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춘삼월, 개화만발로 이어지나"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 결산과 향후 전망

류옥진 | 기사입력 2007/03/16 [20:13]

"한반도의 춘삼월, 개화만발로 이어지나"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 결산과 향후 전망

류옥진 | 입력 : 2007/03/16 [20:13]

지난 3월 5일∼6일, 양일 간 뉴욕에서는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가 진행되었다. 회의기간 내내 북한 대표단은 미국으로부터 리무진과 특별 경호 제공 등 최상의 국빈급 예우와 환대를 받으며,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한층 더 여유있는 모습과 자신감으로 자신의 일정을 에누리없이 소화해냈다.

이는 지난 10월 9일 핵실험 이후 북한이 갖춘 핵보유국의 지위 나아가 선군정치의 정치군사적, 외교적 위상이 어떠한 힘을 발휘하는지 베이징과 베를린에 이어 이번 뉴욕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격동하는 한반도 정세의 중심에 누가 서있는지를 여과없이 세계에 제시하고 있다.

21세기 세계의 중심에서 번영할 한반도의 미래상이 예고되는 지금, 이 글은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의 의의와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는 운명공동체 : 이번 회의가 가지는 본질적 의미는 무엇인가

'2·13합의'에는 5개의 실무그룹을 설치하고, 이를 30일 이내에 개최할 것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2·13합의에 기초해 열렸다는데 그 첫 번째 특징이 있다. 게다가 북미관계정상화를 위한 회의를 처음으로 진행되었다는데 세간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로부터 이번 회의는 '행동 대 행동'이 명시된 2·13합의에 첫 단추가 단단히 채워졌다는데 그 일차적 의의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비단 일차적 의의로 한정시켜 볼 수 없다. 이번 회의에 내포된 보다 본질적 의미는 2·13합의가 '9·19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초기조치라는 성격에 비춰 볼 때 그 의미를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우선, 북미는 행동과 실천으로 2·13합의 이행 의사와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 실현의 초석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2·13합의의 특징 중의 하나는 '행동 대 행동'을 규정한데 있다. 이는 행동 대 행동을 통해 상호간의 신뢰와 믿음을 쌓고, 실천된 행동이 다음 단계의 행동을 추동하는 긍정성을 갖는다. 반면 누구 하나라도 일방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의 지연 또는 약속 불이행은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상대방의 행동을 이끌지 못하며 동시에 다음 단계로의 이행도 어렵게 만드는 양면성 또한 지니고 있다.

북미가 극렬한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막 벗어나 초보적인 행동조치에 들어선 지금, 동시행동 원칙과 그 실천을 훼손시키는 것은 2·13합의는 물론 9·19공동성명의 무력화로 곧장 이어지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이는 참가국들로부터 비난과 고립을 넘어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되돌릴 수 없는 회복불능의 지경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며, 회담 파탄을 일으킨 책임에서도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이해관계가 그 누구보다 높은 북미 양국, 특히 미국은 당면하게 북한의 핵증산을 억제하고 반확산을 이끌며 나아가 비확산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로부터 이번 회의는 말 대 말의 9·19공동성명을 넘어 행동 대 행동의 2·13합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와 의사를 넘어 핵심 당사국인 북미 서로가 실천행동의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단순 실무회의의 성격을 뛰어넘었고, 6자회담 참가국과 국제사회에 이를 과시하는 것으로 된다.

다음은 북미 서로가 적대적 관계 청산을 위한 역사적인 첫걸음을 시작함으로써 관계정상화의 최종목표인 수교 실현을 뒷받침하고 있다.

60년이 지나도록 북미는 불신과 대립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체 수많은 대결을 동반하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물론 지난 기간 북미 양자가 관계정상화를 위한 논의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지난 2000년 말에는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 직전에 이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관계정상화에 놓여진 적대관계 청산이란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그동안 이뤄온 합의들은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북미간의 관계정상화 논의는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만 했고, 진척없는 제자리걸음만을 걷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되풀이 해왔다.

