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 김길자 블로그에 가봐!

탐방 애국충절 노래한 ‘정선아리랑’ 자료서비스, 일방문자 3200명

신정원 기자 | 기사입력 2007/06/22 [13:56]

‘아라리’, 김길자 블로그에 가봐!

탐방 애국충절 노래한 ‘정선아리랑’ 자료서비스, 일방문자 3200명

신정원 기자 | 입력 : 2007/06/22 [13:56]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국민 전래 가요’ 중 가장 오래됐다는 ‘정선아리랑’. 언제 시작됐으며 몇 종류가 있을까? 이 모든 것을 온라인에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길자씨는 강원도 지정 무형문화제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기능보유자다. 그녀가 운영하는 <정선아리랑-김길자> 블로그(http://blog.naver.com/ararikim)에 가면 전문적이고 방대한 양의 ‘정선아리랑’ 정보가 담겨있다.

 고려선비 ‘불사이군’ 넘쳐나

 정선 산간마을 주민들의 생활감정이 담긴 정선지방 특유의 민요 ‘아라리’. 우리에겐 ‘정선아리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왕조를 섬겼던 선비들이 고려가 망하자 태백산맥 속에 위치한 정선 산간마을에 은둔하며 율시를 붙여 부르던 게 정선아리랑의 시초라 한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된 ‘아라리’는 이후 시대의 불운함을 읊조리면서 발전, 일제강점기 땐 민족의 설움과 울분을 담아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정선아리랑 노래는 애절하다.

김씨는 강원도 지정 무형문화제 제1호 정선아리랑의 기능보유자로 지정(1984년)된 김병하씨의 장녀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아라리를 접했던 김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전국규모 경창대회에서의 화려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 김길자씨 블로그 ‘한국의 소리’편에 올라있는 사진.    © 인터넷저널

그녀의 블로그엔 정선아리랑의 유래, 특색은 물론, 정선고을의 역사, 음운·어휘체계, 지명의 유래에 대한 정보를 준다. 특히 ‘수심편’, ‘산수편’, ‘애정편’, ‘처세편’, ‘무상편’등의 카테고리엔 정선아리랑의 다양한 가사가 적혀있다. 가사에 대한 뜻풀이와 역주도 볼 만 하다.
‘청딱따구리 우는소리’, ‘여름 폭포소리’ 등 160여 개 자연의 소리를 녹음해 놓은 ‘한국의 소리 카테고리도 이색적이다.

그 밖에 음원서비스도 제공한다. ‘정선아리랑 듣기’와 ‘팔도아리랑’ 카테고리를 통해 우리나라 각 지방의 특색 있는 아리랑을 접해 볼 수 있다.

 8도 아리랑 정보 ‘한아름’

 김씨 본인의 공연 동영상도 올려놓았다. 아이디 ‘새벽먼동’은 “언제 들어도 애환서려 심금을 울려주는 유명한 민요”라고 평가한다. 아이디 ‘구라쟁이’는 “눈물이 절로 나네~ 으헝으헝 으헝이야~”라고 언급했다.

김씨의 블로그는 인기가 많다. 이웃이 1천1백15명, 포스트스크랩이 10만5천여 회에 달한다. 지난 19일 다녀간 블로거만 3천2백16명, 전체는 4백41만6천여명(이상은 2007년 6월 19일 19시 기준)이나 된다. ‘방학숙제에 유용한 사이트’, ‘수행평가’ 등의 자료로 초중고 학생들도 많이 다녀간다.

김씨의 블로그에 담긴 대부분의 자료가 전문서적 수준이라, 우리 민족의 소리 ‘민요’, 특히 정선아리랑’을 ‘이보다 더 자세히 설명할 순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 정선아리랑에 맞춰 흥겹게 춤추는 이들.    © 인터넷저널

‘정선아리랑의 특색’에선 “정선아리랑은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전해지는 가사가 많아 국내 아리랑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고 소개한다. “시대상이 배어있는 가사가 있는가 하면, 남녀간의 사랑, 이별, 신세한타 등 서민적인 삶의 풍경이 묻어나는 것들도 많다”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또 “진도아리랑이 신명나고 기교성이 두드러지고, 밀양아리랑이 뚝뚝하고 남성적인데 비해, 정선아리랑은 소박하면서 여인의 한숨과 같은 서글픔이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인용한다.

김씨는 아버지 김병하씨를 생각하며 “(아라리는) 아버지의 삶이었고 꿈이었으며 또한 그를 존재케 한 유일한 이유였다”고 회고한다. 또 “가슴을 파고드는 유창한 가락과 절절한 노랫말은 강한 여운을 남기며 (어린 나를) 사로잡았다”고 고백한다.

 하루 3천명 방문 인기 ‘짱’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던 김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정선아리랑제 아리랑경창 학생부 장려상을 받았다. 그 후 전국 규모의 경창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이 때 김씨를 데려가기 위해 여러 명창들이 제안을 했지만, 아버지 김병하씨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풍요로운 생활에선 진정한 아라리를 끌어낼 수 없다는 게 아버지의 이유다. 영화 “서편제’의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恨)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법이여…” ‘호통’과 어딘가 닮았다.
▲2년전 정선아리랑 관련 한 행사장에서.     © 인터넷저널

정선아리랑을 널리 알리는 게 꿈이었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 그녀는 지금 ‘정선아리랑 전도사’로 나섰다. ‘정선아리랑 전수회’와 여러 대학들에서 강연을 하고, 국내·외 무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작년에는 그녀의 할머니 정옥선(1989년 83세로 작고)씨와 아버지 김병하씨, 그리고 본인의 명창을 담은 ‘정선아리랑 명가 3대’의 음반 CD를 내기도 했다.

우연히 마주쳤던 김길자 씨의 블로그. 우리 민족의 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애절한 아라리의 노랫말과 가락을 음미하며, 김씨가 ‘아라리 전도사’로 더욱 활발히 활동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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