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 생머리 여인은 없다”

여행기 ‘회색 열도’ 일본 간사이지방 여름휴가길 몇가지 깨달음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8/22 [09:58]

“오사카에 생머리 여인은 없다”

여행기 ‘회색 열도’ 일본 간사이지방 여름휴가길 몇가지 깨달음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8/22 [09:58]
좀 미안한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일본의 관서지방인 오사카·나라·교토에 다녀왔거든요. 조용히 있으려니 말을 못해 병이 난 궁궐의 이발사가 된 느낌이어서 이실직고키로 했습니다. 일본다운 게 뭔지, 그리고 이 거대한 ‘회색 열도’가 일러준 몇 가지 깨달음을 전하려고 그럽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일본 열도를 방문한 게 두 번째군요. 지나는 길에 잠시 들른 건 빼고요. 첫 방문 때와 이번엔 확연히 느낌이 다릅니다. 첫 방문 때 미처 보지 못한 그 ‘회색’과 ‘물이 든 일본’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 아닙니까?

10여 년 전이었을 겁니다. 지방자치단체 의원들 연수여행을 수행취재 차 들렀습니다. 도쿄와 인근 자치단체들을 샅샅이 돌아봤죠.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실버(노인)사업 시설과 쓰레기 재활용 현장 등이었을 겁니다. 도쿄에서 신칸센(고속 열차)을 타고 2시간여 거리에 있는 온천타운에 들렸던 기억도 납니다.

 
▲ 일본 2대 도시이자 관서지방의 자랑 오사카도심 최대의 먹자골목 도우톰보리.     © 최방식

 “아는 만큼 보인다 했는데...”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한 자치단체 의원이 그랬을 겁니다. “야, 일본 너무 좋다. 거리거리 왜 이렇게 깨끗하지.” 당시 일본을 처음 방문한 기자도 아마 맞장구를 쳤을 겁니다. 일행은 농촌·지방소도시 어딜 가나 너무도 현대화되고 규격화한 것을 보면서 부러움을 표했고요.
 
10여 년 만에 들른 일본.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그러나요? 그 ‘일본스러움’이 사라져버린 그야말로 ‘서방 따라하기’의 심각한 폐해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말투와 거리풍경, 생활문화 모두가 탈아입미(脫亞入美)의 극치입니다. 왜 그리 억지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헤어스타일은 정말 가관입니다. 생머리가 없습니다. 검은머리도 드뭅니다. 오사카 시내를 돌아다녀 보니 여인들의 머리는 거의 노란색입니다. 의상도 그 기울기가 분명합니다. 미국의 밤거리에 넘쳐나는 골반에 간신히 걸쳐 입는 청바지(일명 ‘똥싼 바지’)가 대부분입니다.
 
제멋에 겨워 입고 물을 들이는 거야 누가 뭐라겠습니까? 집단적 트렌드를 보이니 섬뜩하다는 거죠. 오사카의 도심(本町)이라는 가장 화려하고 유명한 먹자골목 도우톰보리(道頓堀)와 패션거리 신사이바시(心齊橋)에 가보면 한눈에 드러납니다.

 
▲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셜 시티. 미 유니버셜 영화사가 투자해 만든 영화 테마파크.     © 최방식


착각은 금물입니다. 한국이 안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한국은 그런 일본을 보고 그게 부러워 따라하는 수준 아닙니까?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그리고 대학로 등 젊은이가 모여드는 곳에 가보면 알죠. 서양 따라하기, 일본 따라하기 정말 꼴불견입니다.

하지만 의상, 머리 스타일에선 한국 젊은이들이 훨씬 덜 물들었습니다. 3/6쯤 물들은 거와 5/6쯤 물든 걸 구분하는 게 좀 그렇긴 합니다만 정도의 차이도 어딥니까? 신사이바시에서 생머리 한 10~20대 여성을 거의 볼 수 없었던 데 비하면 한국엔 대부분이 생머리이니 천만다행 아닙니까?
 “일본스러움 오간데 없고...”
 
건축, 종교 등에선 또 다릅니다. 일본인들이 훨씬 자기 정체성을 강하게 지키고 있죠. 서구화하면서도 제 모습을 간직하거나 제멋대로 변형시켜놨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한국의 건축이나 종교는 어떻습니까? 하나같이 서구화했죠.
 
