협박하며 16명의 주민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모두 500명이 넘는 무고한 민간인이 사살됐다. 마을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가 넘쳐났다.

톰슨 준위는 귀대하자마자 지휘부에 캘리소대의 반인륜적 작전을 보고했다. 하지만 지휘부는 워싱턴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관행을 어기며 침묵했고, 민간인 학살사건은 그렇게 묻히는 가 싶었다. 하지만 톰슨 준위와 또 한명의 사병이 문제였다. 성조지(Stars and Stripes) 종군기자였던 로널드 리덴아워와 톰슨 준위는 본국에 진정서를 냈고, 결국 조사가 시작됐다.
 
“허쉬의 시대정신과 견줄만”
 
하지만 이듬해까지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상부에서도 쉬쉬하고 있었다. 이 때 국방부를 신참으로 출입하던 세이무어 허쉬 기자는 국방부와 법원을 들락날락하는 이들 2명의 병사를 알게 됐고, 결국 학살사건의 전모를 파악해 특종보도를 한 것이었다.

학살사건이 나고 3년 뒤에서야 법원은 13명의 전범을 기소했지만, 소대장인 캘리 중위만 군법회의에 소환해 종신형을 선고했다. 닉슨 대통령의 특별명령으로 캘리는 종신형 3일 복역만에 가택연금상태로 바뀌었고, 3년6개월 가택연금도 백악관의 추가 명령으로 해제됐다.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공헌했던 톰슨 준위는 증언으로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훈장을 시궁창에 던져버렸다. 몰래 찾아온 상사가 더 이상 입을 열지 말 것으로 언질했기 때문이다.

‘손 미라이 보도’는 톰슨 준위의 양심과 목숨을 건 증언과 상부 보고, 군(성조지) 기록 종군기자의 인도적 노력, 그리고 국방부 주변에서 어슬렁대다 특종을 파낸 허쉬 기자의 탐사정신이 이뤄낸 승리였다. 이와 견줘볼 때 드 팔마의 영화는 감춰진 진실을 들춘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땀방울은 미국 작가 중 아무도 말하려하지 않는 진실을 3억 미국인에게 알려주는 시대정신의 발로였던 것이다.

세계 최고의 언론자유와 인권을 누린다고 자랑하는 미국인들. 자국인의 인권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만 타국인은 짐승취급하는 이들. 모든 것은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다는 태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조국의 반인권(반인륜) 전쟁에는 침묵하는 미국언론에게 세이무어 허쉬와 드 팔마는 이단아였을까?

2003년 3월 시작된 이라크 전쟁. 미군 피해가 벌써 사망 4천명, 부상자 3만명 수준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다.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는 10만을 훨씬 넘어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쟁 4년만에 쏟아부은 돈만해도 1000조원이 넘어설 것이란 예상이다.
 
이중 잣대와 3억 미국인
 
9/11과 아프간·이라크 전쟁으로 권력을 부여잡은 부시와 공화당은 이제 그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슬림의 피를 대가로 ‘항구적 보수정치 중흥시대’를 꿈꿨던 부시는 1년 3개월여 임기를 남겨놓고 극심한 레임덕과 추한 몰락을 지켜보고 있다. 언제 국제전범재판소에 서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신세다. 허쉬와 드 팔마 같은 양심과 지성이 있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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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07/09/12 [16:00] 수정 | 삭제
  •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치가 떨려서요.
    똑똑히 기억해둬야겠지요. 편집안된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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