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 아픔 시로 치유해요, 그 나비효과 고대해볼까요”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27) 임덕연 교사 시인“고교시절 책읽기를 좋아했어요. 김수영, 신동엽 시를 읽고 습작했지요. 아버지 강요로 교대에 진학했지만, 세상은 혼돈이었죠. 독재에 저항하는 대열에 참여했고, 교육문화사회 운동에 육십 인생을 바쳤다고 해야겠네요. 이제 그 철학을 삶 속 실천해보려고요. 쌀농사로 곡식을 얻고 습지도 보전하듯. 논엔 생명의 보고인 둠벙을 만들어야지요. 불을 덜 쓰는 음식을 즐기고요. 그 경험, 시로도 써야죠.”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 스물일곱 번째 주인공 임덕연(61·남) 시인(다문초등학교 교사)의 말이다. 평교사에서 교장까지 평생을 교단에 바친 그지만, 학교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달달 외워 시험 잘 보는 학생 양성하는 교육, 말썽부리지 않는 아이 키우는데 만족하는 학교, 관료 눈치 보느라 전인교육을 포기한 교사가 여전하니. 자신이 교육·문화 운동에 열심인 까닭이란다.
“교사 중 소명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분들이 있어요. 직업 선택의 자유라면 뭐 할 말이 없지만. 교육철학이 없는 분도 있고요. 저도 ‘어쩌다’ 교사가 되긴 했지만요. 수사기관에 잡혀가고 옥살이를 하면서 바른 교육을 하겠다고 용기를 낸 교사들의 지난한 시절을 되새기죠.”
세월호 교사문학, 예의이자 양심
그는 자신이 시인이고 동화작가이듯, 아이들에게 작가 되는 길을 일러준다. 조현초교(양평)에서 교장으로 있던 2023년, 6학년 전교생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우리 손으로 담은 꽃, 나무, 그리고 나’라는 식물도감을 펴냈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현하며 자기를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국군 위문품·편지 보내기, 반공의식 부추기는 통일 글쓰기·웅변대회 치르기가 뭐겠어요. 위에서 시키면 모든 학교가 획일적으로 움직이는 교육, 더 뭘 바라겠어요. 아이들은 전시행정 대상인데. 성장을 돕는 게 아니죠. 유명 대학 많이 보내야 ‘최고’인 교단, 희망 아니죠.”
그래서 이른바 ‘교사문학’을 시작했다. 촌지를 주고받는 부끄러운 손, 강압교육을 고발하는 시를 쓴 것. 미군 장갑차에 깔려 스러진 효순미선,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학생과 교사의 희생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외침이었다. 교사로서 최소한의 예의이자 양심이었다.
그는 전교협에 이은 전교조에 참여하면서도 줄곧 교사 글쓰기 운동을 전개했다. ‘교육문예창작회’를 결성해 잡지(8~16면)를 발행했다. 교육현장 그리고 삶 속 실천운동을 전파하려는 취지였다. 초등위원회에서는 편집장을 맡아 잡지 ‘우리아이들’을 펴내고 있다. 교단에서는 학급 문집 등을 발행해 아이들이 글쓰기로 창의력을 키우도록 노력했다.
“1994년인가 독후감 대회(안산)에서 우리 아이들(고잔초교)이 대통령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줄거리 쓰지 말고 자기 생각과 느낌을 쓰라고 가르친 효과였을까요. 통일웅변대회 때는 ‘무찌르자 공산당’ 아닌 ‘남북 친구들 함께 뭘 할까’를 호소하도록 했죠. 곤봉체조 음악을 트는데, ‘가지마라, 가지마라’(개똥벌레, 신형원) 구절이 부정적이라며 노래 바꾸라 외압을 받던 때죠.”
베토벤과 클림트 하면 떠오르는 시 ‘환희의 송가’.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230여년 전 쓴 작품이다. 애초 이름은 ‘자유의 송가’. 전제군주제를 반대하는 시다. 당국 탄압에 ‘환희’로 바꿔 출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말썽나 재판본 일부가 검열로 삭제되기도 했다. 이걸 배경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나왔다. 예술을 왕과 귀족에게서 예술가에게 돌려준 베토벤의 진보에 감동받아 클림트의 미술도 탄생했다. 임 작가의 새 세상을 향한 교육문화운동, 그 나비효과를 기대하는 까닭이다.
그는 시집을 두 번 냈다. 첫 번째는 2인 공동시집 ‘산책’(2007년, 삶이보이는창). 두 번째는 그의 시 마흔 편을 담은 ‘남한강 편지’(2014년, 작은숲). 정권의 4대강 사업으로 여강(여주 남한강)이 훼손되는 것을 보며 그 신음소리를 시어로 담았다.
