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사상가 묵자, 묵비사염(墨悲絲染)

광화문단상 “인질·포로 교환, 20년간 양보 안한 원칙이라고?”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8/02 [16:45]

반전사상가 묵자, 묵비사염(墨悲絲染)

광화문단상 “인질·포로 교환, 20년간 양보 안한 원칙이라고?”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8/02 [16:45]
하루 연장, 또 하루 연장. 그리고 협상, 그 다음엔 살해. 인터넷게임이 아닙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아니고요. 국가 대항 축구 경기는 더욱 아닙니다. 아프간 사막에서 한국인 인질을 놓고 벌어지는 실황입니다. 탈레반의 일거수일투족에 온국민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습니다. 아프간과 미국 정부의 태도에 21명의 목숨이 간당간당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한심한 처지가 돼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피말리는 씨름은 또 언제까지 벌여야 할까요?

NGO봉사단이라고 하던데 외신은 선교사라고 부릅니다. 23명의 한국인이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가는 길에 탈레반에게 피랍된 게 벌써 2주가 훌쩍 넘었습니다. 피랍자들이 여행한 곳은 이미 밝혀졌듯이 탈레반의 거점 지역으로 아프간 내에서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오래전부터 한국인 선교사 인질위험이 나돌았고요. 정부도 1년전부터 경고를 했었지요.

아프간에 못 들어가게 한다고 정부더러 ‘사탄’ 운운했던 일부 기독교인들이여! 지금까지 2명의 남자 인질이 살해됐습니다. 21명의 인질이 하루하루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무장 텔레반은 하루, 또 하루 협상시한을 연장하며 심리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고 말릴 때는 못 가게 한다고 비난하더니, 이젠 속이 좀 시원들 하십니까?

 “하루, 또 하루, 피말립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죠. 그러니 종교이야기는 좀 접어둘까요? 그럴 수는 없지만 조금 있다 하기로 합시다. 그럼 전쟁이야기를 먼저 해볼까요. 이건 분명 미국의 전쟁입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부수고 5천여명의 인명을 앗은 알카에다를 응징하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한 전쟁이지요.

한국은 왜 갔지요? 미국이 요청해서 갔습니다. 대테러전쟁에 참여해야만 인권국가고 선진국가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나요?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두고 보자”는 미국의 협박성 태도가 말 못할 더 큰 연유였겠죠? 파병을 했지요. 동의·다산 부대입니다. 대테러전투를 지원하는 의료부대와 공병부대지요.
 
▲ 알자지라 방송이 공개한 비디오.     ©인터넷저널


전투부대가 아니라며, 아프간의 재건과 진료를 한다고 변명했지요. 대테러전투 지원부대인 걸 세상이 모를까봐 그랬나요? 미국의 요청을 받고 간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그리 주장했나요? 하여튼 미국과 아프간의 대리정권만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하는 게 맞죠.

한데 지금 두 정부는 한국인질 문제에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입니다. 아프간 정부는 인질 석방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면서도 탈레반이 요구하는 딱 하나 ‘포로와 인질 교환’만은 안 된다고 그럽니다. 탈레반을 자극하는 군사작전 등 각종 서툰 짓을 하면서요. 인질협상에도 성실한 태도가 아니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를 아프간으로 부른 당사국입니다. 한국의 두 부대 파견에 가장 감사해야 할 나라죠. 그런데 ‘뒷짐’이라니요. 미안했는지 가끔 탈레반을 비난하며, 한국의 노력을 적극 돕겠다고는 합니다. 역시 탈레반이 요구하는 딱 하나 그 것만은 안된다면서요. 인질과 포로 교환을 하지 않는 건 미국이 오랜세월 세워놓은 전통이고 대테러전쟁의 원칙이라나요?

정말 웃기는 이야깁니다. 차라리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게 낫겠습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인질-포로 맞교환’ 검색을 해보십시오. 지난해 1월 미국의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질 캐롤 중동통신원이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됐을 때 탈레반 여성포로 5명 석방에 100만달러까지 얹어주고 캐롤을 살렸습니다. 미국이 선례를 만든 겁니다.

 미국인 ‘예스’, 한국인 ‘노’

 아프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탈레반은 지난 3월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의 아프간 특파원 다니엘 마스트로 자코모 기자를 납치했습니다. 아프간 정부는 5명의 탈레반 포로를 석방하면서 1천만달러까지 지급했다고 합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세운 룰이 여기에서도 지켜지고 있군요.

