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와 니나’, 소통과 사랑의 수호천사

[시네뷰] 스와 노부히로와 이폴리트 지라르도 감독, 15일 개봉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0/07/09 [02:23]

‘유키와 니나’, 소통과 사랑의 수호천사

[시네뷰] 스와 노부히로와 이폴리트 지라르도 감독, 15일 개봉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0/07/09 [02:23]
단절을 넘어 소통입니다. 안에서는 숲이고 밖에서는 영화죠. 소통의 공간이자 미디어가요. 날씨도 더운데 뭔 헛소리냐고요? 무더위로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날 시원한 등목 같다고 하면 좀 알아들을까요? 이실직고 하지요. 후배 녀석 덕에 ‘유키와 니나’(7월 15일 개봉) 시사회 다녀온 이야깁니다.

기자들에게 특권이 몇 개 있죠. 그 중 하나가 개봉 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 하면 유명 주인공 연기자나 감독자도 만날 수 있지요. 아마, 문화를 다루는 기자에게는 괜찮은 특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작품을 가장 먼저 구경한 소감을 잘 전달해야 하는 고역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일생에 몇 편 혹은 많으면 몇 십 편을 만들며 연기자나 감독이 혼을 불어넣겠다고 씨름하는 것이니, 완성작으로 가장 먼저 본 관객으로서 걸맞은 평론을 해야 예의일 테니까요.
 
무더위 식히는 ‘등목’ 같은 이야기
 
기자에겐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영화에 문외한인 나같은 반문화적 기자에게는 더더욱 그렇지요. 해서, 막걸리와 뒤섞여 하얗게 절어버린 ‘썰’이라도 풀어놓아야 겠습니다. 어떡합니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데, ‘밥값’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반문화는 늘 시작과 끝에 터집니다. 시사회에 10분이나 늦었으니까요.ㅠ.ㅠ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막 시작한 듯합니다. 티저영상을 놓치고 말았지요. 다는 아니고 1분여 정도나 될까요? 하여튼 ‘첫 인상’을 놓치고 크레딧을 마주하는 기분 알죠? 하긴, 누굴 원망하오리까?

헐레벌떡 시사회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깜깜합니다. 디지털시대 참 좋은 것 하나 있습니다. 영화관엘 가면 휴대폰 쓰임새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깜빡 잊고 소리를 못 죽여(진동모드로 변환) 원성을 사기도 하지만요.

하여튼, 주머닐 뒤져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보이지도 않는 길과 계단을 더듬거리다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밝던 휴대폰은 또 왜 그리 희미한지. 그만 한 숙녀 옆구리를 더듬거리고 말았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죄송했습니다. 보진 못했지만 현장에서도 사죄했지요.


▲ 영화 '유키와 니나' 표스터.     © 최방식 기자


각설하고 시놉시스. 유키와 니나의 재잘거림으로 소통이 시작됐습니다. 방과 후 두 아이의 대화죠. 니나 어머니의 도움으로 귀가한 두 아이. 뒤늦게 유키를 데리러 니나 집에 온 그녀의 어머니. 기자는 그제야 일본인인 줄 알았습니다. 유키의 혈통도 눈치 챘고요.

플롯의 시작은 여름휴가입니다. 니나가 자기 가족 휴가에 유키를 데려가겠다고 엄마에게 묻는 것이죠. 서구인들의 답, 뻔 하죠? “유키 엄마가 허락하면...” 당연히 유키 차례. “엄마, 나 니나네 휴가여행 따라가도 돼?” 하지만 답이 시원찮습니다.
 
“티저영상 놓치고 크레딧 마주하는”
 
단절의 시작입니다. “그러렴”이 아닌 예상 밖 얼버무림에 복선이 쳐진 겁니다. 다문화 유키 가족이 위기에 놓인 것이지요. 이별을 예고한 겁니다. 이어지는 엄마의 해명. 사실은 유키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지요. 시작된 꼬마 숙녀들의 중재가 참 재밌습니다.

‘좋아하니까 헤어진다’는 말, 커서도 잘 이해 안 되는 소리죠. 둘 다 자기를 사랑하는 데 그냥 행복하게 살면 되지, 왜 슬프게 헤어지는 지 얼토당토않은 것이니까요? 유키와 니나는 결국 경험자인 니나 엄마를 불러놓고 청문회를 열지요.

그리고 얻은 힌트. 잘 하면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9살 수호천사들의 활약이 시작됩니다. 익명의 편지를 쓰죠. ‘사랑의 요정’ 발신으로. 예쁜 구슬 장식도 달고요. 그리고 둘은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집니다. 아마, 스와 노부히로 감독이 답해주고 싶었던 질문일 겁니다.

▲ 영화 '유키와 니타'의 한 장면.     © 최방식 기자


“이별하면 슬픈 데, 왜 헤어지려는 거야?” 엄마는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함께 있어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아서...” 유키의 작전이 안 먹힐 것임을 예고하지요. 직감한 유키, 작전을 변경합니다. 일본으로 귀국하는 엄마를 따르지 않겠다고 버팁니다. 실제로 그리하지요.

하지만 소통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이별을 막으려는 자신의 노력을 지지할 줄 알았던 아빠도 아군이 아닙니다. 이런 소리나 하고 있으니까요. “유키, 가장 소중한 건 너 자신이야. 일본에 가 살면 처음엔 힘들겠지만 곧 괜찮아 질 거야.”

