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신문의 역사와 함께하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후폭풍 속에서 공화파를 지지했던 오노레 도미에의 풍자만화는 석판화로 제작된, 8페이지 정도의 조악한 잡지를 통해 선보였다. 이는 영향력 있는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와 비례해 많은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지식인들은 풍자만화를 옹호함으로써 언론 자유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근대 프랑스 언론은 오노레 도미에 등, 풍자만화가의 작품을 실었던 ‘라 카리카튀르’나 ‘라 실루에트’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 미국에서 신문 산업이 발달하고, 만화는 신문의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다. 우리가 잘 아는 옐로우저널리즘의 어원이 된 옐로키드는 칼라인쇄 실험용으로 주인공의 옷을 노란색 잉크로 칠하면서 탄생한, 동명만화의 주인공이었다. 이 만화가 인기를 끌고 신문 발행부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자 모든 신문이 경쟁적으로 만화를 싣기 시작한다. 혁명이든 돈이든 만화활용도 커
1921년, 퓰리처상은 논평만화 부분을 제정했고, 그 첫 영광은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표현했던 롤린 커비(Rollin Kirby)에게 돌아갔다. 그의 수상작 중 하나는 포탄에 구멍이 뚫린 침실에서 부서진 침대를 부여잡고 있는 한 꼬마 여자아이를 그린 것이었다. 제목은 ‘내가 깨어나기 전에 죽는다면’이었다. 물론 그가 미국의 참전을 정당화 하며 ‘정의로운 조국’류의 만화를 그렸던 전력이 있다. 하지만 그가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자였고, 당시 전쟁이 제국 대반제국주의 구도가 아니었고 연합군과 독일군이라는, 두 팽창적 제국주의 세력의 격돌이었다는 데 일정 부분 한계를 안고 있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전쟁은 지금도 한창이다. 이라크를 비롯하여 레바논, 다르푸르, 아프가니스탄, 체첸 등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난다.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한쪽 발을 끼워 넣고 있다. 바로 이라크다. 얼마 전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이라크 정책의 수정을 기치로 내건 민주당에게 완패했다. 이전부터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는 실패했다는 증거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이 만큼 확실한 이벤트는 없었다. 미국의 전쟁실패 은폐하는 시사만평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를 파병한 한국도 이 선거 결과를 무시할 수 없어야 마땅할 것이나, 웬걸, 오히려 궁지에 몰린 미국의 절친한 친구가 되려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APEC 회담 참석차 건너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파병 연장의 의사를 피력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국내 시사만화가들이 전쟁과 파병 문제를 두고 예봉을 놀려줘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이라크 전쟁의 중요한 전환기가 마련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 일간지의 시사만화작가들은 철저하게 자이툰 부대와 이라크를 외면하고 있다. 언제 관심을 가진 적이 있으랴만, 실패한 전쟁에 우리 군을 남겨두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그들의 관심과 상관없이 중요한 문제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부시 행정부가 처한 난관을 보면 철군에 있어서 지금 이상으로 적절한 시기가 없음에도 조중동은 함구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보수언론은 전쟁 옹호론자
하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라크와 관련된 만평을 단 한 편도 싣지 않았다. 다른 신문의 시사만화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 자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많이 줄어든 것이다. 이는 전쟁 개시 당시나 파병 당시와 사뭇 다른 상황이다. 하루에 한 컷, 만평에 허용된 공간은 물론 부족하다. 대북문제, 부동산문제, 법·검 갈등, 파행국회 등 많은 현안들을 간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군, 그리고 이라크 민중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 현재 진행형임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현실 이면의 또 다른 현실 보여줘야 우리나라는 현재 전장에 정규군을 파병한 국가다. 이 섬뜩한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가로 세로 10센티미터의 작은 네모 칸에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현실, 그리고 그 이면의 모습을 담아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롤린 커비의 만화가 그리운 이유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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