깨끗해서 부러워했다고 그랬죠? 전후 서둘러 개발을 마친 일본은 모든 게 질서정연하고 깨끗합니다만, 그 결과 열도를 뒤덮은 그 콘크리트더미에 신음하고 있죠. 그래서 지금은 그 반성이 커지며 생태계 살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니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 일본의 고대 국가인 '나라'에 있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인 동대사 대웅전.     © 최방식


하지만 한국은 어떻습니까? 콘크리트로 못 덮어 안달이나 있으니...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지 없애기 정책을 펴고 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가로세로 바둑판 모양으로 길을 내고 또 내, 이젠 고속도로에서 30분 이상 벗어나는 오지가 없다질 않습니까?

길이 넓고 많아지면 편하고 좋을 줄 알았지요. 터무니없는 상상이었습니다. 고유의 문화가 파괴되고 미려한 자연생태계가 사라지니 이제 ‘삼천리 회색강산’만 덩그렇게 남았습니다. 그 것도 모자라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하겠다는 정치인이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으니 참 답답합니다.

18일 교토를 방문했습니다. 이날 기온이 섭씨 38도였습니다. 뉴스를 보니 도쿄가 40.7도로 74년만에 찾아온 폭서라고 그럽니다. 여행 내내 38도를 오르내렸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30도만 넘어도 숨을 쉬기 어렵다고 하는데 40도 가까이 되니 이건 사람이 살 수 있는 기후가 아닙니다.

10년 전 바로 이 교토에서 지구촌 거의 모든 나라가 ‘교토의정서’를 채택했습니다. 그리고 7년 뒤 국제법으로 발효시켰죠. 지구온난화를 예방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감축하자구요. 그런데 세계 온실가스의 1/4을 내뿜는 미국이 그리 못하겠다고 빠져버렸답니다. 그 다음가는 중국도 빠졌고요. 한국도 미국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잔꾀를 부리려고 합니다.

 
▲ 8세기부터 1천여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 일명 화류계라고 불리는 유곽이 들어서 있는 교토 도심.     © 최방식

서구따라하기 경쟁 ‘답답’
 
일본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아직도 일회용품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호텔 칫솔, 빗, 치약 모두가 일회용품입니다. 길거리 어디를 가나 자동판매기가 넘쳐납니다. 패션의 명소 ‘신사이바시’ 그 큰 거리를 아케이드로 덮고 냉방을 빵빵하게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참 잘 만들어놨네” 그랬을 겁니다. 제 죽음을 재촉하는 줄도 모르고서요.
 
하지만 중심상가를 빼곤 휘황찬란한 간판이 없습니다. 네온사인도 별로 눈에 뛰지 않습니다. 얼마나 깨끗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에너지도 크게 절약하는 거지요. 한국의 거리는 도심, 부도심, 소도시 할 것 없이 네온사인이나 형광등이 휘황찬란하게 밝혀댑니다. 서둘러 끝장내버리자고요.
 
일본스러움을 한 가지 더 말해 볼까요. 일본인들은 외래어를 우리보다 더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모두 일본식으로 발음하고 일본어로 표기합니다. 서구 따라하기의 선수들이 좀 희한하죠. 외래문화를 제 것처럼 포장한다는 게요. 말과 표기 모두를 외래어로 해버리는 우리완 다르죠?
 
누군가 ‘일본은 없다’고 그랬습니다. 동양, 그 것도 일본 자신을 버리고 철저하게 서양 흉내를 낸다는 비아냥이었겠죠? 누구는 ‘일본은 있다’고 그랬습니다. 좀 더 보니 ‘없어 보이던 일본’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들의 철저한 자기합리화, 집단주의, 회색건설에 대한 반성 등 모든 것이요.
 
이열치열이라고 그랬나요. 이 더운 여름에 덥디 더운 일본의 관서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와 글을 쓰고 있으려니 참 한심하기도 하고 덥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좀 미안한 여름휴가를 보내고 말았으니 이렇게라도 반성을 해야지요. 느림보 빈둥거리는 여름휴가를 보내자 해놓고 배반한 기자, 반성의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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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은없다 2007/08/23 [15:09] 수정 | 삭제
  • 착잡한 마음입니다. 언제나 일본을 생각하면 말이죠.
    분명 이웃사촌인데, 미웁기만 하니...
    언젠가 한번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 공평해지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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