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의 나라, 탐욕에 철이 덜 든 나”[동남아일기-싱가포르11] 싼 숙소 잡느라 홍등가 옆 호텔에...높이 솟은 빌딩숲, 잘 구축된 대중교통시스템과 깨끗한 거리. 깨끗한 나라(Clean Country)라는 별명을 가진 싱가포르가 동남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자카르타에서 열악한 빈민촌만 돌아다니다 와서 그런지 그 격차가 심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거리를 가득 메운 중국어 간판들... 원래 말레이족들이 살았던 곳이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을 정도이다. 도시 분위기나 주변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중국인들을 보면, 꼭 홍콩 같다는 느낌이다. 쇼핑관광 개념도 비슷하고. 가장 싼 호텔로 숙소를 잡느라 하필 싱가포르에서 가장 유명한 홍등가에 위치한 호텔에서 지냈는데, 저녁 6시 이후만 되면 거리에 중국인, 인도인, 말레이인 등 다양한 인종의 남자들로 가득 찼다. “호객행위 아가씨들 보며...” 한국의 사창가를 보면 붉은 등의 유리쇼윈도 안에 앉아 호객행위를 하는 아가씨들을 보게 되는데, 겔랑(Geylang)거리의 영업소들은 안이 쉽게 보이지 않게 해 놓고, 아가씨들보다는 온 몸에 문신을 한 40대 중 후반 남자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물론, 주변 식당에서 식사하는 척하면서 호객행위를 하는 여인들도 있었지만… 겔랑의 모든 영업소가 허가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잘 안보이게 하는 곳은 불법일 가능성이 높단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성매매를 근절시킬 수 없다면, 차라리 거래를 공식화시켜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보호할 수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언제부터 매매춘하면 ‘여자=공급자, 남자=수요자’라는 인식이 생긴 걸까? 그 반대도 가능한데…남자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는 것 같다. 남성이 여성보다 성욕이 더 강하다는 인식. 사실, 못지않은데. 쯧... 이제는 서로 인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인간사회가 존재하는 한 매매춘이 사라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여성도 남성 못지않다는 것. 그래서 사실은 여성들을 위한 매매춘도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흠… “여성이 성산업 공급자?” 그런데, 공창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도 역시 불법사창이 존재하기는 하는데, 남자들에게 물으니, 공창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대놓고 가기가 남부끄럽기도 하고, 불법사창에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즐길 수가 있어서 찾게 된다고. 가만 보면, 정말 성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라기보다는 ‘하지 말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은밀함의 스릴을 더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을 나쁘다고 힐난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는 빛과 그림자가 항상 존재하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녁나절 밥 먹으러 나오면 남자들이 위아래로 훑어보는 통에 앞만 보고 종종걸음 치기 바쁘다. 싱가포르에 오면 반바지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을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감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I’m a backpacker’라는 딱지를 이마에 딱 붙여놓은 것 같은 등산복 복장으로 5일을 보내고 나니, 괜스레 서럽다. 싱가포르에서는 좀 편안하게 지내보려 했었는데... 이럴 땐 여행파트너가 없는 게 아쉽다. 쩝… 호텔에서 무선인터넷 이용이 안 되어, 보통 서양친구들이 자주 찾는 카페로 가면 음식 값으로 인터넷 무료 이용이 가능할 것 같아 오차드(Orchard)거리에 있는 커피빈을 찾아 갔다. 싱가포르엔 무선인터넷 회원제도가 있어 비회원은 신용카드로 인터넷 결제를 해야 한단다. 젠장, 인터넷 때문에 노트북 이고 여기까지 왔건만... “위아래 훑는 시선에 그만...” 자카르타에서 가난한 생활에 너무 적응됐나? 유명한 쇼핑거리인 오차드거리를 걷는 것이 낯설다. 6월~7월 2달 동안 유명 브랜드를 포함해서 50%~70%까지 할인한다고 하니, 세계 각지에서 쇼핑하려고 몰려든 관광객들로 그득하다. 손목시계와 단화가 못쓰게 되어 저렴하면 하나 살 겸,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하고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인도네시아 물가기준으로 화폐가치를 따지다 보니, 감히 지갑 열 생각이 안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의 악마가 머리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내 지갑은 활짝 열렸고, 인도네시아에서의 2달 생활비를 하루에 다 날려버렸다. 이 가격에 이 좋은 물건을 지금 사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없을 거라는 변명으로 위로 삼으면서... 가끔 마음 저 한구석에서 3~4시간 간격으로 조그맣게, ‘네가 지금 배낭여행자 신분에 그 돈 지랄이 가당키나 한 게냐’,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매더니만, 그 돈 예다 다 쏟아 붓는 구나’라는 가슴 쓰린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쩝… 소비에 대한 죄책감이 들 줄이야. 한국에서는 재정상 문제 때문에 소비를 억제했기 때문에 재정이 좀 여유로울 때 소비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은 없었는데... 조금 구체적으로 어떤 소비를 하느냐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지랄이 가당키나 하냐”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 빈민문제를 접한 후로는 어떤 소비를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의 제조지역을 보면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제3세계 국가들이 많은데, 상품의 태그에 나온 제조지역을 보고 나면, 그 나라의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인도네시아에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빈민들을 보고 나서도 이런 생각이 안 든다면, 그건 인간도 아니지... 그런데, 그들을 생각했으면서도, 당장의 탐욕을 어쩌지 못한 건 아직 철이 덜 든 인간인 게지... 일은 이미 저질렀고, 이 죄책감을 달래기 위한 적당한 논리를 찾고 있는 중인데, 쉽지 않다. 늘 이렇지 뭐. 질러 놓고 반성하기... 헐~ 오늘도 난 사회적 정의와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말레이시아로 떠난다.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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