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27일 오후 성남시에 있는 봉국사의 효림 주지 스님을 내방, 소신과 신념을 지키며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효림 스님은 범여권은 후보 단일화를 이뤄야만 승산이 있다고 언급하고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당부했다.
손 전 지사가 봉국사를 찾은 시각은 오후 3시쯤. 경기지사 선거에 나설 때나 지난 해 100일 대장정 등을 통해 스님과 친분이 있던 손 전 지사의 이날 방문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일요일임에도 오전 바쁜 행보를 마친 손 전 지사는 점심 뒤 갑작스럽게 전화를 걸어 찾아가겠다고 했고, 효림 스님은 외부에서 손님을 만나던 중 연락을 받고 급히 돌아오게 된 것이다. 스님은 만해사상선양회 사무총장 겸 본지 발행인이다. “손 캠프로 사람 몰려든다던데...” “기자들이 손학규 후보를 최고로 꼽습디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손 전 지사 캠프로 몰려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번엔 특정 대학 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반가운 맞절에 이어 악수로 손 전 지사를 환대한 스님이 차를 한 잔 마시며 대담을 시작했고, 몇 가지 인사말 끝에 건넨 이야기다.
손 전 지사도 “예전 사회운동을 이야기 할 때는 무림과 학림을 꼽았는데, 이제 보니 효림파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다”고 응답했다. 스님을 만나려고 손님이 많이 찾아온 걸 보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손님 중 한 분이 “스님 덕에 우리 모두 손학규파가 되는 것 아니냐”고 언급, 좌중을 웃음바다로 이끌었다. 손 전 지사는 효림 스님의 ‘특정 대학 출신’ 이야기에 대해 “어느 당은 안 된다는 말씀으로 들린다”고 응답했고, 함께 동석했던 이들은 “듣고 보니까 그렇기도 하다”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스님은 이러저러한 이야기 끝에 정치이야기를 더 했다. 범여권은 후보단일화를 해야만 이번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며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말을 이었다. “2002년에는 이런 분위기는 없었습니다. 헌데 올해엔 시민사회에서 그런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민운동본부도 곧 설립될 것 같습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후보를 확정하면 승산이 있을 겁니다.” 스님은 특히 “그간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등 재야 후보의 움직임과 대선 참여가 범여권 후보단일화(오픈 프라이머리)의 흥행과 본선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여의치 않을 성 싶다”며 “결국 손 전 지사에게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범여권 후보군에서 눈에 띄는 후보 중 한명이 된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학림·무림 이어 효림파 생겼나” 스님은 다만 “내가 정치문외한이지만 한마디 하자면 손 전 지사는 한국정치판에 안 맞게 너무 점잖다”며 “무리수를 두지 않고 꾸준히 저력을 키워가는 것이겠지만, 좀 더 치고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탈당시 한 일화를 소개했다. “내가 당을 나온다고 하니까 골수 여권 지지자 한 분이 ‘절대 나오면 안된다’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 분에게 ‘왜 당신은 여당을 지지하면서 나더러 한나라당 탈당을 하지 말라고 했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탈당은 정치인의 소신이나 신념과 무관하게 낙인이어서 그랬다’고 답하더군요. 전 각오하고 나왔습니다.” 이에 효림 스님은 “처음엔 저도 그걸 걱정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해소된 듯하다”고 응수하자, 손 전 지사가 말을 이었다. “93년이죠. 5·18에 대한 국가차원의 기념행사가 처음 열렸을 때 전 민자당 의원으로 유일하게 그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광주사람들에게 야유도 받았죠. 하지만 당시 여권의 이길재, 장영달 의원 같은 분들이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이라고 보호했고, 그 뒤에도 전 이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했습니다. 결국 광주분들의 시각이 바뀌더군요.” 효림 스님은 이어 100일장정을 하던 중 손 전지사가 만해마을에 들려 담소를 나눴던 이야기를 꺼내며 “트랙터, 경운기, 트럭 운전에, 공장에서 용접까지 못하는 일이 없을 정도”라며 “이 시대 정치인 중 이처럼 서민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는 이가 몇이나 되겠냐”고 추켜세웠다.
이에 손 전 지사는 “나주의 들녘에서 반나절이나 트랙터를 몰고 나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 모정에 앉아있는데, 한 할머니가 반갑게 다가오더니 ‘어떻게 그렇게 일을 잘 하냐, 트랙터까지 몰고...’라고 하시는 찬사를 들은 적이 있다”며 “시늉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땀 흘리려고 달려드니 그렇게 되더라”고 응답했다. “탈당, 소신 대로 각오하고 결행” 손 전 지사는 또 광산 체험이야기도 하나 꺼내 놨다. “100일장정을 하며 막장엘 2번 들어갔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고 맘에 가책을 느꼈죠. 제대로 안했는데 보도가 잘 된 거였거든요. 흉내만 낸 게 아닌가 찜찜한 마음에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고 3번째 도전했습니다. 두 가지 전제조건을 달아서요. 하나는 다른 광부와 같은 시간 같은 조건으로 일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간부가 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죠. 하루 종일 한 사람 분을 제대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광부들과 함께 술을 한잔 하니 그들이 마음을 열더군요.” 스님이 자신도 그냥 한번 막장에 들어가 구경한 적이 있다며 폐소공포증이 클 텐데 대단하다고 언급하자, 손 전 지사는 “힘들고 두렵기도 했지만 자원한 건데 형편없게 해 망신당할 수는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 “일을 끝내고 그들과 술을 한잔 하는데 몇 분 부인에게서 전화가 오고 그들이 나에게 전화를 바꿔주더라”며 “탄광촌 집에서는 제때 안돌아오면 사고와 관련된 것일 수 있는데, 부인들이 남편과 내 전화 목소리를 듣고는 그렇게 좋아 하더라”고 힘주어 말했다.
손 전 지사는 100일 장정에 대해 몇 가지 더 이야기를 들려줬다. “100일간 민가를 돌아다녔는데, 60~70일을 농부(공장) 집이나 마을회관에서 잤습니다. 절에서도 5~·6일 잤을 겁니다. 나머지는 모텔에서 잤고요. 모텔에서 자는 날은 오랜만에 샤워를 할 맘껏 할 수 있는 날이죠. 몸은 고생이었지만 맘은 참 기뻤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밤새워 이야기 하고 싶어 해 잠 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도 몸이 건강했죠. 변도 노랗게 황금색이었습니다.” 손 전 지사는 이날 봉국사를 찾은 것에 대해 “어떤 이들은 제가 봉은사, 낙산사 등 절에 자주 나타나는 것을 보고 불교인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며 “기독교 신자이지만 절에 많이 다니니 반쯤은 불교도”라고 말했다. 이에 효림 스님은 “진보적 사고를 가진 기독교인”이라며 “그래서 불교인맥이 넓고 조계종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언급했다. “100일장정 몸고생, 맘은 편해” 한편, 손 지사는 이날 봉국사에서 뒤늦게 귀가한 효림 스님을 기다리는 동안 만영(여공) 스님의 ‘와편’(폐기와에 글과 문양을 새긴 예술 작품)을 세세히 감상했다. 효림 스님을 만나자 마자 “이절에 오니 예술향기가 가득하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스님은 만영 스님의 작품 하나를 손 전 지사에게 선물했다.
그 작품에 새겨진 문구는 이랬다.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입도 없고 또한 밑도 없다.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 인곡당 법장스님의 계를 여공 새김.” 법장 스님은 입적하신 전 총무원장 스님이다.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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