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때부터 꿈, 드디어 시작되고”

[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①] 자카르타 빈민단체 UPC 봉사...

윤경효 | 기사입력 2009/05/18 [18:29]

“초딩 때부터 꿈, 드디어 시작되고”

[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①] 자카르타 빈민단체 UPC 봉사...

윤경효 | 입력 : 2009/05/18 [18:29]
몽골에서 그간 환경리포트를 전해주던 윤경효 통신원이 이번엔 동남아시아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를 3~4개월씩 자원봉사를 하며 순방할 예정입니다. 이에 본지가 지난 12일 자카르타로 그 장도의 첫발을 내딛은 윤경효 통신원의 생생한 현장 일기를 시작합니다. /편집자
 
5월 12일 오전 9시. 마침내 싱가포르 행 비행기를 탔다.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자카르타로 들어가면 저녁 6시에 도착할 예정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의 꿈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 아버지와 남동생의 배웅을 뒤로하고 출국심사대 앞에 서 있자니, 기쁨인지 어이없음인지 모를 웃음이 새어 나온다.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것을 비로소 이루게 되면 이런 기분이 든다. 허 허 참... 하는... 헐~

1년 예정으로 필리핀을 제외한 동남아를 한 곳에서 2~3개월씩 머물면서 그곳 사람들과 부대끼려고 한다. 욕심 같아선 1년씩 있고 싶지만, 비자문제가 걸려 어쩔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혹자는 몽골에서의 1년으로는 부족하더냐고 묻는데, 1년을 지내보니, 더 깊은 갈증만 생겼노라 말하고 싶다. 그 갈증이 무엇이었는지는 여행이 끝날 때쯤이면 알 수 있을까?

간절히 원하면 얻는다 했던가. 한 달 전에 무작정 출발 일을 예정해놓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한 선배의 도움으로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 빈민운동단체에서 자원봉사활동 할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불과 3주를 남겨놓고 목적지와 대략의 활동계획이 정해졌다. 
 

▲ 가정집을 개조한 UPC 사무실(좌)과 앞 골목길(우). 자카르타 동부지역은 서민들이 많이 사는 구역. 그 중 사무실이 있는 곳은 중산층 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길 양쪽 끝에 경비원들이 있다.     © 윤경효

“몽골 1년, 더 갈증 나게 하고”
 
재정걱정이 가장 큰 내게, 다행히도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단체 사무실에 있는 방을 무료로 쓸 수 있고 식사도 제공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돈 문제도 그렇지만, 오히려 그들의 생활과 밀착할 수 있겠다 싶으니, 너무나 매력적인 조건이다. 괜히 단체 활동가들 바쁜데 귀찮게 하기 싫어 혼자 찾아 가겠으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UPC(Urban Poor Consortium)의 활동가가 공항으로 마중 나온단다.

갈아타는 시간까지 포함해 총 11시간의 비행 끝에 마침내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 혼자 하는 배낭여행 같았으면, 공항에서 나와 숙소까지 가는 교통편 잡느라 신경전을 벌였을 터인데, 이번엔 너무나 편안한 마음으로 공항을 나왔다.

2억 3천만의 전체 인구 중 1천만이 모여 살고 있는 자카르타. UPC 활동가의 환한 웃음과 달리, 공항을 나서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숨이 막힐 듯한 매연이었다. 서울에서도, 몽골에서도 살았는데, 여기는 더 심한 것 같다.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UPC 사무실 현관, 거실과 정원,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는 주방장들, 그리고 사무실로 꾸며놓은 방에서 일하고 있는 중인 UPC 활동가들. 부엌이 옛날 우리네처럼 건물 북쪽 바깥에 위치해 있다. 부엌 옆에는 빨래하는 공간과 요리사 전용 화장실이 딸려 있고, 앞쪽에는 옷들을 말리는 빨래 줄들이 있다.     © 윤경효


어제는 얀토(UPC 활동가)의 오토바이를 타고 약 1시간 동안 시내를 달렸는데, 버스 배기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가스를 그대로 다 마시면서 신호대기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생전 처음으로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이렇게들 살고 있는 것인가. 사무실로 돌아와 거울을 보니 얼굴에 검댕이가 잔뜩 묻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던 UPC 활동가들이 흉찍하다고 빨랑 씻고 오란다. 헐~
 
1시간 시내여행, 얼굴엔 검댕이...
 
어제 UPC활동가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고, 2개월 동안 어떻게 함께 지낼 지 의견을 나눴다. 총 15명의 활동가들이 5개의 방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는데,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요리사를 고용해서 점심과 저녁을 제공하고 있다. 아직 인도네시아어(바하사)를 모르기 때문에 그저 활동가들 뒤를 쫓아다니면서 분위기 파악부터 해보기로 했다.

몽골에서는 책임자로 일하다 보니, 그저 편하게 언어 배우는데 집중하거나 사람들을 대할 수가 없었는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지금은 너무 자유롭게 집중할 수가 있다. 다행인 것이 바하사가 말레이시아에서도 통한다 하니, 언어문제가 훨씬 가벼워졌다. 여행이 끝날 때쯤엔 몽골에 계신 이재권 선생의 몽골어 실력만큼 바하사 실력을 갖춰야 할 터인데 헐~

▲ UPC 사무실 안에 있는 내 방 모습.(오른쪽) 외국인이라고 모기장도 쳐주고, 침대 시트도 씌워주었다. 이전에 자원봉사 하러 온 서양친구와 한국인친구를 맞이한 경험이 있는 듯. 왼쪽은 화장실. 슬리퍼도 화장지도 없고 달랑 바가지 하나가 다다. 휴지 대신 뒷물을 하고, 신발 신는 것보다 안 신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듯. 생활은 생활이다. 어떠랴, 옆에 그득한 물로 씻으면 그만인 것을. 헐~     © 윤경효


도착하자마자 어제, 오늘 UPC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지역 커뮤니티를 방문하느라 여유로울 새가 없다. 어제는 오전에 4시간에 걸친 회의를 마치고 오후 늦게 지역 커뮤니티 3곳을 방문한 후 사무실로 돌아오니 밤 11시.

밥도 못 먹고 샤워하고 빨래하고 활동가들과 잠시 수다 떨다 보니 어느새 1시. 오늘은 그나마 1곳만 방문해 사무실로 일찍 돌아와 밥도 먹고 이렇게 일기도 쓰고 있다. 자카르타에서는 도시 규모도 너무 크지만, 극심한 교통체증과 불편한 교통체계 때문에 거리에서 버리는 시간만 3~4시간이다.
 
“그래, 이거였어! 이거야?”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자니, 모기들이 떼로 달려든다. 이틀 새에 벌써 내 발목과 팔에는 모기들의 공격으로 시뻘건 점들로 뒤덮였다. 왜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더운데도 불구하고 긴팔 긴바지를 즐겨 입나 생각해보니, 아마도 최소한 모기 방지용 목적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 확신한다. 모기떼를 쫓아내면서, 물린데 긁어가며 글을 쓰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혹 모기에 너무 많이 물려 죽었다는 사람 있었나? 젠장.

활동가들로 바글거리던 사무실이 조용해지고 이제는 남아있는 활동가들이 슬슬 잘 준비를 한다. 한 활동가의 컴퓨터에서 귀에 익은 올드 팝송이 흘러나온다. 그래, 이런 거였어! 이거야?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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