동화도 펴냈다. 환경운동 소재가 4편. ‘똥먹은 사과’(건강한 먹을거리), ‘우리집 전기도둑’(전기에너지), ‘보물이 된 쓰레기’(재활용), ‘천사가 된 갯벌’(생태 종 다양성). 이밖에도 ‘속담 하나, 이야기 하나’, ‘믿거나 말거나 속담이야기’, ‘고사성어 하나, 이야기 하나’도 발간했다.
교사가 된 건 ‘어쩌다’ 란다. 안양 살 때 아버지가 이웃집 아저씨와 친했는데, 그 집 딸이 교대 다닌다며 ‘너도 가라’ 해 교사가 됐다고 했다. 처음엔 방황했다. 3년간 술집으로 산(등산)으로 겉돌았다. 그러다 한 소설을 읽고 마음을 돌렸다. 4학년 때다.
“조세희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마지막 작품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를 읽다 문득 깨달았어요. 곧 교사가 될 텐데, 아이들을 살찌게 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서는 거예요. 한번 해보자 마음을 고쳐먹었죠. 강압 아닌 자율과 창의 교육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의 교육운동은 대학 졸업 뒤 임시교사 때 전교협(이후 전교조) 가입으로 표출된다. 전교조가 모습을 드러낼 때 이른바 ‘조합원 공개투쟁’을 했는데, 그가 안산지회장으로 있을 때였다. 경기지부 초등위원장, 경기지부 정책실장과 부지부장, 본부 초등위 정책국장 등을 역임했다.
여주에 내려온 건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가족회의로 결정했단다. 애들은 ‘강아지 키울 수 있어 좋아’라 했고. 경기도 한적한 자연 속에 살면 좋겠다고 했는데, 마침 교사 순환보직제도를 활용해 여주로 발령(2000년)이 났다고 했다.
“중간 안양에 잠시 살다 다시 왔죠. 애 둘이 중고교를 대안학교(청계자유학교, 교육과정 불인정)로 진학해서요. 둘 다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인정받았어요. 큰애(딸)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심리학)하고 마음 아픈 아이들 치유하는 일을 하고, 둘째(아들)는 국내 대학 졸업 뒤 독일의 대학에 입학해 농업(지렁이)을 공부하고 있어요.”
여주에서도 그의 활동은 분주하다. 전교조 여주지회장을 역임했고, 여주민예총 문학위원, 여주환경연합 집행위원 등을 맡고 있다. 이주노동자(주로 몽골) 한글 교육, 햇빛발전소 조합원, 농민회와 ‘통일 논 모내기 통일 논 벼베기’ 행사,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 활동을 한다.
“요즘 농업에 관심이 커요. 쌀농사가 5백여평인데, 습지보전운동 일환이에요. 곡식도 얻으니 꿩 먹고 알 먹고죠. 양수기 때문에 사라진 둠벙을 살리려고 해요. 생명의 보고잖아요. 어머닌 ‘야, 그 자리 쌀 한가마니는 나올 텐데’라고 타박하는데, 전 그리 생각 안 해요.”
밭도 2백여평 짓는데 고추, 가지, 토마토 등을 기른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얻고, 채식 중심으로 식습관을 바꾸려는 생각에서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요리에도 최적이다. 밭이 그리 큰 건 아닌데, 양이 꽤 된다. 나눠먹지 않으면 썩어버리니 나눔도 실천한다.
아내도 교사다. 대학 후배였는데, 그가 5년을 다녀 졸업 동기다. 신입생 환영회 때 옆자리에 앉았는데 같은 종교에 글쓰기 교육운동 공감대로 친해졌다고 했다. 아내는 이른바 ‘예술적 교육’(교육기법) 시도로 참신한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대개 영상을 활용해 가르치는데, 교사가 직접 미술(그리기 등), 음악(노래 악기 연주), 연극(공연), 음식(요리), 놀이(강강술래) 등을 시범해 가르치는 교육이란다.
“전 가족이 교육방송(EBS) ‘하나뿐인 지구’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애들이 초등학생 때인데, 시골 건강한 삶을 다룬 다큐였어요. 할미꽃 풀로 공을 만드는 딸, 숲속 아지트를 들락거리는 아들 모습을 담았죠. 봄에는 전 가족이 감자 고추를 심는 모습 등을 찍기도 했고요.”
‘달은 밤의 눈동자’라 했다.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이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그리 썼다. 계엄군에게 겪은 치욕을 털어놓지 못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 ‘봄이 오면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 겨우 숨 쉬고, 겨울 삭신이 얼았다’고. ‘세월호’ 아픔을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자는 말 못하고, 수천 개의 바람이 되자는 말도 못 하고’ 울먹이는 임 작가('어디서나 출렁이는 바다’), ‘강물이 푸르게 멍들었다’(이포, 강가에 서서)는 그의 시어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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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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