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정치의 춘추전국시대와 합종연횡

데스크칼럼 "2500여년 전 진(秦)과 6개나라 외교전 보는 듯"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8/31 [15:56]

중도정치의 춘추전국시대와 합종연횡

데스크칼럼 "2500여년 전 진(秦)과 6개나라 외교전 보는 듯"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8/31 [15:56]
합종연횡이란 말이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나온 말인데 국가간 외교에서 사용되는 전략을 말한다. 요즘 범여권을 보고 있노라면 꼭 그런 느낌이 든다.

기원전 5세기경. 춘추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가 시작된 때다. 수십개의 제후국 중 단연 돋보이는 7개 나라가 있었으니 이름 하여 ‘7웅국’. 이후 2백년을 주름잡은 나라들이다. 가장 힘이 센 나라는 서쪽 변방의 진(秦). 하여 6개 나라와 진나라간의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졌으니 바로 합종연횡 외교전이다.

진나라의 위협이 거세지자 6개 나라가 군사동맹을 맺었다. ‘소(진)꼬리보다 닭 머리가 되자’는 의기투합. 이 합종책(合縱策) 때문에 진은 15년동안 중원 진출길이 막혔다. 진은 이에 6개 나라를 설득해 개별적으로 “섬기면 침략하지 않는다”는 외교협약을 맺는다. 이른바 연횡책(連橫策)을 낸 것. 결국 진(秦)은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사상 첫 통일국가를 세웠다.

범여권이 후보 경선으로 어수선 하다. 출마자 수가 손으로 꼽아가며 세도 헛갈릴 정도로 많은 게 그렇고, 진영이 여럿으로 갈린 것도 혼란을 부추긴다. 통합신당, 민주당, 무소속으로 나뉜 데다 후보도 어림잡아 20명에 육박한다. 꼭 춘추전국시대 꼴이다.
 
▲ 범여권 9명후보 등록관련 보도 갈무리 화면     © 인터넷저널


범여권전국시대, 연횡책은?

갈래갈래 찢어졌던 여당이 그간 등을 돌리고 있던 민주당 주류를 흡수해 새 정당으로 탄생했다. ‘대통합’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원내 1당 자리를 회복했으니 형세만을 놓고 보자면 최강자가 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꼴사납다. 9명의 후보가 난립하고 있고, 친노·비노·반노로 모양세도 가지각색이다.

덩치가 줄 긴 했지만 민주당도 엄연히 경선을 벌이고 있다. 6명의 후보가 자리다툼을 벌인다. 그 곁에는 무당파도 있다. 두 당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닌 성 싶다. 뒷짐을 지고 서있지만 귀를 쫑긋이 세운 모습이, 판이 괜찮으면 언제든 밀고 들어갈 태세다.

정치판의 합종연횡시대인 셈이다. 친노그룹이 벌써 합종책을 모색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민주당 잔류파도 유사한 전술을 구사한단다. 합종연횡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무당파의 파괴력도 또 하나의 변수라고들 한다.

이런 범여권의 이합집산을 어떤 이들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며 나무라지만 필자는 좀 다른 생각이다.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나름의 변신이나 갖가지 전략전술을 구사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범여권의 혼란스러운 행보도 그 과정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정치발전에는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으나, 수구보수의 집권을 저지하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을 성 싶어서다.

중도개혁파인 범여권의 지금 행보는 당연히 민주주의 실험으로 봐야 한다. 머잖아 한국 정치가 보혁구도로 갈 테고, 그 때까지 수구보수, 중도(개혁), 그리고 진보진영이 혼선을 빚어가며 제자리 찾기를 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 시국은 수구보수를 저지하려고 중도세력이 합종연횡책을 구사하는 모양새 아닐까.

엇비슷한 정치인들이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찬반으로 갈려 줄서기를 하고, 지역기반을 놓고 분열하고, 신구가 나뉘면 유권자들에게 외면 받을 수 있음을 중도 정치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분열과 구태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일 테니 말이다. 전적으로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겠지만, 유권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말장난 하려거든 제대로”

혼란과 공방은 범여권에만 있는 건 아니다. 진보정당의 경선과정에서도 잡음이 나오고 있다. 진보대연합이 좌절된 책임을 놓고 심각한 반발도 있다. 그뿐 아니다. 보수정당의 검증대결은 사실상 진흙탕 싸움 아니었나. 아직도 화가 덜 풀린 이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선무방송을 해대니 말이다. 이젠 진영이 갖춰졌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친북좌파 대 보수우파간 대결이라는 선언까지 했다.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해야겠다. 자신들을 보수우파라 할라치면 상대를 진보좌파라 해야 하지 않을까? 상대를 친북좌파라고 하려면 자신들을 친미 또는 친일우파라고 하든지. 그리고 범여권을 어떤 근거에서 좌파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좌파나 좌파 아닌 당사자들이 들으면 얼마나 웃을까? 말장난을 하려거든 바로 해야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 있다. 춘추시대 패권국 진(晉)나라의 19대 제후인 헌공 때 이야기다. 괵나라를 정벌하려는데 우나라 땅을 거쳐야만 가능했다. 헌공이 아끼는 보물인 구슬과 명마를 우나라 제후에게 선물로 주며 길을 터달라고 한 것. 우에도 현명한 신하가 있어 “괵과 우는 순망치한 관계”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재물에 눈이 먼 제후는 길을 열어줬고, 결국 괵이 망하고 우도 망했다. 헌공은 구슬과 명마를 되찾았고.

중도정치의 합종연횡도 좋다. 진보정치의 신선함은 매력적이다. 보수우파를 하겠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국민을 우롱하고 속이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과 재물에 눈이 멀면 그 끝은 파멸이니까. 유권자들이 돌아서면 이가 시릴 테니까. 아, 벌써부터 대선결과가 궁금해진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 도배방지 이미지

범여권, 9명후보, 합종연횡, 데스크칼럼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