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학군’ 공유라고? 고교평준화 ‘흔들’

‘강남 부동산병’ 잡겠다고 시작된 학군광역화의 폐해

하재근(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 기사입력 2006/12/21 [19:10]

‘8학군’ 공유라고? 고교평준화 ‘흔들’

‘강남 부동산병’ 잡겠다고 시작된 학군광역화의 폐해

하재근(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 입력 : 2006/12/21 [19:10]
서울시교육청이 학군제도의 전면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전역의 중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를 기존 학군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학군의 장벽을 허문다는 것은 평준화의 틀을 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체의 학군 광역화 논의는 평준화에 대한 공격이다.

 서울시 학군광역화의 음모

 물론 지금 추진되는 정책이 당장에 고교평준화를 전면 해체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광역학군 배정은 전체 배정의 30%로 묶고, 지원자가 몰릴 경우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추첨으로 뽑겠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각 정책의 미시적 내용이 아니라 거시적 방향성이다. 이 정책은 진보가 아니라 명백한 퇴보다. 그것은 바로 고교평준화 해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시 학군 광역화 논의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동산 정책의 일환으로 제기됐던 서울시 학군통합 논의에 대해, 올 초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나는 학군 광역화를 해서라도 학교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이 본질이다. 학군 광역화는 소비자의 학교 선택권을 늘린다.

평준화와 선택권은 양립할 수 없다. 평준화 되지 않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완전히 보장된 교육부문이 고등교육부문이다. 그 결과 극심한 서열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등학교 입시에 소비자 선택권을 도입한다는 것은 중등교육부문에마저도 고등교육과 같은 서열기제를 도입하겠다는 얘기가 된다.

일부 인사들은 이 같은 조치를 통해 학교간 경쟁이 살아나고, 교육의 질이 향상되며, 학생, 학부모(소비자)의 만족도가 커질 것이라 주장한다. 소비자 선택권이 완전히 보장된 대학서열체제 아래에서 어떤 대학간 경쟁이 있으며, 무슨 고등교육의 질이 향상됐으며, 어느 국민이 만족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중학생 입시과열화 시작됐다.

 선택권 확대론자들은 학군광역화와 학교다양화를 주장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특목고와 자사고다. 광역학군에서 지원을 받아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가 다수 등장함에 따라 고교평준화 체제는 이미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특목고 입시철만 되면 대학입시철을 방불케 하는 고교입시관련 보도들이 줄을 잇는다. 그러한 양상의 심화와 사회 양극화의 심화, 교육 격차의 심화가 함께 가고 있다.

이번의 학군광역화 논의에는 선발이 빠졌지만 일단 광역화 되어 지원이 몰릴 경우 선발 압력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한 걸음 물러섰듯이 그때 또 한 걸음 물러서게 되면 그땐 완전한 고교평준화의 해체가 온다. 소비자의 학교선택권과 학교의 학생선택권이 보장되는 고등교육부문처럼 고교서열체제의 서막이 오르는 것이다. 그러한 체제의 폐해가 너무나 커서 고교평준화를 했던 것인데 지금 서울시교육청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다.

고교까지는 자기가 사는 집 근처의 학교에 자연스럽게 배정받아 진학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음껏 학창시절을 누리는 것이 중등과정 평준화의 요체다. 고교평준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중학생도 고교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김진표 전교육부총리는 고교입시가 있던 시절, 중학생 다수가 입시과외를 받았고, 전체 중학생의 27%가 정신장애 등 입시병을 앓았고, 명문고에 진학하기 위해 전입하는 학생이 만오천여 명에 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중학교에서 고교로 진학할 때 입시스트레스가 없는 것처럼 고교에서 대학에 진학할 때도 입시스트레스를 없애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국가의 중병이 치유된다. 그것이 바로 진보다. 하지만 고교학군광역화는 거꾸로 고교생들이 겪는 입시스트레스를 중학생들에게까지 내리는 방향으로 귀결될 한 걸음이다.

 고교선택권? 강남 선망만 키울뿐

 애초에 서울시 고교학군 광역화 논의의 불을 댕겼던 건 강남부동산의 문제였다. 학군 광역화로 강남 선망이 약화될까? 광역화와 서열화는 피라미드 꼭짓점을 향한 선망과 경쟁을 더욱 강화한다. 전 국민이 전국 통일 학군에서 서울대를 향해 경쟁하는 것이 지금의 대학서열체제다. 서울 명문대들이 지방에 분교를 만들어 세를 확장할수록 수도권 인구 과밀도는 커져만 갔다. 서울학군통합을 낙후지역 시민들이 찬성하는 이유인 ‘강남8학군의 서울시민 전체 공유’는 강남의 가치를 더욱 상승시켜 서울시에 위계화의 소용돌이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강남의 사교육은 대한민국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모든 소비자가 강남에서 공급하는 사교육 상품을 구매하고 싶어 한다. 학군 광역화로 자기 지역의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족쇄가 풀어지면 강남 학교와 강남 사교육을 동시에 향유하기 위해 강남으로 학생의 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대학서열체제하에서 지방민들이 서울 상위서열대학에 가기 위해 원룸, 전세, 월세 등을 구해 서울로 올라와 지방의 공동화, 식민화가 고착됐다. 아이들의 강남이동은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지금은 기존의 특목고, 자사고, 공영형혁신교 등 중등과정 유연화 정책의 흐름을 전면 재검토하고 평준화의 원칙을 다시 세울 때다. 이미 중병이 들어버린 고교평준화의 난맥상은 사회양극화란 부메랑으로 우리 사회에 돌아왔다. 학군 광역화는 이런 시대의 요청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대학서열체제에 이어 고등학교서열체제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는 지금의 교육정책 흐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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