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창의적체험' 무기력한 청소년계

시행1년 창의도 인성도 찾을 길 없어, 철학고민과 단합된모습...

이영일 | 기사입력 2011/11/17 [16:10]

학교 '창의적체험' 무기력한 청소년계

시행1년 창의도 인성도 찾을 길 없어, 철학고민과 단합된모습...

이영일 | 입력 : 2011/11/17 [16:10]
청소년의 인성교육과 창의교육의 강화라는 창의적체험활동(이하 창체)을 학교 정식 교과시수에 반영하고 이를 입학사정관제에 반영한다는 내용이 2009년도에 교과부로부터 발표되자 지난 2010년도에는 교육계와 청소년계 모두 떠들썩했다. 그러나 시행 1년이 돼가건만 지지부진할 뿐 아니라 부정적 시각까지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와 일선학교는 새로 도입되는 창체에 관한 하드웨어 구축과 현장의 기반 마련에, 청소년계는 창체활동이 청소년계가 수행하고 있는 청소년육성의 사명과 일치한다는 흥분감에 입시위주에 찌들은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문화활동의 기회를 넓혀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학교 현장에의 프로그램 제공과 연계방안 마련등에 심여를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로 전국을 들썩였다. 

그러나 시행 1년이 다 된 시점에서 보자면 이 창체가 과연 현재의 특별활동과 창의적 재량활동을 뛰어 넘는 보완적인 제도인가, 실효성은 과연 클 것인가에 대한 청소년계의 고민이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창체를 진행하면서 학교와 청소년계의 교류가 있다면, 그래서 발생하는 비용이 있다면 이는 학교에서 부담할 것인지, 청소년수련관에서 부담할 것인지 아니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있는 것인지, 있다면 교과부가 담당하는 것인지 여성가족부가 담당하는지, 지자체는 어느 정도까지 지원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아직도 모호한데다가 학교가 청소년단체, 청소년수련관이 협력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접촉의 문턱이 아직 높아 창체의 기본 개념인 지역사회와의 연계 자체 단계에서 시행 1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것이 이 창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가장 큰 요인이다. 

창체는 단순한 제도나 시스템이 아닌 창의적, 인성적 인간을 길러내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교육과정이기에 필수적으로 이 창체가 지향하는 교육철학을 수반해야 하고 이 철학을 근거로 추진 모델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청소년수련관의 경우 이미 창의적 요소들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모자람도 없는 프로그램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고, 이 창체가 학교의 교육과정에 공식 편성이 되지 않았다 해도 청소년을 창의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교과부가 정작 청소년계의 의견과 현황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상태에서 창체를 갑자기 쏟아내면서 청소년수련관들은 청소년들의 열린 활동의 철학을 고민하기보다 기존 프로그램들을 창체의 시스템에 맞게 변환하는 작업들을 먼저 고민하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즉, 프로그램은 이미 다양하게 차려져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학교에 접목시킬 것인가에 더 고민이 더 컸다는 것이다. 이는 청소년수련관들이 아닌 단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다 보니 청소년계에서는 교육계의 시각이 아닌 청소년계 자체에서 바라보는 창체의 의미와 방향, 기존의 청소년육성 “활동”이 가진 철학을 고민하고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했고 기존에 이미 교과부를 위시한 교육계에서 정의되어진 창체의 개념과 시스템에 단순히 청소년수련관 프로그램을 어떻게 학교에 도입시키느냐에 급급함으로서, 정작 창체가 가진 청소년 건전 육성이라는 모토의 주인인 청소년계가 이 창체를 주도하거나 또는 중요한 파트너십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현상을 보였다.

청소년계는 마치 창체가 청소년계의 지상과제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학교에서의 창체는 청소년수련관에 당연히 요청할 것이라며 수련관에 청소년들이 밀려오면 어떻게 수용할까하는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학교가 청소년수련관이나 청소년단체의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청소년계의 고민은 말 그대로 떡줄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는 격이 되어 버리는 셈이고 미술관, 박물관, 은행, 병원, 법원, 기업등 창체의 대상 영역은 실로 무궁무진한데 청소년계는 창체에 대해 과도한 짝사랑을 한 것이 지난 2010년도였다. 학교 청소년들이 청소년수련관으로 몰려와 수용을 할 수 없는 일은 전국적으로 벌어지지 않았다. 

청소년계가 이 창체를 아직 청소년을 의한 희망의 제도라 여긴다면 먼저 창체의 핵심 요소인“창의”와 “인성”에 있어 구체적으로 창의적 청소년상 인성적 청소년상을 어떻게 구분하여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청소년단체계와 수련시설계의 공동 연구와 의미 도출 시도를 고민해야 한다.
 
청소년수련관에 학급 또는 학년 단위의 창체 의뢰시 개개인의 “역량”을 어떻게 분석하고 계통성을 확보한 수위에 맞는 프로그램 편성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창의적인 청소년이 꼭 인성이 풍부하다는 전제가 없으며 인성이 잘 발달된 청소년이 꼭 창의적이라는 명제가 객관적으로 분석된 바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계가 청소년단체, 시설, 상담, 보호등등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지만 상호간 너무나 교류가 없고 조직적이지도 못하며 그 작은 조직의 이익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해 단결행동은 더군다나 불가능한 일처럼 청소년계 내부 스스로에서조차 자조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청소년계가 창체라는 하나의 제도를 두고 단결도 못하면서 학교 현장에 청소년 프로그램을 어떻게 투입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 자체가 낮다. 

청소년계 입장에서는 이 창체가 너무나 당연한 자신들의 고유 목적사업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창체시스템은 청소년계의 시각에서 나온 제도가 아니기에 청소년의 창의적 육성이라는 명제앞에 청소년계의 프로그램 품질을 보증하는 확실한 창체 철학을 먼저 고민해야 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만약 그러한 기본 골격없이 교육기부라던가 단순한 창체 프로그램 제공 시설형태로 진행되다가는 최악의 경우 이 창체가 또 하나의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실효성을 잃어 폐기될 수 있으며, 이는 청소년계로 보자면 커다란 수치이자 고유목적 사업 하나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집단, 청소년 때문에 밥먹고 살면서 자기 집단의 이익에만 매몰되어 돈벌기에만 급급하면서 마치 청소년을 위해 성직자처럼 희생이라도 하는 양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집단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 청소년계의 단결과 치밀한 공동연구, 신뢰받을 수 있는 정책 대안의 마련을 통한 사회 참여의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때임을 청소년계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과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은 후 한겨레전문필진, 동아일보e포터, 중앙일보 사이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 다양한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사회비평칼럼집 "NGO시선"과 2019년 "일본의 학교는 어떻게 지역과 협력할까"를 출간했고 오마이뉴스 등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평론가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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