더구나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제도전복과 체제붕괴를 목표로 한 부시행정부의 등장과 2002년 켈리의 방북 후 벌어진 소위 '고농축우라늄(HEU)' 소동은 제2의 한반도 전쟁위기를 심화시켰고 결국 일촉즉발의 극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북미 양자가 한반도 전쟁발발이란 최악의 사태를 낳는 비등점을 넘긴 후에 만나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관계정상화를 논의를 진행하였다는데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또한 상호관계에서 나서는 몇몇 실무적 문제를 짚는 수준이 아니라 관계정상화에 필요한 모든 현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적대관계 해소의 첫 물꼬를 틔었다는 것, 한반도 문제 해결의 근본적 장애가 되는 대북적대정책이 전술적으로나마 변화하고 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번 회의는 북미관계정상화 과정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담보하는 하나의 기둥이 정상적인 제 역할을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그 의의가 자못 크다.

또한 뿌리깊은 한반도 냉전을 궁극적으로 해체시키기 위한 평화체제 수립과 주한미군철수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반도에서의 정전은 전쟁의 종결이 아닌 일시적 중단상태를 의미하고 있어, 현재 북미는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에 놓여있다. 이로부터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그 위험성은 날로 증대되어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또한 정전협정은 미국에 의해 계통적으로 파괴됨으로써 그 기능을 상실하고 사문화된 종이쪽지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정전상태가 해소되기는 커녕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 정전의 부속물들인 법·제도적 장치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함으로써 예속적인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냉전체제를 더욱 공고히 유지시키고 있다.

또한 한반도의 정전상태는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 단결을 저해시키며 민족의 화해협력사업들을 걸음걸음마다 방해하고 있다. 또한 6·15공동선언을 이행하여 통일을 이루려는 민족의 의사와 행보를 파탄시키며 남북관계의 더 큰 진전을 가로막아왔다. 게다가 친미보수세력들을 내세워 남한사회의 진보개혁흐름을 차단하고, 민주적 발전을 가로막으며 대결을 강요하고 있는 데서도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에서 자신의 패권적 지위와 이익을 유지, 존속시키기 위한 시대착오적인 대북적 대정책으로부터 도출되는 필연적 결과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와 영향력을 축소시킴으로써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즉 한반도에 깊게 자리잡은 냉전체제를 해체시켜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고 나아가 주한미군철수의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동시에 민족의 통일실현에 유리한 지형도 창출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의 평화체제 실현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추동력으로 작용하여 세계평화 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았다. 

끝으로 이번 회의는 2·13합의 이행의 지렛대로써 향후 진행될 회의들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9·19공동성명의 완전한 실행을 담보한다.

이번 회의는 6자회담 틀속에서 진행된 회의지만 실제로는 6자회담을 주도하는 회의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북미가 이번 회의에서 논의했던 내용들은 비단 관계정상화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2·13합의 이행 전반은 물론 다음 단계를 위한 6차 6자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지난 1월, 북미 베를린 양자회동이 2.13합의의 기본 내용을 이뤘고, 이를 담보하고 추인하였던 것이 6자회담이었음을 살펴 볼 때, 결국 이번 회의는 다음에 진행될 실무회의들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2·13합의의 성실한 실천과 이행을 예고하고 그 속도와 시동을 높이는 지렛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2. 북미관계정상화 이정표 마련 : 북미는 무엇을 논의하고, 주고 받았나

이번 회의의 결과에 대해 북미 양측은 모두 매우 흡족한 반응들을 내보이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대표단이 표현한 "낙관적", "건설적"이란 단어를 통해 이번 회의 분위기가 대단히 긍정적이었으며 좋은 결과가 도출했음을 엿볼 수 있다.

비록 공동보도문이나 합의문처럼 구체적 내용이 발표된 것은 없으나 '북미관계 정상화 로드맵'이란 언론의 제목 기사가 등장한 사실로 유추해 볼 때, 19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2차 실무회의에서 이번에 논의된 내용의 구체적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언론에 보도된 대표단장들의 발언에 근거해 이번 회의에서 북미 양자가 무엇을 논의하였는지 살펴보자.

