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선 한없이 작고 미력한 난 이방인"[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⑥] 대선 한달 앞둔 UPLink 주민운동“우두둥, 퉁! 쿵! 툭!” 오늘도 어김없이 망고가 폭탄처럼 지붕을 강타했다. UPC사무실에 망고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하루에 1~2번씩 다 익은 망고열매가 떨어진다. 묵직한 것이 잘못 맞았다간 골로 가겠다. 지붕에 구멍이 안 생기는 게 신기할 뿐이다.
한번은 새벽녘에 떨어진 적이 있는데 자다가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헐~ 종종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지만 마당에 떨어진 망고를 깎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새콤달콤한 것이 내가 여기서 즐기는 유일한 간식거리다.
새벽 1시까지 6시간여 동안 쉼 없이 진행된 회의에서도 50여명의 참석자들의 집중도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 무게가 너무 버거워 나는 2시간여만 참석하고 슬쩍 도망 나오고 말았다. 헐~ "우둥퉁, 망고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어제까지 절반의 사람들은 돌아갔고, 현재 20여명 정도만 남았다. 유도유노 현 대통령과 메가와티 대선후보와의 면담이 확정되면 다시 자카르타로 온다고 한다. 교통비를 생각하면 그들에게 큰 부담일터인데도 감수하고서 참석하고 있다. UPC는 그들이 자카르타에서 머물 수 있도록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고비용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와 다르게 지역 주민들이 모두 모여 며칠씩 토론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비능률’이라는 것으로 표현하는 이 과정이,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효과적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능률’이라는 이유로 오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다 다를 터이니. 와르다씨에게 의견을 물으니, 고비용이기는 하나, 교육과정이기도 하단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풀뿌리 조직운동은 많이 약한 편이어서 UPC는 이들이 조직활동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이런 계기를 통해 더불어 훈련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시위하러 가기 전에 UPC활동가와 함께 시위 구호 연습도 하고 대선후보 만나러 가기 전에 어떻게 발언하고 협상할 지 등에 대해서 토론도 한다. "비능률이 바로 민주적 의사결정과정" UPC활동가들을 포함하여 매일 40인분의 2끼 식사를 준비하느라 주방장인 마뜨리와 빠르미의 고생도 말이 아니다. 글 쓰고 자료 조사하느라 화요일부터 계속 사무실에만 있었는데, 계속 분주히 오고 나가고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보니, 때 되면 해주는 밥만 챙겨먹는 내가 꼭 식충이 같이 느껴진다.
말이 자원봉사자이지, 언어문제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당초 예상한 일었지만, 그래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1백만 표 모으기 캠페인과 시위에 시달리다 돌아온 활동가들과 주민들에게 마사지해 주는 것으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달해 본다. 이틀 동안 후원금 좀 마련해 보겠다고 짬 내서 번역 일을 했더니, 엉덩이뼈와 등뼈가 뻐근하다. 주민조직 사람들이 서류작성에 취약하고 전문성이 부족해 조직활동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서 UPC가 각 주민조직에 비디오카메라를 1대씩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활동과 목소리를 영상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풀뿌리의 조직활동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문제는 빈민조직이다 보니, 비디오카메라 한대를 사려면 최소 미국돈으로 4백달러가 필요한데, 하루를 겨우 먹고 사는 빈민들에게는 버거울 뿐이다. 그래서 UPC에서는 비디오카메라를 후원할 곳을 찾고 있는데, 그 노력에 작으나마 보태고 싶다. "내가 버러지 같다는 생각에 그만..." 이곳에서 한없이 작고 미력한 나를 본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는 일 없이 보살핌만 받고 있는 내가 처음으로 버러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 밑에서 편히 지낼 때도 못 느꼈던 것인데… 하루하루 생존과 투쟁하고 있는 이들을 한 발 물러서 바라보고만 있는 내가 이방인 같다. 내일 인도네시아의 노동문제와 노동운동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노동단체 사람과 만나 인터뷰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빈민문제는 곧 노동운동의 활성화와 직결되는 문제이리라. 빈민촌의 위생문제도 심각해서 인도네시아에서 큰 환경단체 중 하나인 왈히(WALHI)도 월요일에 방문해 현황을 알아 볼 계획이다. 사전에 조사 좀 하고 가려 했더니 웹사이트가 죄다 인도네시아어밖에 없다. 젠장, 오늘은 열심히 인도네시아어나 공부해야겠다. 삼빠이 라기(Sampai Lagi). ‘다음에 봐요’라는 뜻.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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