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내삶, 사랑·자유·민주 녹아있는

[인터뷰] 킨 아웅 에이 ‘한국·버마 문학교류의 밤’ 초청 버마시인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11/04 [09:15]

시는 내삶, 사랑·자유·민주 녹아있는

[인터뷰] 킨 아웅 에이 ‘한국·버마 문학교류의 밤’ 초청 버마시인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11/04 [09:15]
“전 예술을 사랑합니다. 시를 포함해 예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죠. 그 속에 내 분신이라고 할 만한 사랑, 민주주의, 인권, 자유를 담았거든요. 내 철학이 담겨있는 겁니다. 그러니 내 삶이 시라고 할 수 있죠. 바로 내 자신이 시인 것이고요.”

짝사랑의 아픔을 달래려고, 애정을 받아주지 않는 여인에게 에둘러 가슴앓이를 귀띔하려고 치기(?) 어린 시모음집을 만들어 돌리며 캠퍼스를 맴돌던 청년. 마침내 미래와 희망까지 삼켜버린 버마 독재권력의 폭력을 해체하는 유명 시인이 돼 한국 땅을 밟은 킨 아웅 에이(53·남)씨가 기자와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버마를 사랑하는 한국작가들이 주최하는 ‘한국·버마 문학교류의 밤’에 초청돼 방한했다.

4일 오후 7시 서울 마포의 이원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시낭송 및 강연 행사 ‘슬픔은 역사로 살아 있다’를 하루 앞둔 3일 오전 11시. 중부여성발전센터 2층 회의실 기자회견 장에서 처음 마주한 그이는 깡말라 왜소해 보이는 체구지만 강렬한 눈빛의 소유자였다. 첫눈에 범상찮은 기운을 느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마음은 감옥 속에 갇혀있어”
 
어색하고 긴장된 웃음과 반색의 체면치레도 잠시. 버마의 현 상황, 이웃 태국에 망명생활을 하며 가족과 뿔뿔이 헤어져 사는 생이별의 아픔과 그리움, 그리고 버마의 시문학 사조와 자신의 시세계를 표현하는 이야기들을 쏟아낼 때는 지쳐 파리해 보이는 망명시인 어디에서 저런 에너지가 솟아날까 궁금하기까지 했다.

▲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이 4일 오후 7시 개최하는 '한국 버마 문학교류의 밤' 초청시인으로 방한한 버마 시인 킨 아웅 에이씨가 3일 오후 11시 기자회견을 가졌다.     © 최방식 기자

 
그의 몸에 밴 낙천성과 문화·예술적 감수성을 느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의 몸이 이처럼 자유롭게 세계를 넘나들지만 마음은 동료들과 같이 감옥에 갇혀있다고 했다. 그 오랜 세월 긴장된 삶 속에서 ‘의미 없는 나날들’(자신의 시 제목이기도 함)을 보내며 체화한 게 바로 지금의 그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그의 시문학 첫발은 역시 청년기 열병과도 같은 사랑. 중상층 부모덕에 양곤대 식물학과에 입학해 ‘예술센터’ 동아리 활동에 열중이던 그는 대학초반 교내 한 여성에 반했다. 짝사랑이었던 모양. 고백해도 받아주지를 않았다며 ‘독한 여자’라고 ‘오래된 질투’를 회상했다. 아픔을 치유하려고 시작한 게 시. 물론 에두른 무기(?)이기도 했다.

사랑고백으로 가득찬 시를 수백 편씩 써 조악한 복사판 소책자로 2~3백부 만들어 주변에 돌린 데는 두길보기 속셈이 있었다. 아픔을 담은 나름의 소중한 감성을 주변에 전달하고도 싶었고, 한 편으로는 이 시들을 보고 그 쌀쌀맞은 여성이 마음을 바꾸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했고.

