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이별, 아쉬운 마지막 눈물?”

광화문단상 쏟아붓던 게릴라성 폭우 10분만에 그치고 햇볕쨍쨍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8/27 [16:13]

“폭염과 이별, 아쉬운 마지막 눈물?”

광화문단상 쏟아붓던 게릴라성 폭우 10분만에 그치고 햇볕쨍쨍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8/27 [16:13]
아침 출근길에 소나기로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이별이 못내 서러운 여름이 행패를 부린 것일까요? 기억해달라고 마지막 이별의 눈물을 흘린 것일까요? 비 때문에 출근시간 못 맞춘 사람 많을 겁니다. 모두 별 탈 없으시길 바랍니다.

9시 쯤 됐을 겁니다. 광화문역을 막 벗어나려는데 8번 출구가 때 아닌 인파로 꽉 막혔습니다. 도저히 뚫고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서둘러 출근을 해야 할 시간인데 왜 이리 웅성거리고 있나 의아했습니다. 월요일 아침부터 광화문역 주변에서 누가 시위를 하나 궁금하기도 했고요.

게릴라성 소나깁니다. 것도 퍼붓는 수준으로 말입니다. 사실 이렇게 쏟아지는 비엔 우산을 쓰나 마나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옷이 젖습니다. 하지만 우산 없인 나서면 순식간에 다 젖으니 나가질 못하고 서 있을 밖에요. 그러니 길이 막힌 것이었습니다.

“호랑이 장가가나? 이상기우인가?”

우산 들고 다니는 게 철저한 사람들이 왜 오늘 실수들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전 일기예보에 별 관심이 없다보니 무방비로 비를 만날 때가 자주 있거든요. 우기 때는 가방에 조그만 우산 하나를 넣고 다녔는데 별 소용도 없고 무겁기만 해 며칠 전 빼놨습니다.

▲ 갑자기 쏟아진 게릴사성 폭우에 우산 없이 나온 출근자들이 신문으로 머리를 덮은 채 뛰고 있습니다.  ©최방식

머피의 법칙이라고 그러나요? 왜, 그냥 지나치며 보면 내가 타야할 버스가 잘도 지나가는 데, 타겠다고 기다리면 안 오는 그런 상황 말이에요. 광화문에서 5호선 전철을 타는데, 종점이 마천과 상일동으로 갈립니다. 마천행을 타야하는 제가 기다리면 꼭 상일동행 열차가 들어옵니다.
 
웅성거리는 이들이 하나같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살짝 엿들어보니 직장 동료들에게 우산 좀 가지고 나와 달라는 부탁입니다. 늦은 주제에 낯짝도 두껍지요. 한 남자가 그랬습니다. “야, 늦은 주제에 우산까지 대령하라고?” 하지만 미움을 토로하지 않습니다.
 
비 좀 쏟아진다고 거기 쪼그리고 앉아있을 수야 없지요. 양복 상의를 뒤집어쓰고 용기 있게 나섰습니다. 나 같은 신세가 여럿입니다. 거의 대부분 신문을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섭니다. 나처럼 옷을 뒤집어 쓴 이도 몇 보이고요. 특이하게 가방을 바쳐 들고 가는 이도 몇 있습니다.
 
한 여성은 아예 손으로 이마만 가린 채 나섭니다. 머리와 고운 얼굴이 순식간에 ‘샤워 비’로 젖습니다. 아랑곳 하지 않는 용기가 대단합니다. 어떤 남자는 기다리다 안 되겠는 지 냅다 뜁니다. 하지만 몇 발자국 못가서 옷이 다 젖고 맙니다.
 
전철 출구를 벗어나 10미터쯤 왔을까요? 벌써 위·아래 옷이 다 젖어버렸습니다. 한데, 가방이 걱정입니다. 순간, 디지털 카메라와 노트북 컴퓨터가 생각났습니다. 잽싸게 주변 건물 출입구로 피했습니다.
 
“아침부터 시위인줄 알았죠”
 
인터넷언론 ‘대자보’가 있는 건물이네요. 밤이면 즐겨 찾던 ‘호프 호프’가 있는 건물로 들어서니 벌써 너댓이 서있습니다. 거기 10여분을 서 있었습니다.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요.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은 모두 밝습니다. 비를 맞고 가면서도요.
 
