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첫 동네’, 두만강 1번지 숭선

[장경률의 두만강 따라 천릿길(3)] 민족의 고난과 도전의 발자취...

장경률 | 기사입력 2012/08/26 [16:30]

‘하늘 아래 첫 동네’, 두만강 1번지 숭선

[장경률의 두만강 따라 천릿길(3)] 민족의 고난과 도전의 발자취...

장경률 | 입력 : 2012/08/26 [16:30]
▲ 두만강의 첫 번째 통상구. 조선으로부터 무역물자들이 숭선통상구 다리를 통하여 중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저 멀리 뒤에 보이는 것이 바로 유명한 군함바위이다.     © 김승산 기자
 
8월 15일 광복절에 즈음해 본지는 중국 <연변일보사>에서 활동하다 최근 정년퇴직한 장경률 기자의 장편기행문 ‘두만강 따라 천릿길’ 연재를 시작한다. 이 연재는 두만강의 발원지 백두산으로부터 시작해 천리를 지나 강의 하구 방천과 동해에 이르기까지, 천만년 간 쉼 없이 흘러온 두만강가에 새겨진 우리 민족의 고난과 도전의 발자취를 재조명하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 번영을 노래할 예정이다. 두만강은 우리 선조들이 식민지 망국노의 설움을 안고 넘어간 한의 강이자 항일 투쟁의 강이고, 앞으로 우리 민족 중흥의 강이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바란다.(편집자).  
------------------------------------  
천리 두만강이 발원지로부터 양안의 소홍단수, 서두수, 연면수, 상천수, 홍기하 등 지류를 받아들이면서 무수한 여울목을 에돌며 괴암절벽에 울창한 수림으로 장관을 이룬 협곡과 험준한 뭇산들의 사이로 흘러지난다. 그래서 만나는 부락이 바로 하늘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두만강 1번지 유서 깊은 숭선이다.
 
숭선은 화룡시 소재지로부터 남부로 80여킬로미터 상거한 개척한 지 오랜 고장이다. 서쪽은 안도현과 이웃하고 남으로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이웃나라 조선과 마주앉았다. 조선족이 대부분으로 총인구의 83%를 차지한다.
 
연변인민방송국 화룡기자소 주임 한창진 선생은 우리 일행을 인도하면서 먼저 숭선의 연혁사부터 소개하였다. 그에 따르면 여기에는 청조 광서초년부터 조선에서 건너온 이민들로 부락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광서11년(1885년) 청나라정부가 두만강류역 변강지구월간국을 설립하면서 숭선지역을 한개 사로 묶고서 숭선사로 이름 지었다. 지금 숭선진에 합병된 로과지역은 선화사라 이름 불렀는데 일제통치하에서 1933년에 두개 사를 합병하여 역시 숭선사로 불렀다. 숭선은 청나라의 선통원년(1909년) 3월에 현을 설치하면서 화룡현에 귀속되었다. 하지만 올기강을 기준으로 하여 서남부의 대동촌 등지는 중화민국 시기에는 선후로 료녕성 안도현 홍기사로, 일제침략시기에는 안도현 아동사로 되였다가 1942년에  숭선사에 귀속되어 관리하였다.
 
오늘날 숭선에는 화룡시의 통상구인 장백산 아래 첫 통상구가 있다. 고성리통상구는 일찍 1927년에 설립되여 대안의 조선 량강도 대홍단군 삼장리와 무역을 하였다. 1933년 9월 도문세관이 서면서 여기에 관세분소를 설치하였다. 새 중국이 창건된 후 1953년 12월 고성리변방검사소를 설립하고 중, 조 두 나라 친선을 도모하고 변방경제를 진흥시키고 변강을 건설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놀고 있다.
 
유서 깊은 대안의 삼장나루터와 고성리가 나무다리를 놓고 출입경 일군들을 맞고 보내던 이곳에는 1964년부터 시멘트부두를 앉히고 줄쪽배를 갖추어 너비가 40미터 남짓한 두만강을 오가면서 통상실무를 펼치엇다. 그후 1994년에 중조 두 나라는 공동투자하여 콘크리트다리를 놓고 ‘두만강제1교’라 이름 지었다. 지금은 현대화한 통상구청사에서 현대화시설을 갖추고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오늘날 숭선은 경제가 번영하고 변강이 공고하고 인민대중이 안거락업하는 변강의 강진으로 건설되었다. 숭선은 비록 고한산간지대의 산간벽지에 위치한 고장이지만 벼농사와 담배농사 등 농작물농사가 벌방에 짝지지 않는다. 특히 해발 800~1000미터에 달하는 이런 고한산간지대에서 벼농사로 다수확을 확보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지난 세기 50년대 말부터 수리관개건설을 틀어쥐고 드팀없이 추진한 것과 갈라놓을 수 없다. 당시 일신으로부터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원봉까지, 원봉에서 다시 상천벌에 올라간 두만강인수관개시설(높이 49미터, 길이 120미터인 관개시설) ‘은하교’를 놓아 시만골의 물을 남석벌로 끌어들인 관개시설은 이 고한산간지대에 천지개벽을 가져왔다. 그때 "물이 산으로 올라 벼꽃을 피운 현대전설"은 전국을 들썽하게 소문을 놓으며 세인의 감탄을 자아냈다.
 
숭선은 화룡시의 주요한 생태농업기지, 잎담배기지, 축산업기지, 림업기지로 되고 있다. 특히 중약재를 주로 한 특산업기지는 이 진의 일대 우세이다. 오미자 재배면적은 15헥타르에 달하고 삼림인삼재배면적은 170헥타르에 달한다. 진적으로 총농업경제수입은 년간 1,588만여원에 달하고 인당 순수입은 5,056원에 달한다.
 

▲두만강과 홍기하의 합수목의 전경.     © 김승산 기자

▲숭선의 홍기하공원 뒷산에는 천길폭포가 쏟아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    ©김승산 기자






 
 
장경률 기자는 <연변일보사>에서 고급기자, 문화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으로 사업하다가 최근에 정년퇴직했다. 중국조선어학회 이사와 중국조선어규범화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진실 기록을 위한 몸부림> <낚시기법> <세태잡론> 등이 있다.

 

원본 기사 보기:사람일보
  • 도배방지 이미지

두만강 숭선 백두산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