그 덕에 그는 대학 안에서 사랑시 전문가로 유명세를 탔다. 그의 시쓰기와 기행(?)을 흉내 내는 이들이 여럿 생겼다니 재밌다. 그 때 그의 사랑과 열병, 그리고 그 끝의 아픔과 좌절은 그를 시인으로 끌어들인 안내자가 됐다. 훗날 낸 시집 이름 ‘사랑은 눈빛 속에 묻어난다’(Love lies on looking)는 바로 이때의 감성을 담은 것.
 
짝사랑 열병·아픔 그늘 되어...
 
열병도 잠시 대학 후반기에는 삶과 자유를 향한 시선이 트였다. 소수민족 출신(아버지 중국계, 어머니 아라칸계)으로서 뿌리찾기부터 군사독재에 대한 반항감 등이 시속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서슬퍼런 감시 속에서 저항시를 쓰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시 베트남전을 일으킨 미국을 비판하는 시를 쓰곤 했는데, 그 행간엔 군부정권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었죠.”

▲ 킨 아웅 에이 시인.     © 최방식 기자

 
그는 자신의 사회비판 정신을 고교 3학년 때 겪은 ‘우탄트 사건’에서 뿌리를 찾고 있었다. “독재자 네윈이 쿠데타를 일으킨 62년 유엔의 3대 사무총장을 지냈던 버마인 우탄트가 74년 사망했죠. 당시 버마 총리가 유엔에서 쿠데타비난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뒤를 봐준 게 우탄트 아니냐는 의혹을 산 것이죠. 독재자는 그가 죽자 홀대하는 장례를 치르려다 반발을 산 것이었습니다.”

양곤대 학생이 주축이 돼 우탄트 시신을 대학 내로 옮기고 성대한 장례를 치르려다 일이 터진 것이었다. 네윈은 결국 학내 병력을 투입했고 이 사건으로 수백명의 학생이 살해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교 3학년으로 멋모르고 참여했던 그는 군경을 피해 1년여간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대학생활 중에는 사회참여나 저항활동을 그리 많이 하지는 않았단다. 적접적 표현을 조심한 덕에 그의 작품이 검열에 문제된 적은 없었지만 정보당국으로부터 직간접 압력은 여러번 받았다. “한번은 경찰조사를 받았는데 저더러 ‘시 쓰지마’라고 하더군요. 또 한 번은 제 시를 게재한 잡지사 편집장에게 ‘싣지 말라’는 압력을 넣었고요.”
 
“시 쓰지 마, 싣지도 말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여기저기 떠돌며 사회생활을 했다. 그 8년여 동안 완성된 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의 인생을 바꾼 시 ‘의미 없는 나날들’(Days of meaningless)이다. 1988년 유명시평지 ‘네이 오’(봄호)에 실린 것. 그 전까지만 해도 그는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단다. 한데, 유명잡지에 시가 실리고 난 뒤 생각이 바뀐 것. 등단을 하게 된 셈이다.

군부독재에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사는 삶이 뿔이 빠지고 몸엔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소 같다는 생각에 ‘군부독재 하에선 미래도 없고 쓸모도 없는 하찮은 자신의 인생’을 빗대 쓴 시였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었다. 시인이 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 킨 아웅 에이 시인.     © 최방식 기자

 
그 뒤 버마 남쪽 작은 시골에서 음료수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8888민중항쟁’을 맞았다. 그해 시 발표로 유명해졌지만 항쟁에 참여할 길이 없었다. 첫 아이를 낳은 상태였고 시골마을에서 생계를 간신히 끌어가고 있던 터라 양곤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던 것. 민주세상이 오는 줄 알고 새 세상이 열리면 부르려고 ‘노래’(가사)를 하나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그냥 가지고만 있다고.

항쟁이 끝나갈 무렵 NLD(민족민주동맹)가 설립됐고 그는 소도시 지역 조직활동을 친구와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러다 90년 남부 시골도시를 탈출해 잠시 유랑생활을 시작한다. 만달레이에 6개월여 거주하며 그 곳 시인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들은 대부분 버마 안에서 모던계열의 시를 쓰는 선구자들이었다.
 