① 북미관계 정상화

북한은 미국에게 테러지원국 지정 제외, 적성국교역금지법에 따른 경제제재 해제 그리고 대사급의 외교관계 수립을 통한 관계정상화 실현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실현해야만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법적·행정적 절차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선, 미국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대해 "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이유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면서 "북한이 몇 가지 조치를 취하고 나면 그 문제를 풀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미국이 북한에게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이행하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할 의사가 있음을 피력한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것은 87년 KAL기 폭파사건을 배후조정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그 결과 북한과의 교역과 방산물품 판매, 수출입은행 보증 등 각종 거래가 금지되었다. 그 후 구체적인 테러 지원행위는 없으나 70년 일본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리스트 일본 적군파를 보호하고, 2005년 일본인 납치문제를 테러문제로 본다는 미행정부의 입장정리에 따라 지금까지 명단에 올라와 있다.

또한 미국은 매년 4∼5월에 국제사회의 테러 관련 평가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는 전년도 11월까지 자료 조사를 마친 뒤 테러지원국 리스트와 함께 공개된다. 이 명단에서 제외되려면 미 행정부가 45일 전에 의회에 보고하고 해제 절차에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이는 형식상의 절차일 뿐 테러지원국 해제는 미행정부의 재량사항으로 해결할 의사만 있다면 정치적 판단만 내리면 충분하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현재 국제테러를 지원하지 않고, 향후에도 지원하지 않을 것"임을 의회에 보고하고, 최근 6개월간 국제테러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그 증거는 이미 2000년 북미 수교 당시 테러지원 행위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지명되었던 이유들을 역으로 제시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즉, KAL기 사건은 재조사 과정을 통해 북한과 무관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생존하는 적군파는 모두 일본으로 귀환했으며, 납치문제 또한 모두 해결된 상황이다. 비록 일본이 생떼를 부리는 상황이지만 미국은 오히려 북일관계정상화 실무회의가 진행되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렇듯 북한이 더 이상 테러지원국으로 남아있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적성국교역금지법 해제 또한 미국이 해결할 의사만 결단만 내리면 풀릴 수 있는 손쉬운 조치다.

미국은 50년 12월, 한국전쟁을 들어 북한을 적성국가로 분류하고 이 법에 따라 물자 수출 뿐 아니라 금융거래 금지 등 각종 경제제재 조치를 취해왔다. 그러나 지난 시기 북미관계가 진전되면서 89년에는 비정부 기구에 의한 인도적 지원 기본물자 수출을 허용했고, 95년에는 제네바합의에 따라 미국 은행에 동결된 북한 자산 일부를 해제했다. 2000년 6월에는 일부 품목의 수출허가 신청을 완화했다.

북한은 적성국교역금지법 해제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포기의 상징적으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고, 실제 클린턴 행정부 때 이 법에 따른 제재조치 대부분이 해제되었기에 미국이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② 60일 이후 다음단계

북미는 2.13합의에 따른 60일 이후 단계의 핵심 사항인 핵프로그램 신고와 불능화 개념, 경수로 등의 추가지원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협의하였다.

우선, 북미는 2차 한반도 핵문제를 야기하고, 2.13합의 이후에도 여전히 논란의 핵심 쟁점 중 하나로 등장한 HEU 프로그램 문제를 협의하였다. 미국은 북미가 이에 대해 "다음 단계인 신고 이전에 이 문제를 다룰 필요성에 의견을 모으고, 미국측 전문가들이 북한측 관계자들을 만나 이 문제를 철저히 점검할 수 있는 전문가 수준의 협의를 가질 것을 합의하였다"고 밝혔다.

