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참 애국자구나, 난 별로 관심 없는데

[동남아여행16] CAP 주최 캄보디아 환경활동가 대상 소비자교육

윤경효 | 기사입력 2009/10/02 [13:00]

넌 참 애국자구나, 난 별로 관심 없는데

[동남아여행16] CAP 주최 캄보디아 환경활동가 대상 소비자교육

윤경효 | 입력 : 2009/10/02 [13:00]
"넌 참 애국주의자구나. 난 말레이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별로 관심 없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에서 훌륭한 사회지도자들이 올해 많이 돌아가셔서 애석하다고 말했는데, 같이 방을 쓰고 있는 말레이시아 친구가 약간 놀라워한다. ‘애국주의자’라기 보다는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작게는 한국, 크게는 아시아의 뛰어난 사회지도자들이 돌아가시는 게 그저 안타까웠을 뿐인데(8월 초 전 필리핀 대통령이자, 민주화 운동가였던 코라손 아키노 여사도 타계했다), 예상치 못한 친구의 답변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난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자랐고 국적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어떠한 소속감도 느낄 수가 없어. 교육기회도 차별 받는데다, 직장을 구하거나 공직으로 진출하는데도 말레이계가 아니면 제한이 많아. 사업을 하려 해도 허가를 잘 안 내준다. 집을 살 때도 말레이계는 10~15%까지 할인 받고, 어떤 지역은 말레이계만 부동산구입이 가능하게 되어 있지. 중국계나 인도계 등 이민자들이 이곳에 정착한 지 최소 100년이 넘었고, 이미 국적도 말레이시아인인데 정부는 우리를 여전히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 취급하네. 똑같은 세금내면서 차별 받으니 그저 어이없고, 말레이시아가 ‘나의 나라’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영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오히려 거기가 더 편해."

그녀는 인도계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를 가진 기독교인 말레이시아인이다.
 
▲ 말레이시아에서 인종갈등을 목격하게 될 줄 미처 몰랐다. 생각보다 많은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것도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지만,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들이 사실은 감정의 골이 깊음을, 그리고 말레이시아 정부의 인종(종교)차별정책으로 갈등과 긴장이 더 깊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왜 정치는 매번 ‘편 가르기’에 기반 하는 걸까? 현재 말레이시아 인구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말레이계(사진 왼쪽)와 소수계인 중국계, 인도계(사진 오른쪽).     © 윤경효

 
“예상 밖 친구답변에 당황”
 
말레이시아에 들어오기 전 방을 빌리기 위해 임대사이트를 검색했을 때 몇몇 광고내용에서 ‘중국인만 가능’, ‘말레이 무슬림만 가능’이라는 문구를 보고 문화적으로 약간의 갈등이 있나 보다 생각했었는데, 그 문제가 생각보다 깊은 것 같다. CAP활동가에게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냐고 물었더니, 현재 말레이시아의 가장 큰 사회문제라고 한다. 겉으로 대놓고 갈등이 불거지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감정의 골이 점점 깊이 파이고 있다고.

한 활동가 왈, 심지어 말레이계와 중국계 또는 인도계 사람들간 교류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예를 들어, 중국계 친구가 말레이계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주변 이웃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라고.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종족간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나마 피낭은 쿠알라룸푸르나 다른 지역보다 그런 분위기가 덜한 편이란다.

1969년 5월 13일, 말레이시아에서 중국계와 말레이계간 갈등으로 인해 큰 폭동이 일어났었다 한다. 한편의 역사자료에 따르면, 당시 중산층의 다수를 이루고 있던 중국계에 비해 빈민층의 다수인 말레이계가 반발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폭동 이후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는 말레이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 및 경제적 부분에 대한 특혜정책(NEP: New Economy Policy, 1971)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 정책으로 인해 많은 말레이계의 빈곤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차별정책으로 인한 사회갈등 조장과 소수 부유한 말레이계만 혜택을 보는 등 정책의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

▲ 프로그램에 참여한 캄보디아 환경활동가들. 천연살충제 제조방법과 퇴비 만드는 방법 워크숍(사진 왼쪽)과 소비자운동에 대한 강의 중(사진 오른쪽). 캄보디아 시민사회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내년 1월 캄보디아에 가게 되면 이중 몇 명은 다시 보게 될 것이다.     © 윤경효


1960년대 말레이시아 인구의 약 45%를 차지고 있던 중국계와 약 20%를 차지고 있던 인도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1963년 8월 31일) 인구의 다수는 중국계였던 셈이다!
그런데, 사실, 이 정책을 들여다보면, 종교문제가 결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말레이계=무슬림, 무슬림=말레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 만약 중국계나 인도계가 종교를 무슬림으로 개종하면 말레이 우대정책의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말레이계 무슬림만 가능”
 
즉, 어떠한 외국인도 말레이시아로 이민해 무슬림이 되면 말레이 우대정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은 종족 차별정책이라기 보다 ‘종교’ 차별정책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또 다른 종교차별정책으로 ‘혼인법’이 있는데, 말레이계와 결혼하려면 어떠한 사람도 무슬림으로 개종해야 가능하다.

