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권력에 굴복, 법 시궁창 처박아"

미디어법 '절차 위법, 효력 유효' 판결에 언론단체 비난성명 줄이어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10/30 [14:19]

"헌재 권력에 굴복, 법 시궁창 처박아"

미디어법 '절차 위법, 효력 유효' 판결에 언론단체 비난성명 줄이어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10/30 [14:19]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에 '절차는 위반했지만 효력은 유효하다'는 희한한 판단을 내렸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날치기로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했고, 대리투표는 위헌이며, 법률 가결선포과정은 부적합해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받았다면서도 법무효확인 청구는 기각해 법논리가 아닌 정치권력에 굴복한 것이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판결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헌재(소장 이강국) 전원재판부는 29일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등 야4당 의원 93명이 지난 7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단독으로  방송법과 신문법, IPTV법(인터넷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등 이른바 '미디어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을 강행처리하자 4개 법안에 대해 청구한 효력정지 및 권한쟁의심판에 대해 "가결 선포의 절차상 문제는 인정되나 법안의 효력은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여당의 대리투표 행위와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사실,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재투표를 실시해 가결 선포한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되는 사실, 그리고  청구인들의 심의표결 권한 침해를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헌재는 법안 자체의 효력을 무효로 해달라는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문법 무효 청구에 대해 6대 3 의견으로, 방송법 무효 청구에 대해서는 7대 2 의견으로 각각 기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이하 미디어행동)은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절차는 위법, 효력은 유효'라는 헌재의 판결에 "황당하기 짝이 없는 궤변은 국민의 법감정을 시궁창에 내동댕이 치는 것이자 대의제 민주주의와 법치의 기본원리를 깡그리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 한나라당이 날치기 처리한 미디어법에 대해 '절차는 위법, 효력은 유효'라는 헌법재판소의 희한한 판결 내용을 전하는 한 포털사이트의 관련 보도내용.     © 인터넷저널


미디어행동은 특히 "날치기 처리된 미디어법이 절차와 원칙에 맞는지만 정확하게 판단하면 되고 그에 따라 부당한 과정을 거슬러 원점으로 되돌려놓는 것이 헌재의 임무"라며 "하지만 헌재가 법의효력을 승인해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을 정당화하고 조중동이 방송을 교차소유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자본이 지상파와 IPTV 등 방송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행동은 이어 헌재의 결정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자리에서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방송의 기능을 거세하고 정치권력의 방송장악과 미디어의 산업화에 종속되는 언론환경을 보장한 꼴이라며 지금까지 정부와 한나라당이 자행해온 불법 및 초법적 행위를 정당화할 뿐 아니라 헌재 스스로 정치권력의 하부구조로 편입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특히 재투표와 대리투표, 절차와 원칙위배의 위험을 무릅쓰고 목적을 관철하는 실력행사를 정당화한 이번 판결에 따라 국민은 이제 절차야 어떻든 경쟁과 효율을 극대화해 결과만 내놓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처세를 익히게 될 것이며 기만과 술수, 거짓과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결과만 이기면 된다는 시대정신을 배우게 될 것이라며 "헌재의 오늘 판시는 정권과 조중동과 자본의 대대손손 추앙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도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헌재가 위법으로 얼룩진 언론악법에 손을 들어준 것은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다수 정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만 하면 인정받는 다는 판결이라며 민주주의와 헌법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기관이 국민을 버리고 정권의 눈치를 보는 비상직적이고 비겁한 판결을 내렸다고 비난했다.

민언련은 이어 헌재판결을 지켜보며 이명박 시대의 법치가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 다시한번 확인했다고 밝히고 민주주의는 한 순간도 방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싸우면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언급했다. 또 현정권과 한나라당, 그리고 수구기득권 세력들은 헌재의 판결로 '조중동방송 만들기'에 성공했다고 오판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국민은 '조중동 방송'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도 같은 날 논평에서 헌재는 최후에 과정과 절차는 위법하지만 효력은 인정한다는 모순된 결론을 선택했다며 이 판결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 있어 헌법의 해석과 법치의 정도,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차지하는 지위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헌재가 헌법의 기본권에 부합하고 국민의 법감정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자니 정치현실을 감당하기 어렵고, 정치현실을 고려하자니 민주주의의 상식조차 온전하게 소화하지 못하게 되는, 그래서 궤변의 당사자로 전락하고 만 것이라고 덧붙였다.

언개련은 또 입법자의 최초 발의 이후 시민사회가 요동을 치고, 국회에서 난동이 일어나고, 급기야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존립근거마저 부정하는 판결을 내리게끔 한 언론악법 사태가 일단락되었다고 언급하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돼 우리 사회를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갔는지를 차분히 짚어볼 시간이 돼었다며 정치권과 시민사회 모두 맨 처음 혼란에 빠졌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무엇이 우리 사회구성원들을 이처럼 흥분하게 만들었는지를 짚어내고 대의제 미디어의 발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 대상이 된 미디어법의 핵심 내용은 신문과 대기업의 방송 지분참여를 허용한 것이다. 신문과 대기업이 소유할 수 있는 지상파방송의 지분은 10%로 제한하고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의 지분은 30% 이내에서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언론통폐합 이후 29년 만에 신문방송의 교차소유의 길이 열린 셈이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과 관련해서는 2012년까지 신문·대기업의 경영권을 유보하되 지분 소유는 허용키로 했다. 신문사와 대기업은 지상파보다는 수익 가능성이 그나마 보이고 당장 문호가 열린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신문 구독률이 20%가 넘는 대형 신문사의 경우 방송 진출을 할 수 없도록 사전규제장치를 추가했으며 신문의 광고수입과 발행부수, 유가부수 등을 공개하는 신문사만 방송에 진출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구독률 제한으로 방송에 진출할 수 없는 신문사는 조중동을 포함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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