유키는 마지막 단절을 향해 떠납니다. 이혼한 엄마와 싸우고 짐을 싸들고 나온 니나. “시골로 우리 아빠 만나러 가자”는 소리에 유키는 메모 한 줄 써놓고 따라 나선 것입니다. 엄마도 아빠도 자신의 말을 안 들으니 자신도 혼자가 돼 보겠다는 심산이었을까요?
 
“슬픈 데, 왜 헤어지려는 거야?”
 
교외선 기차를 타고 마침내 도착한 한적한 시골마을. 아빠가 새 엄마와 재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흔적들을 찾아 니나는 유키를 데리고 추억여행을 시작한 겁니다. 거실, 인형, 의자, 사진. 모두가 그대로입니다. 인기척에 얼른 숲속으로 향하는 사랑의 수호천사들.

두 요정의 단절을 향한 숲속여행은 계속되지요. 울창한 나무들, 무성한 잡초, 파란 하늘과 구름, 명암이 교차하는 숲. 니나는 옛 날 놀았던 숲 속 오두막을 찾았지만 문득 유키가 사라진 걸 눈치 챘습니다. 유키는 더 깊은 단절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던 것이지요.

“니나, 미안해. 난 숲에서 혼자 살 거야.” 유키가 찾은 나름의 극단이었죠.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배신감에... 그런데, 말썽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유키의 행방불명 사고가 아닙니다. 영화가 갑자기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가 돼 버린 것이지요.

▲ 영화 '유키와 니나'의 한 장면.     © 인터넷저널


숲을 벗어난 유키. 일본의 한적한 한 농촌마을. 자신을 아는 듯한 아이들. 이미 엄마와 함께 일본사회에 익숙해진 자신. 그리곤 다시 숲속으로 달려들고. 잠깐의 판타지는 끝나고 다시 프랑스 교외. 니나와 놀다 길을 잃은 유키. 뒤좇아 뛰어온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 아빠와의 포옹. 비행기 날아가는 하늘.

유키는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뒤늦게 딸을 데려온 엄마는 한적한 시골길을 운전해 갑니다. 유키의 눈이 빛납니다. 바로 프랑스 교외 숲속여행 때 환상으로 본 그 집을 발견한 것이지요. 일본 친구들과 놀았던 어느 할머니의 집. 들어가 봤지만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엄마와 함께 숲 곁에 난 개울 길을 따라 걷습니다. 마치 익숙한 것처럼. 기시감(데자뷰)인지, 환상 속 경험인지... 황당했습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 영화 잡탕이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으니까요.
 
“기시감인지 환상속 경험인지...”
 
시사회 끝나고 보도자료를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스와 노부히로 감독이 이실직고 했더군요. “처음엔 일본이나 숲에서 촬영할 계획이 없었다.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는 전개상 자연스럽게... 한 곳이 아니라 두 곳에 소속돼 있는 이야기... 나는 숲이 두 곳을 이어주는 통로가 돼 줄 거라고 믿었다.”

이정도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걸 아셨죠. 이 영화는 그녀와 프랑스 유명 배우 이폴리트 지라르도가 공동 감독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공동으로 그린 그림과 같은 것이죠. 삐걱거리고 관점이 다르고 이해 안 되는 영상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폴리트는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가 된 숲.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도 마법과 같은 공간이었다. 나와 스와는 영화 속 아이들처럼 혼자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곤 했다. 즉흥적으로 만들기도 하며 시나리오에 있던 이유들을 무시해버렸다.”

그러니까 두 감독이 따로 제작한 영상을 조합했다는 겁니다. 불일치에 단절이 생길밖에요. 한데, 둘은 이 대목을 잘 받아 넘겼더군요. 스와 노부히로는 완성작을 보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예상과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하지만 그것이 또한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기대했던 효과”라고 했습니다.

이폴리트가 좀 더 갔습니다. 소통의 실마리를 찾았다고나 할까요? 두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기에 제3의 인물인 유키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미스터리하고 초자연적 세계가 표현됐다는 것. 여러 사람이 만들다보니 그랬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영화가 사람을 만들고 변하게도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우린 하나의 세상을 창조했고, 그 세상은 우리를 창조했다.”
 
“영화도 사람을 만들고 변하게 해”
 
가족의 해체, 프랑스에서 일본사회로 이전, 두 감독의 공동제작이라는 단절을 유키와 숲, 그리고 영화를 통해 소통해 냈다고 한 것이지요. 이정도면 ‘아방가르드’(전위 실험영화) 정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선지 2009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으로 관심을 끌었다고 하네요.

‘M/other’(1999년)로 52회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감독으로 입지를 다진 스와 노부히로 감독. ‘레이티 채털리’`‘빨간 풍선’ 등으로 화려한 감성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이폴리트 지라르도의 공동제작으로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었으니까요.

시사회가 끝나고 같이 갔던 이에게 티저영상을 물었습니다. 무슨 그림을 보여줬다고 했는데 잊었습니다. 하여튼 ‘첫인상’을 못봤으니 영화 제대로 봤다고 할 수도 없고. 꼭 이 꼴입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서 누군지 몰라 이름을 묻고 보니 어린 시절 좋아했던 숙녀라. “좋아했다면서 이름도 기억 못하냐?” 타박도 쌉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너를 보내는 숲’의 티저영상을 떠올렸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벼가 한창 자란 논. 그 뒤로 멀리서 울어대는 숲. 논고랑 사이로 애절한 상여소리·바람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상여행렬. 거기서도 숲은 소통의 공간이었습니다. 죽은 아이 또는 죽은 아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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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렌스 2010/07/13 [11:34] 수정 | 삭제
  • 여러 요소와 도구로 애용되는 군요. 토토로의 숲, 월령공주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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