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왔다 피묻은 야수의 발톱과 함께 오월은 왔다 피에 주린 미친 개의 이빨과 함께 오월은 왔다 아이 밴 어머니의 배를 가르는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오월은 왔다 자유의 숨통을 깔아뭉개는 미제 탱크와 함께 왔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일어섰다 분노한 사자의 울부짖음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파괴된 인간이 내지르는 최후의 절규와 함께 그것은 총칼의 숲에 뛰어든 자유의 육탄이었다 그것은 불에 달군 철공소의 망치였고 그것은 식당에서 뛰쳐나온 뽀이들의 식칼이었고 그것은 술집의 아가씨들의 순결의 입술로 뭉친 주먹밥이었고 그것은 불의의 대상을 향한 인간의 모든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일어서는 풀잎으로 풀잎은 학살에 저항하는 피의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피의 학살과 무기의 저항 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광주 1980년 오월의 거리에는!
금년 대선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광주의 5.18은 풍성하고 성대했던 모양이다. 우선 대선주자들이 너도 나도 광주로 몰려가 화려한 말잔치를 했다. 동지를 배반한자도 5.18을 노래했고, 가해자의 편에 있었던 정당의 대표도 행사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렇게 5.18은 싸구려 술집의 작부처럼 분바르고 치장한 이들의 잔치가 되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는 요즘의 학생들이 5.18이 무슨 날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모두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교육 탓이다. 제발이지 5.18의 그 피 냄새만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자. 정치권에서 5.18 묘역참배를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나는 만해마을에서 술만 진탕 마셨다.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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