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6자회담 만평, 예의 좀 지켜라

북한을 탐욕스런 테러리스트이자 미국을 주무르는 강자로 왜곡 풍자

박세열 <뉴스툰> 기자 | 기사입력 2007/02/28 [15:59]

‘조선’ 6자회담 만평, 예의 좀 지켜라

북한을 탐욕스런 테러리스트이자 미국을 주무르는 강자로 왜곡 풍자

박세열 <뉴스툰> 기자 | 입력 : 2007/02/28 [15:59]
이미지를 변형시켜 논평을 전달하는 시사만화는 그 특성상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 맥락을 살피지 않을 때, 시사만화의 이미지는 변형을 넘어서 왜곡되는 것이다. 이는 독자의 현실 판단력을 흐린다. 특히 그 시사만화가 실린 매체가 여론 형성에 있어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2월 13일 막을 내린 6자 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가 마련되었다. 영변 핵시설 동결(freeze)에 합의한 지난 94년의 제네바 합의 때와 달리 중유 5만t을 받는 조건으로 60일 이내 핵시설 '폐쇄(shut down)'하는 것이 구체적인 목표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클 것이다.

 “독자의 눈 가리지 말라”
이는 부시 대통령의 미국 내 정치적 입지가 반영된 것일 수 있고, 아직 북핵 해결의 초기 단계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60여년이 지속돼 온 미국·북한 또는 남북한의 반목이 전환국면으로 넘어가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의 절박한 상황은 ‘적’이라 규정한 국가들과의 타협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희망이 엿보인다.

그러나 국내외 보수적인 매체들은 이번 회담의 성과를 ‘굴복’이라며 깎아내리려 하고 있다. 특히 일본과 미국의 보수언론들은 네오콘 집단의 싸늘한 반응을 싣고 있다. 일본에선 자국민 납치 문제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스스로 타국민 납치를 자행해 태평양 전쟁의 소모품으로 사용한 전력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에선 이라크 전쟁의 실패와 이란 핵문제의 지지부진한 성과 등, 현 보수 집권층의 무능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썩 달갑지만은 않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남북한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는 해외의 반응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국내 보수신문들과 조선의 반응은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해외 만평이 북한을 다룰 때, 그들은 ‘현실’을 우선시한다. 당연하게도 그들에게 있어서 김정일은 ‘독재자’며 위험한 무기를 가지고 불장난을 하는 ‘악의 축’일 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마호메트 만평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서구인들에게는 ‘왜 그 사건에 무슬림들이 반발하는가’의 문제보다 당장 원칙론적인 ‘표현의 자유’가 더 중요하게 생각된다. 역사적 맥락은 이들 고매한 ‘합리주의자’의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마닐라타임스> 마니 아넬 프랜시스코의 만평     © 인터넷저널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당시 필리핀 마닐라 타임스의 마니 아넬 프랜시스코의 만평을 보자. 북핵이 ‘전지구적 위협’의 수준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런 수준의 만평을 그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문제를 보는 방식은 다르고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의 팩트를 다루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모든 비극의 근원은 강대국의 논리에 따라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지어진 ‘분단’에 있는 것이며, 우리가 살아낸 ‘분단 역사’에 대한 고려 없이 2월 13일 타결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시사만화는 역사적인 맥락을 거세하고 나아가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있다.
▲2월 14일자 조선만평     © 인터넷저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미국과 이란. 누가 강자인가? 간단한 질문에 답하기 힘들다면 좋다. 미국과 북한. 누가 강자인가? 2월 14일자 조선만평의 답변은 명쾌하다.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북한이 강자가 된다. 그리고 다른 ‘테러리스트’ 혹은 ‘테러 지원국’들은 새로운 ‘먹잇감’이 된 미국을 쳐다보며 ‘그래 그거야’ 하고 생각한다. 시사만화가 이미지를 왜곡한 대표적인 사례다.
▲2월 9일자 조선만평     © 인터넷저널

조선만평은 6자회담이 시작된 8일부터 결과물이 나온 13일까지 대단한 관심을 보여왔다. 하지만 엿새 동안 무려 네 번에 걸쳐 관련 만평을 그렸음에도 협상 내용과 상관없이 김정일을 개인적 탐욕을 충족시키는데 혈안이 된 회담의 망나니로 묘사하고 있다. 남한 최고의 언론권력을 가진 조선일보의 눈에 북한은 현존하는 ‘악’ 그 자체일 뿐이다. 북한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한 설명은 오간 데가 없다. 뭐 딱히 새삼스럽진 않지만. 앞서 한 질문을 살짝 비틀어본다. 정보의 전달과 수용의 측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매체의 시사만화가와 독자. 누가 강자인가?

 “미국·북한 누가 강자야?”
우리는 적대적인 대북정책 기조를 완전히 변화시킨 6.15 공동선언의 의의를 살리려는 역사적 맥락을 짚어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 ‘북한이 달라는 대로 줘도 남는 장사’라는 말을 했다. 옳은 말이다. 남한과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체제의 안정은 남한에게 있어서 득이 되면 되지 잃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내부적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북한을 여전히 ‘강자’의 위치에 두는 ‘조선일보식 왜곡’은 기껏 조성한 화해무드를 부정하고 역사의 시계바늘을 되돌리는데 다름 아닌 것이다.

만화는 우리가 이미지로 사고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매체다. 그리고 이미지는 문자보다 더 강하다. 그만큼 책임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과거 시사만화가들은 직접 취재를 나갔다고 한다. 자신이 정한 주재와 소재의 왜곡을 최대한 피하면서 품격 있는 풍자를 구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 하나로 간단한 팩트 확인정도는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이미지를 왜곡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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