어쨌든, 이 정책으로 인해 혜택보고 있는 것은 소수의 무슬림 말레이계라는데 모두(말레이계 빈민층 포함)가 이구동성으로 동의하고 있어, CAP, SAM 등 말레이시아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원주민 보호’라는 탈을 쓴 ‘종교우대 정책’ 및 ‘부유층 우대정책’에 반대하고, 진정한 ‘원주민 보호’ 및 사회통합정책을 펼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다.

종교와 종족, 인종문제가 어떻게 정치와 연계되어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 피낭 해안 수질오염 방지 및 생태계 보호를 위해 CAP과 SAM이 심은 맹그로브(Mangrove)숲. 작년에 심은 나무가 벌써 2미터 가까이 된다. 몽골에서는 4~5년 걸려야 하는데, 헐~ 그나저나 작년에 몽골에 심은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나? 올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 좋은 성과가 있을 거라고 하던데...그저 몽골친구들의 선전을 기도한다.     © 윤경효


8월 25일 화요일, CAP의 주최로 캄보디아 환경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교육과정(Consumer Education Course)’이 시작되었다. 캄보디아 소비자운동그룹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5일 동안 소비자 운동 관점에서 환경문제를 들여다보게 된다.
27명의 참가자 중 5명은 추후 소비자단체조직 및 운영방법 등에 대한 보다 실제적인 훈련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 한다. CAP은 동남아시아의 소비자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베트남,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 역내 시민사회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을 벌써 10회째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서기로 행사에 참여해 회의 녹음한 것을 다시 들으면서 정리 중인데, 보통 고역이 아니다. 중국계, 인도계, 말레이계가 하는 말레이시아식 영어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인데, 캄보디아식 영어까지 이해해야 해서 진땀 빼고 있는 중이다. -,.-;; 그저 어휘부족을 탓하며 영어 공부하던 중에 새로운 복병을 만난 셈이다. 가끔 같은 영국인끼리, 또는 영어권 나라 친구들이 서로의 발음을 못 알아듣겠다고 나한테 물어보는 웃기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헐~ 내 영어도 한국식이라 듣는 친구들이 꽤나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기적인 영어를 하지 않도록 조심할 수밖에…헐~

8월 22일부터 무슬림의 라마단이 시작되어, 사무실 근처의 유일한 말레이 식당이 문을 닫는 바람에 라마단이 끝나는 9월 21일까지 점심을 어찌 해결하나 걱정이다. 쯥…-,.-;; 라마단은 한 달 동안 아침 해가 뜬 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체의 인간의 기본욕구행위, 특히 먹고 마시는 것을 금하는 무슬림의 종교의식으로, 그 동안 탐욕스러웠던 자신과 약한 자들을 돌아보라는 의미라고 한다.

▲ 피낭 항구의 중국인 마을에서 독립문화예술축제가 일주일 동안 열렸는데, 앤지가 경극에 참여한다고 해서 구경갔다가 또 모기에 왕창 뜯기고 왔다. 젠장, -,.-;; 모기 때문에 성할 날이 없는 내 피부. 뎅기열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 어제 모기 방지로션 왕창 구입 함, -,.-;; 말레이시아 친구 샨티와 앤지(사진 왼쪽), 왼쪽부터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제인(독일), 타츠야(일본), 예술축제의 일본 오페라가수, 샨티, 앤지, 그리고 나(사진 오른쪽) 타츠야는 방콕에서부터 피낭까지 자전거로 여행한 체력 만 땅 용기백배인 친구. 오늘 아침 일찍 말레이시아의 동부 도시인 코타바루(Kota Bahru)로 떠난 그는 싱가포르까지 역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할 계획이라고.     © 윤경효

 
라마단, 점심을 어찌 해결하나?
 
지난 1주일 내내 비가 무섭게 쏟아지더니 어제, 오늘 오랜만에 하늘이 말짱 갰다. 비 때문에 밀린 빨래를 한꺼번에 하고 나니 팔목이 후들거린다. 샨티가 부른다. 밥 먹으러 가자고. 그러고 보니, 과일로 대충 점심을 때워서 그런지 슬슬 배가 고파온다. 내일부터 점심을 라면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오늘 저녁식사는 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워야지.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니라…ㅋㅋ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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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0/15 [13:55] 수정 | 삭제
  • 동남아시아. 같은 아시아권이면서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기도 한데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기사로 전해들을 수 있으니 참 좋네요!!! ^^ 앞으로 더 관심갖고 더 유용한 정보 부탁드릴께요!!!^^ 그리고 기자님이 미인이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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