▲ 이제 일기예보는 맞지 않습니다. 기상청을 탓할 일만은 아닙니다. 이상기후 현상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으니까요.     © 최방식

요구르트 배달 아줌마는 노란 우비에 장화까지 신고 여유롭게 지나갑니다. 우편배달부 아저씨는 비옷을 입었는데도 오토바이로 달려서 그런지 머리와 옷이 다 젖었군요. 어떤 남자는 양복을 점잖게 입은 채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담배를 피우며 지나갑니다. 기술도 좋지요? 담배불을 꺼트리지 않고...
 
손수건으로 머리를 가린 채 빗속을 뛰는 여인 뒤로 차가 빵빵거립니다. 안 비켜준다고요. 그 여인 입술이 씰룩거리는 모양새가 꼭 “나쁜 OO"입니다. 출근자들이 붐비는 골목길로 차를 몰고 가면서 비키라고 빵빵거리며 위세를 떠는 건 왜 그런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10여분이 넘으니 빗줄기가 가늘어집니다. 건물 출입구에 대피했던 이들이 하나 둘 나섭니다. 가을을 시샘하는 게릴라성 소나기는 그렇게 그쳐갑니다. 10여분이 더 흘렀을까요? 사무실에 도착해 젖은 옷을 벗는데 벌써 바깥은 햇볕이 따갑습니다.
 
이런 변덕하고는? 호랑이 장가가는 날인가요? 이상기후가 분명할 겁니다. 오늘 많은 이들이 속수무책 장대비를 피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집니다. 일기예보는 더 이상 무용지물입니다. 기상대만 탓할 일도 아닙니다.
 
9월이 다 되가는데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보통일은 아닙니다. 8월 2째주면 동해안 해수욕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물이 차가워 물놀이를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한데 8월 마지막 주인데도 동해 해수욕장은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하네요.
 
“개발·편리, 더 좇으면 안돼”
 
지구온난화가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러고 보니,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운동가만 고민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당장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었으니까요. 8월 중순이면 끝나가는 폭염이 9월 초입까지 가고 있으니까요.
 
▲ 아침 출근길 폭우로 많은 이들이 지각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최방식
 
에너지 낭비를 줄여야겠습니다. 냉난방 잘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큰 집이나 큰 차를 소유하고 자랑하는 건 이제 낡은 문화여야 합니다. 1회용품이 더 이상 편리함의 대명사가 아니 듯이요. 종이·옷·가구 어느 것 하나 그냥 내버리면 안 되겠습니다. 자연과 숲을 보존하려면요.
 
골프장 좋아할 일 아닙니다.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어떤 정치나 사업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까닭과 같습니다. 돈을 더 벌어주겠다거나 잘살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을 유권자나 소비자도 그리 많지 않겠지요? 지금이 어느 때 인데...
 
어릴 적 홍수가 나면 학교를 못 간 적이 많습니다. 자그마한 나무다리나 징검다리가 떠내려 가버리면 개울을 건널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 대신 온 마을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나왔습니다.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물고기가 길로 올라와 꿈틀댔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홍수가 무섭습니다. 언제 지구촌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릴 지 모르니까요. 뉴올리언즈시를 통째로 삼켜버린 물, 그리고 지구온난화... 몰디브나 일본이, 그리고 부산이나 인천이 언제 바다 속으로 잠겨버릴 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면요. 자연을 계속 홀대한다면요.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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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사랑 2007/08/28 [14:19] 수정 | 삭제
  •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 소주는 사실 밤새 먹어야 맛나지요. 금강님 "건강 화팅!!!"
  • 금강 2007/08/28 [11:12] 수정 | 삭제
  • 글이 참 맛있습니다.
    또한 신선하구요. 그런 분위기 라면,...
    걱정입니다. 같이 소주드시는 분들, 밤을 새야 자리가 끝날테니요~~~. "건강 화팅!!!"
폭염, 게릴라성 폭우, 지구온난화, 이상기후, 광화문단상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