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선 한없이 작고 미력한 난 이방인"

[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⑥] 대선 한달 앞둔 UPLink 주민운동

윤경효 | 기사입력 2009/07/02 [20:06]

"이곳선 한없이 작고 미력한 난 이방인"

[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⑥] 대선 한달 앞둔 UPLink 주민운동

윤경효 | 입력 : 2009/07/02 [20:06]
“우두둥, 퉁! 쿵! 툭!” 오늘도 어김없이 망고가 폭탄처럼 지붕을 강타했다. UPC사무실에 망고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하루에 1~2번씩 다 익은 망고열매가 떨어진다. 묵직한 것이 잘못 맞았다간 골로 가겠다. 지붕에 구멍이 안 생기는 게 신기할 뿐이다.

한번은 새벽녘에 떨어진 적이 있는데 자다가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헐~ 종종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지만 마당에 떨어진 망고를 깎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새콤달콤한 것이 내가 여기서 즐기는 유일한 간식거리다.
 
▲ 앞뜰에 있는 망고나무. 종종 나무로 기어 올라가 망고를 따 먹기도 한다. 오늘 내로 떨어질 망고 한 개가 가지 아래로 축 쳐졌다.(왼쪽 위 작은 사진)    © 윤경효
화요일부터 지역에서 올라온 UPLink 회원 주민조직 관계자들이 사무실에서 며칠째 밤을 보내고 있다. 매일 오전·오후엔 시위, 저녁엔 회의다. 여성분들은 마루에서 며칠씩 새우잠을 자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대선주자들 못지  않게 열기가 뜨겁다.

새벽 1시까지 6시간여 동안 쉼 없이 진행된 회의에서도 50여명의 참석자들의 집중도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 무게가 너무 버거워 나는 2시간여만 참석하고 슬쩍 도망 나오고 말았다. 헐~
 
"우둥퉁, 망고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어제까지 절반의 사람들은 돌아갔고, 현재 20여명 정도만 남았다. 유도유노 현 대통령과 메가와티 대선후보와의 면담이 확정되면 다시 자카르타로 온다고 한다. 교통비를 생각하면 그들에게 큰 부담일터인데도 감수하고서 참석하고 있다.

UPC는 그들이 자카르타에서 머물 수 있도록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고비용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와 다르게 지역 주민들이 모두 모여 며칠씩 토론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비능률’이라는 것으로 표현하는 이 과정이,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효과적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능률’이라는 이유로 오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다 다를 터이니. 와르다씨에게 의견을 물으니, 고비용이기는 하나, 교육과정이기도 하단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풀뿌리 조직운동은 많이 약한 편이어서 UPC는 이들이 조직활동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이런 계기를 통해 더불어 훈련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시위하러 가기 전에 UPC활동가와 함께 시위 구호 연습도 하고 대선후보 만나러 가기 전에 어떻게 발언하고 협상할 지 등에 대해서 토론도 한다. 

"비능률이 바로 민주적 의사결정과정"

UPC활동가들을 포함하여 매일 40인분의 2끼 식사를 준비하느라 주방장인 마뜨리와 빠르미의 고생도 말이 아니다. 글 쓰고 자료 조사하느라 화요일부터 계속 사무실에만 있었는데, 계속 분주히 오고 나가고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보니, 때 되면 해주는 밥만 챙겨먹는 내가 꼭 식충이 같이 느껴진다.
 
▲ 6월 3일 화요일, 현재 시각 23시. 벌써 4시간째 사무실을 가득 메운 UPLink 회원 조직 관계자들이 유수프깔라 대선후보 면담 전략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 윤경효


말이 자원봉사자이지, 언어문제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당초 예상한 일었지만, 그래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1백만 표 모으기 캠페인과 시위에 시달리다 돌아온 활동가들과 주민들에게 마사지해 주는 것으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달해 본다.
 
이틀 동안 후원금 좀 마련해 보겠다고 짬 내서 번역 일을 했더니, 엉덩이뼈와 등뼈가 뻐근하다. 주민조직 사람들이 서류작성에 취약하고 전문성이 부족해 조직활동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서 UPC가 각 주민조직에 비디오카메라를 1대씩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활동과 목소리를 영상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풀뿌리의 조직활동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문제는 빈민조직이다 보니, 비디오카메라 한대를 사려면 최소 미국돈으로 4백달러가 필요한데, 하루를 겨우 먹고 사는 빈민들에게는 버거울 뿐이다. 그래서 UPC에서는 비디오카메라를 후원할 곳을 찾고 있는데, 그 노력에 작으나마 보태고 싶다.
 
"내가 버러지 같다는 생각에 그만..."
 
이곳에서 한없이 작고 미력한 나를 본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는 일 없이 보살핌만 받고 있는 내가 처음으로 버러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 밑에서 편히 지낼 때도 못 느꼈던 것인데… 하루하루 생존과 투쟁하고 있는 이들을 한 발 물러서 바라보고만 있는 내가 이방인 같다.
 
내일 인도네시아의 노동문제와 노동운동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노동단체 사람과 만나 인터뷰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빈민문제는 곧 노동운동의 활성화와 직결되는 문제이리라.

빈민촌의 위생문제도 심각해서 인도네시아에서 큰 환경단체 중 하나인 왈히(WALHI)도 월요일에 방문해 현황을 알아 볼 계획이다. 사전에 조사 좀 하고 가려 했더니 웹사이트가 죄다 인도네시아어밖에 없다. 젠장, 오늘은 열심히 인도네시아어나 공부해야겠다. 삼빠이 라기(Sampai Lagi). ‘다음에 봐요’라는 뜻.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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