HEU 프로그램 존재 자체를 부정했던 북한이 이 문제를 합의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 또한 충분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있는 의사의 반영이라 여겨진다. 반면 미국에서는 기정 사실화된 HEU 프로그램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고 하는 여론이 날로 높아지고 있고, 부시 행정부의 인사들조차 기존 입장에서 후퇴를 보이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네오콘에 의한 정보조작임이 폭로되고 있어 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가로막는 요인을 제거하고 그 속도를 늦추지 않겠다는 북미간의 의사가 일치하여 합의가 마련된 것이다. 앞으로 HEU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는 BDA를 해결 과정과 같은 절차를 밟아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가속도를 붙여야 할 요구가 높은 북미는 불능화 개념에 대해서도 인식을 공유했다.

북한은 불능화가 동결과 폐기의 중간단계로서, 임시가동중단이 아닌 영구불능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북한은 경수로를 요구하였고 미국 또한 불가만을 외치지 않았다. 이는 지난 8일 대북 경수로 제공 문제와 관련해 송민순 장관이 "핵 폐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의제로 논의될 것이라는 게 관련국들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밝힌 데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논란의 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먼저 목록 협의와 신고에서 현존하는 핵프로그램과  보유한 핵무기 폐기를 분리해서 추진하겠다는 북한의 입장과 반대로 모든 핵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이 상충하고 있고, 다음은 경수로 제공 시점을 둘러싼 북미간의 시각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음도 확인된다.

③ 한반도 평화체제

북미 양자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현할 것을 합의하고 이를 논의할 참가국들을 정리하였다. 

우선 북미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회담국으로 직접적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여기에 한국과 중국의 참가로 최종 정리하였다 이는 김계관 부상이 "4개국만이 논의한다"고 말한 데서 확인된다.

이에 반해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에 대해 북미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담보할 수 있는 평화체제 구축이 선행되어야 함을, 미국은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 이후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체제를 실현할 것을 꾸준히 밝혀왔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구체적 내용들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 메커니즘을 어떻게 창출할지를 밝히기 위한 절차가 시작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북한 또한 "앞으로 힘을 다해서 빨리 조선반도에 평화체제를 수립함으로써 조선반도에 냉전의 산물을 없애버리자, 이것이 우리의 일치된 합의다"라며 지극히 원론적 수준의 발언에 머물고 있다.

이에 관해 각 나라마다 회담의 운영방식, 평화체제 구축의 로드맵을 그려보고 있는 현 상황을 그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는 형식적이고, 절차상의 문제가 아닌 한반도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는 과정인 만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고의 과정에 들어가 있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특히 미국은 그동안 자신이 누렸던 기득권을 잃지 않는 방향과 내용, 즉 주한미군의 영구주둔과 지속적인 한미동맹을 기필코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민족의 자주통일의 실현을 위해, 미국의 목적을 법·제도적으로 철저히 해체시키는 방향과 내용을 목표로 하고 있어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맹렬한 싸움이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한반도의 승자가 세계의 승자로 등장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북미 양자가 자신의 총운을 걸고 진행하는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다.

이 첫 회담의 시기는 2·13합의가 완료되는 4월 14일 이후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송민순 장관은 "6자 당사국 외무장관 회담에 이어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직접 당사국 고위급 회담을 가질 것"이라 밝혔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체제 회담은 신속한 개최를 약속한 2·13합의에 따라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는 시기에 이와 연동되어 열리거나 아니면 그 후에 진행될 것이다. 이 안에서 북미 외무장관 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향후 힐 차관보 또는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이 예상되고 있어 논의의 향배가 주목된다. 