여기서 미국 고위 관리의 주장을 한 번 들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양보하지 않는 다는 미국의 정책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난 20여년간에 걸친 미국의 정책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양보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입장엔 변함이 없습니다.” 두 번째 인질이 살해되고 나온 논평입니다. 미 국무부 톰 케이시 부대변인의 말이죠.

할 말을 잃게 합니다만, 이쯤 되면 감을 잡아야겠죠. 거짓말쟁이 미국과 아프간 정부를 압박해야 합니다.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데, 미국인을 뺀 나머지 국가 사람들이 인질로 붙들릴 때만 지켜지는 원칙인가 봅니다. 그 걸 확인해 둬야겠죠. 아프간 정부에도요. 이탈리아 기자는 되고 한국인은 안 되는 이유가 뭔지를 들어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 알자지라 방송에 공개한 한국인 인질을 찍은 동영상.     ©인터넷저널


아프간 정부와 미국 정부 모두 안 된다고 할 겁니다. 이미 그렇게 얘기했고요. 제 일이 아니니까. 손해 볼 것도 없으니까. 남은 길은 딱 하나 뿐입니다. 동의·다산 부대를 즉시 철수시키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이 주도한 대테러 전쟁에 참여한 걸 우리 국민과 아프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질을 석방해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탈레반이 왜 지금 여행자를 납치하고 살해하는 줄은 물론 아시겠죠? 탈레반은 집권세력이었습니다. 미국이 침공해 밀어내기 전까지는요. 그러니 미국이 점령한 뒤 세운 카르자이 정권과 경쟁관계에 있죠. 그래서 국토 전역에서 심각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미국편을 들고 경쟁자편을 드는 우리가 반가울 리 없죠.

 침략군 뒤 따르며 선교라?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왜 남의 땅, 남의 성지에 가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모욕하냐는 겁니다. 미국군이 침략해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파과하며 지나가는 그 뒤를 따라 다니며 선교를 하는 기독교 광신도들의 태도를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인질의 생명이 긴박한 때 삼가야 할 얘기랄 수도 있지만 답답해서 해봅니다.

지난해 국내 한 기독교 단체가 아프간에서 2000명이 참여하는 ‘평화행진’을 벌이려 했습니다. 알고 보니 기독교 선교대회였습니다. 아프간 정부가 테러(인질) 위험이 있다고 즉시 반발했고, 한국 외무부도 대회취소를 종용했죠. 그 때 광신도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돈 줄 아십니까?

한국정부가 방해하는 데 사탄의 사주를 받았다고 그랬습니다. 정상적 외교통로로 입국을 불허하니까 어떤 이들은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우회해 잠입하는 길이 있다고 인터넷에서 알리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이슬람장벽이 무너질 것이라며 조금만 더 노력하자고 선동하고 다녔죠.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전투병과 다른 게 하나도 없습니다.

▲ 한국인 피랍자 23명.     © 인터넷저널


미국역사에 ‘눈물의 여정’이란 기록이 있습니다. 침략자들이 원주민(인디언)을 강제로 서부 사막지역으로 이주 시킬 때의 슬픈 역사랍니다. 무려 3천만명의 원주민이 살해됐습니다. 이제는 버젓이 제 땅이라고 행세하고 있죠. 기독인들이 북남 아메리카의 주인이 된 것도 벌써 수세기째군요.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도 서방세계가 부른 갈등이 참혹한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이슬람이 그 마지막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죠. 잔인한 정복과 식민지 전쟁. 아마 성경 어느 구절로도 용서가 안 되는 살육이고 폭력일겁니다.

 “전쟁과 폭력, 용서못해”

 BC 4세기 경 피비린내 나는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사상가이며 공자의 후배쯤 되는 묵자가 있었습니다. 만민평등의 겸애론, 침략과 정복을 반대하는 비공 반전사상으로 유명하죠. 그 묵자가 실이 물들면 하얀 해지기가 어렵다며 슬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악에 물들면 선해지기 어렵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거죠. 탈레반, 아프간·미국·한국 정부, 그리고 우리 모두 묵비사염(墨悲絲染)을 되새겨 봐야 할 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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