“새 노래, 여태 못 부르고...”
 
그 과정에서 또 한 편의 시를 내놓았는데, ‘향수’(Fragrance)다. NLD가 참여한 총선이 시인의 감성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이른바 향수(민주주의 냄새)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 뒤 본격적으로 모던계열의 시를 쓰며 행간에 민주주의 염원을 담았다. 게을러 시를 많이 쓰진 못했단다.

모던 계열의 시가 왜 미얀마에서 사회저항성을 가지는지 궁금해 하자 샤갈 이야기를 들려준다. “키스라는 제목의 그림 있잖아요? 모던 기법을 쓴 건데, 잘 보세요. 리얼리티는 없는 거죠. 사람이 키스하며 날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강력한 느낌을 주잖아요. 혁명의 동력이 될 수 있거든요.”

하던 김에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이야기까지 파고든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거든요. ‘원한다면/ 무한히 부드럽게 되리라/ 남자가 아닌, 바지를 입은 구름이 되리라...’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것인데, 모던계열의 작품으로 러시아혁명에 중요한 기여를 했거든요. 리얼리스트 고리키도 그의 시에 감동받았고요.”
 
▲ 킨 아웅 에이 시인.     © 최방식 기자


이젠 그가 선두 격이 돼 포스트모던 계열의 시풍을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버마에선 2002년경 시작됐는데 2~3년 사이 크게 확산됐고, 이젠 시의 거의 대부분(80%)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해체주의’ 흐름에 언어시 등이 많이 애용된다고.
 
“바지를 입은 구름이 되리라”
 
그에게 시는 도대체 뭘까 궁금했는데, 한마디로 돌아온다. “시 빼면 내 인생에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의 시 중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Book from a Silent Spirit, 2003)이 있는데, 자신의 최근 20년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단다. “아는 것, 하고픈 것 많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불만을 표현할 수도 없고요. 제거된 삶이라고 할 수 있죠. 말해도 목소리가 가늘어 알아듣지 못하는 꼭 ‘중음신’ 같다고나 할까요?”
 
 
[詩] 슬픔은 역사로 살아 있다Sorrow Presented as History(1990) 
킨 아웅 에이
  
어떤 해는 천연덕스럽게
잘못된 시간을 보여주는
망가진 시계 같은 거 일수 있지.
 
똑바로 보라구.
말들이 꽃봉오리처럼 내미는 걸.
열병에 걸린 환자처럼 네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가만 지켜보라구.
 
그건 말야,
혼란스런 진실 그 자체인
한 인간인 날 놀라게 하는 전신 거울.
 
난 강둑 근처에서
빛나는 별들을 모우고 있는 중이야.

 
[詩]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Book from a Silent Spirit(2003) 
킨 아웅 에이
 
난 학생들의 지리책 속에서 읽고 있다
난 긴 인류 역사 속에서 읽고 있다
난 망고나무와 작은 빗방울로부터 읽고 있다
난 내가 바다에서 표류해 온 햇수로부터 읽고 있다
난 나의 감각을 마비시켜 온 사건들로부터 읽고 있다
난 나를 불행으로 빠트리기 전 2분 안에 읽고 있다
난 요정담과 인공위성 뉴스 속에서 읽고 있다
난 믿을 수 없는 행운의 기만적인 속임수 속에서 읽고 있다
난 지속될 수 없는 없는 어떤 삶의 전환점 속에서 읽고 있다
난 무대 위의 벨벳 커튼과 액션 뒤에서 일어난 것들을 읽고 있다
 
나는 읽고 있다
아주 많이 읽고 있다
 
날 용서해 줄 수 있는가,
난 이런 일들을 말하려 애써 왔지만
하지만 어느 침묵하는 영혼처럼
듣거나 알도록 하는데 무력하기만 하구나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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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효 2009/11/04 [13:45] 수정 | 삭제
  • 좋은 시 감사합니다.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오버랩 되네요...혹, '의미없는 나날들' 시도 볼 수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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