<>3. 크게 주고 크게 받는 '대담한 거래' : 연내 북미수교, 남북정상회담 가능하다

핵보유국인 북한은 이미 오래전에 전략적 판단과 결심을 내렸다고 밝혔다. 모든 준비를 마친 북한은 자신이 마련한 계획표에 따라 미국이 대북적 대정책을 전환하도록 강제해내고 있다. 또한 철저한 행동과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의 공세적이고 능수능란한 정치외교전은 미국의 목덜미를 바짝 틀어쥐면서 더는 한눈팔지 못하도록 만들었으며, 놓여진 길로 정해진 속도로 달리는 미국에게 속력을 붙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미간의 적대관계가 근본적으로 청산되지 않고서는 관계정상화도 한반도의 비핵화도 평화체제도 실현될 수 없다. 물론 이 과정은 서로가 맞물려져 있다. 그러나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초기 이행조치는 우선 수교를 통한 외교관계로 북미관계정상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미 전략적 우위를 점한 북한은 미국과의 '대담한 거래'를 시작했다. 이번 회의는 북한이 미국과 크게 주고 크게 받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것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북한은 미국과의 수교수립 과정에서 연락사무소 설치를 거절하고 바로 대사급으로 이행할 것을 제안했다. 보통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들은 신뢰를 쌓는 과정으로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이 기본 관례로 되어왔다. 하지만 북한이 이런 형식적 절차를 버리고 시간을 단축할 것을 제시한 것은 매우 전향적이다. 또한 HEU 문제도 미국의 허를 찌르며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도 이례적이다. 그리고 2·13합의 직후 불능화에 대한 개념을 임시가동 중지라는 표현에서 멀리 나아가 핵폐기의 전 단계 개념으로 합의한 것도 대단히 전폭적인 조치이며, 그 기간을 6개월로 제안했다는 것은 행동 대 행동의 단계별 이행이 갖는 시간끌기라라는 우려도 일거에 날려 버렸다. 이렇듯 북한의 대담한 행보는 지난 시기와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다.

한발 나아가 북한이 미국이 제시한 불능화 시점과 북미외교관계 수립을 동시행동순서로 합의한다면 빠르면 오는 8월 늦어도 10월에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예상된다. 더 나아가 북한이 미국의 제안대로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을 북미관계 정상화 실현 후로 합의한다면, 지난해 11월 하노이에서 부시가 제안했던 것처럼 남, 북, 미 정상이 만나 한국전쟁의 종전선언과 더불어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북한이 미국과 크게 주고 크게 받는 대담한 거래를 실현하려는 이유는 한반도 평화실현과 통일에 유리한 지형이 창출된 지금의 열려진 국면을 한껏 활용해 북미관계 정상화 실현의 속도를 높여 빠르게 도달하려는 것이다.

또한 대담한 거래는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시기를 앞당겨 내는데 매우 유리하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은 앞서 제시된 북미관계정상화 일정을 활용해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 정세는 남북 정상이 한시라도 빨리 만나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통일회담을 열어야 할 필요성과 요구성이 그 어느 때보다 증대되었다. 격랑이 일고 있는 한반도에서 자칫하면 우리 민족은 또다시 외세에 의해 민족의 이익과 발전이 침해당하고, 우리의 운명 개척의 주도권을 놓치게 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2.13합의로 남북정상회담의 시기와 가능성은 연내에서 상반기로, 이번 북미관계정상화 실무회의는 정상회담 시기를 상반기에서 한발 더 앞당겨졌다. 정상회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의사가 전달되었고 북한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이 이번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보고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빠르게 열리면 열릴 수록 우리민족끼리, 남북관계는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관계로 진입할 것이다.

* * *

북한이 제안한 대담한 거래는 자신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며 일방적인 양보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대담한 거래는 그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담한 거래를 요구한다.

지난 10일, 북한은 '30일 이내(3월 15일 이전) 해결'을 다짐했던 'BDA'에 대해서는 "(미국이) 그것을 다 풀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지켜보고 있다. 만약 다 풀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에 상응한 우리의 조치를 부분적으로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입장을 주저없이 밝혔다. 미국의 약속 이행정도에 따라 13일, 방북하는 엘라바데이 IAEA 사무총장과의 논의과정에 곧장 영향을 미칠 것이다. 손해가 큰 쪽은 여전히 미국이다.

3월 15일, 미국과의 총결산을 향한 그 대단원의 막이 어떻게 열릴지 주목된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부설 한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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