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 환경정화', 강제철거 없이 시행[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9] 정부에 기대지 않고 주민도 자발...새들의 아침을 알리는 지저귐이 귓가를 간 지른다. 어젯밤 카드놀이 하느라 새벽녘에 잠들었건만 집주인 내외와 옆방에 묵고 있는 가족여행객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에 절로 깨버렸다. 체크아웃 때까지 방에서 책 읽다가 지금은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식당에 와 자리잡고 앉았다.
저녁 6시, 공항 가는 셔틀버스 탈 때까지 여기서 일기 쓰며 시간 때우기 작전이다. 밥도 먹고, 책 읽고 인터넷도 하며 편안하게 시간 보낼 곳이 필요한데, 밥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1석 3조를 감안한 꼼수다. 그런데, 이런 꼼수를 나만 부리는 것이 아닌지, 식당에서 점심시간대인 12시부터 3시까지는 인터넷연결을 끊는단다. 쯥…-,.-;; 이미 거금의 식사는 주문했고, 어떻게든 나는 이 카페에서 6시간을 버티리라. “꼼수를 나만 부리는 건지...” 비싼 카페라 그런지 노랑머리 여행객들로 그득하다. 발리 곳곳에서 백인들을 보고 있자니 예가 인도네시아인지, 유럽인지 헷갈린다. 괜히 배알이 뒤틀리는 건 또 무슨 감정이냐…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백인할머니가 말을 건다.
나 홀로 여행자들은 종종 이런 식으로 회포를 풀곤 한다. 그녀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동물 및 생태학자, 디안 리빙스톤(Diane Livingston). 미연방과학재단 연구원으로 일하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발리에서 지표토(top soil)를 보호하기 위한 개인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단다. 알고 보니,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the Earth Summit)의 의제를 만드는데 참여했다고. 그 회의 이후 한국에 지방의제21 운동이 시작되었다 하니, 무척이나 반가워한다. 이렇게 인연이 닿는구만…세상 좁다. 헐~ 1988년 처음 방문해서 이번이 다섯 번째라는 그녀는 이제는 아예 발리에서 살려고 서류 준비 중이라네.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해서 환경운동에 대한 토론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토론이 너무 뜨거웠나…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쳐다본다. 아, 어쩌면 또 내 목소리가 너무 컷을 지도….ㅋㅋ “이런 인연, 세상 참 좁다” △6월 22일(월)=수라바야(Surabaya)에 있는 UPLink 5개 회원조직 중 3곳인 구눙사리II(Gunung Sari II), 끄브라온(Kebraon), 브라땅(Bratang)을 방문했다. 시정부가 강변 환경정화사업으로 빈민촌 철거 정책을 취하자 주민들이 강제철거를 반대하며 그 대안을 제안하고 실천하고 있다. 구눙사리II 마을은 160가구가 사는 곳인데, 3m 폭의 강변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존의 자신들의 집을 허물고 3m 뒤로 물러나 다시 지었다. 그리고 강둑에 바나나나무며, 망고나무 등을 심어 가꾸고, 집집마다 화분을 두어 나무 길을 조성했다. 또한 주민들이 돈을 모아 직접 길도 닦았다.
심지어 구눙사리II 마을은 강의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가정폐수를 한 곳으로 모아 자연하수처리 및 재활용 시스템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쓰레기 분리수거를 통해 마을 내 쓰레기처리 문제도 자체 해결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작년 수라바야시장과 철거 없는 강변정화사업 협약을 했으나, 올해 시장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고 올 대선까지 철거작업을 진행하려고 하고 있다. UPC는 현 시장이 올해 대선 이후에는 시장직을 유임할 수 없을 것 같아 자신의 임기 내에 기업과 결탁한 사업을 벌이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쓰레기처리 마을내 해결 내무부, 개발부 등 중앙정부 부처 장관들을 만나 수라바야시장의 무모한 강행을 저지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시장이 장관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모양이니. 벌써 일부 지역은 철거가 진행된 곳도 있고, 마을 사람들도 의기소침해 있어, 자카르타의 활동가가 수라바야 주민 조직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명이나 파견 나와 있다. 마을 사람들의 노력과 희망이 물거품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6월 23일(화)=수라바야에서 남쪽으로 1시간 남짓 떨어진 뽀롱(Porong)지역을 방문했다. 2006년 5월 이래 석유시추작업을 하다 뿜어져 나온 진흙으로 약 900ha의 면적이 뒤덮여 1만여 명의 주민들이 난민이 된 곳이다.
2006년 9월부터 하루 12만5천m³ 진흙이 뿜어져 나와 정부에서는 재난지역으로 선포한 후 인근 마을로 넘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둑을 쌓고, 인근 강으로 파이프를 연결해 진흙을 강으로 빼내고 있다. 현재 유독가스도 함께 방출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진흙화산(Mud Volcano)을 잘못 건드린 것으로 보고, 인간의 힘으로 멈추기란 힘들 것이라 얘기하고 있다. 유독가스와 더불어 뜨거운 진흙물이 강으로 흘러들어 강의 생태계 파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난민들뿐만 아니라 강에서 어업활동을 하던 지역주민들의 경제적 피해도 크고 유독가스 때문에 나중에 이 지역 사람들의 건강문제도 우려된다. 석유시추로 1만명 난민... 웃기는 것은 석유시추회사가 복지부장관의 회사라는 것. 회사에서 피해주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지급이 안 돼 피해지역 주민들은 도로변에 간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그나마 정부에서 전기와 물을 공급해 준다나. 정말, 코미디 같은 상황이 아닌가. 헐~ 정부 고위 관료의 가족들이 인도네시아 주요 대기업을 대부분 소유하거나 경영하고 있으니, 정부가 국민을 위해 뭔가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하나? 이제는 씁쓸함만이 남는다.
공항 가는 셔틀버스를 탔는데, 옆은 앉은 호주여행객이 한국말을 할 줄 안다. 호주 대학에서 정치학박사과정 중인 학생인데, 전공분야가 중국과 한국정치라 예전에 한국에서 1년 동안 어학당을 다녔다네. 노랑머리 청년과 한국말로 대화하게 될 줄이야. 한국말을 하게 된 게 너무 기뻐 내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하하~ 오늘은 ‘세상은 좁다’를 경험하는 날인가. 발리의 시원한 공기를 뒤로 하고 자카르타로 돌아간다. 자카르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친구들뿐만 아니겠지. 모기떼들에 대비해 가방 구석에 처박아뒀던 모기방지 로션을 꺼내 들었다. 이제 인도네시아에서 지낼 날도 10일 밖에 안 남았구나. 돌아가면 남은 10일 동안 UPC 친구들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정리해야겠다. 물론, 먼저 밀린 빨래부터 하고… 쩝.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댓글
동남아일기, 인도네시아 관련기사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