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닥쳐, 난 화해할 준비가 안됐어”

온라인포럼 최방식 본지 편집인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2/26 [18:35]

“입 닥쳐, 난 화해할 준비가 안됐어”

온라인포럼 최방식 본지 편집인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2/26 [18:35]
“용서, 좋은 말이지/ 잊으라고? 그럴 것 같지 않아/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난 대가를 치렀고.../ 난 화해할 생각 없어.../ 난 여전히 너무나 화나고.../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지.../ 난 내 할 말을 하고 후회 없이.../ 왜... '입닥치고 노래나 불러, 안그러면 저승에 보내주마' 하는/ 편지를(내게) 보내는 건지...”(노래 ‘화해할 준비가 안됐어’ 중)

설을 앞두고 할리우드에서 재미있는 소식하나가 날아왔다. 여성 3인조 컨트리 보컬그룹인 딕시 칙스(Dixie Chicks)가 그래미상 5개부문을 휩쓸었다는 것이었다. 영예의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상을 받은 노래는 ‘Not Ready To Make Nice’(화해할 준비가 안됐어). 부시를 조롱하는 입바른 소리 한번 했다가 된통 당한 뒤 내놓은 아픔이다.
 
▲여성 3인조 컨트리보컬그룹 딕시 칙스. 


2003년 3월. 부시 정권이 이라크 전쟁을 막 시작한 때다. 딕시 칙스는 런던의 한 극장에서 팬들의 환호 속에 공연을 시작했다. 리드 싱어 나탈리 메인스가 갑자기 한마디 던졌다. “우리 대통령이 나와 같은 텍사스 출신이라는 게 수치스럽습니다.”

‘평화’를 선택한 ‘그래미상’

 이 그룹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최고 컨트리 앨범상’을 비롯 그래미상을 여럿 거머쥔 데다 데뷔앨범인 ‘Wide Open Spaces’(열린 광장)이 1천만장이 넘게 팔렸을 정도였다. 최고의 스포츠이벤트인 슈퍼볼경기 때 ‘국가’를 부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부시의 권력도 하늘을 찌를 때였다. 결국 그녀의 조롱은 인기절정의 미녀 3총사를 나락으로 빠뜨렸다. 나탈리의 말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살해위협을 받았다. 방송사들은 그룹의 음반을 금지시킨 것도 모자라 소각운동까지 벌였다. 그런 3년의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며 만든 노래가 바로 ‘화해할 준비가 안됐어’였다.

▲"부시와 같은 텍사스 출신이라는 게 부끄럽다"는 한마디로 고초를 겪은 여성 3인조 보컬그룹 딕시 칙스. 3년여간 겪은 고통을 다큐멘터.
딕시 칙스는 그 때의 시련과 고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입 닥치고 노래나 해’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다. 요즘 미국에선 한창 인기가 좋단다. 평화와 반전을 노래하는 가수가 많지 않은 요즘, 그녀들의 시련을 마다않는 용기는 이렇게 끝내 영광이 돼 돌아온 것이다.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부시의 권력도 하릴없나보다.

그래미상을 수여하는 ‘미레코딩아카데미’는 할리우드 음악계의 보수권력. 그 뿌리가 꽤나 깊다. ‘빠박이’ 머리로 익숙한 영국의 여성 반전 음악인 ‘시네이드 오코너’는 91년 그래미상 시상식 때 무려 4개부문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을 거부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을 벌이고 있을 때다. 할리우드가 걸프전을 찬성하는 분위기여서 동조하지 않겠다고 한 것.

시네이드 역시 반전평화 언행으로 꽤 많은 시련을 겪은 음악인이다. 인기 절정의 90년. 뉴저지의 한 콘서트에서 미국국가를 불러달라는 주최측의 요구를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내 음악은 미국 국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나. 역시 방송사들의 음반금지와 갖은 협박에 시달렸다.

반전 음악인만 당한 건 아니다. 정치행보에 여간해선 끼지 않는 롤링스톤스. 그도 2005년 ‘스위트 네오콘’이라는 노래로 적잖은 고생을 했다. 부시와 라이스, 그리고 네오콘의 전쟁을 비판한 노래로 “똥으로 가득찬 위선자들아...” 등의 노랫말을 담았다. 방송금지, 불매운동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그러고 보니 부시 부자는 전쟁만 잘 한 게 아니라 문화예술의 자유 억압에도 귀재였던 모양이다.

“똥으로 가득찬 위선자들아...”

그 결정판은 2005년 라스베이거스의 알라딘호텔 콘서트 무대. 미국 최고의 컨트리 록 가수 린다 론스타트가 느닷없이 ‘화씨 9/11’을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을 “진실을 알려 이 나라를 치유하고 있다”고 치켜세워다. 그리곤 그를 위해 ‘이글스’가 불러 유명한 노래 ‘Desperado’(무법자, 부시를 빗댐)를 부르겠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콘서트장은 꼴통들의 폭력으로 난장판이 됐고, 사장 빌 티민스가 그녀를 무대에서 강제로 끌어내 객실에 감금하기까지 했다. 린다를 옹호하는 음악예술인단체와 전미 여론, 그리고 알라딘 호텔을 인수하게 된 신임 사장(플라넷 헐리우드사)의 중재로 그녀는 보수의 집단폭력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었다. 노랫말이 재밌다. "무법자여, 정신 좀 차리세요/ 너무 오래 나다녔잖아요 /그대는 말썽꾸러기예요.../ 무법자여... 제발 문 좀 열라구요.../ 누군가 그대를 사랑하도록 허락하세요.../ 너무 늦기 전에 말이에요."

▲최방식 본지 편집인.
기타 하나와 목소리로 평화를 외친 반전음악인들. 시련을 마다않는 용기와 사랑의 노래는 심금을 울린다. 49회 그래미상 조직위의 결정을 환영한다. 밥 딜런이 불러 귀에 익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의 “얼마나 죽어야 깨닫겠는가?” 노랫말이 귓가를 맴도는 밤이다. 다큐영화 ‘입 닥치고 노래나 해’는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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