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교수형'에서 '식인귀' 황제로, 21세기에 반복되는 몰이성의 작태언제는 '구국의 영웅' 탄핵 내란 뒤엔 '원래 좀 이상' 곡학아세 모른척돼지가 교수형을 당했던 시절, 그리고 ‘식인귀’라던 이를 황제로 맞아들인 신문 이야기. 얼핏 들으면 중세 판타지 같고, 19세기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꾸민 유머 같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한국 사회 풍경에도 묘하게 겹치는 모습이 있다.
중세 유럽에선 동물을 법정에 세우고 사람처럼 재판하고 처형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 그중엔 아이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돼지 여러 마리가 고문 끝에 사형당했다는 섬뜩한 기록도 있다. 왜 하필 돼지였을까. 당대 사람들에게 돼지는 곧잘 먹잇감이 되면서도, 동시에 생활 가까이에 존재했던 동물이다. 생각해보면, 미운 놈은 바로 발치에 있어야 원망을 푸는 데 편리한 법이다. 이 ‘동물 재판’은 대상을 제대로 재판하기보다는 군중 감정을 해소시키는 일종의 ‘공적 의식’이었다고 보는 해석이 많다.
한편 19세기 프랑스로 가면, ‘르 모니퇴르 위니베셀’이라는 신문이 나폴레옹을 두고 ‘식인귀’에서 시작해 ‘폭군’, ‘찬탈자’로까지 몰아붙이다가, 훗날엔 ‘황제 폐하’라 부르며 태세 전환을 했다는 유명한 소문이 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알렉상드르 뒤마가 극적 재미를 위해 지어낸 대목이 크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이 일화를 곱씹는 이유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매체나 여론이 어떻게 갈팡질팡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보면, 21세기 한국에서도 흡사한 전개가 펼쳐지고 있다. 어느 날은 “이 사람(대통령)은 구국의 영웅”이더니, 탄핵이나 내란 논란이 불거지자 “사실 원래부터 좀 이상하지 않았나”라며 말을 바꾼다. 심지어 학위 취소 같은 이슈도 정치 상황과 맞물려 부각되면서, 혹자는 “우리도 지금 ‘르 모니퇴르’ 시대가 다시 왔다”고 비꼰다. 그 와중에, 대선 시즌에 정권을 밀어주던 일부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과거 행보를 잊은 듯 애써 외면한다. 중세 유럽에서 돼지를 희생양 삼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태도다. 비판해야 할 대상이 따로 있음에도, 바로 눈앞의 편견이나 감정 소모에 몰두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재미있는 건, 철학자 헤겔도 제나 시내를 가득 메우던 나폴레옹의 대군을 보고 “이것이 곧 절대정신”이라며 반했다는 대목이다. 『정신현상학』을 집필하던 시기, 헤겔은 영웅을 통해 신성한 세계정신을 본 듯 열광했다. 그러나 훗날 칼 포퍼는 헤겔을 전체주의적 사상가로 분류하면서, “절대라는 건 ‘나만 옳다’와 다르지 않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누구든 자신만의 절대성을 믿다 보면, 결코 틀릴 수 없다는 오만에 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한국 사회 일부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
문제는 우리가 중세가 아닌 21세기라는 사실이다. 돼지를 법정에 세우진 않지만, 마음속으론 여전히 남을 희생시키는 판결문을 써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상황이 유리하면 극진히 모시다가, 불리해지면 “원래 괴물이었다” 하고, 그 한가운데서도 자신이 뿌린 혼돈에 대한 책임은 모른 척하는 태도가 반복된다. 여기서 한 발짝만 떨어져 생각해보면, 아무리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변신술이 용이한 시대라 해도, 돼지를 교수형에 처하던 시절보다 과연 이성이 나아졌나 싶기도 하다.
바라건대, 우리는 뒤마가 만든 전설 같은 신문 기사나 동물 재판이 주는 ‘희극성’만 즐길 게 아니라, 그 밑바탕에 깔린 집단 심리의 잔혹함을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잘못된 대상을 탓하거나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모습이야말로, 역사에서 숱하게 반복되어온 ‘몰이성과 극단주의’의 본질이니까 말이다. 이제는 돼지에게 밧줄을 씌우는 대신, 그 밧줄이 왜 필요한지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내일 아침 신문 헤드라인이 갑자기 180도 바뀐들, 돼지를 향한 중세식 법정 대신 모두의 책임을 성찰하는 공론장이 열리길 기대해본다. “절대가 어딨어? 나만 옳고 너는 다 틀려!” 같은 태도를 조금씩 내려놓는다면, 적어도 우리 시대에는 ‘동물재판’ 같은 코미디가 반복되진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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