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백만표 조만간 아쉬워 질 터인데”[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⑦] 1백만표 빈민 정치협약 캠페인...웨에~엥. 위이~잉.
어느새 모기들이 모기장 안으로 들어왔나 보다. 새벽녘 그 놈의 공포스러운 소리에 달콤한 잠도 달아나 버렸다. 잠들기 전 피워놓았던 모기향이 그새 다 태워졌나. 젠장. 어느새 새벽 4시가 됐나 보다. 멀리 이슬람사원에서 사람들에게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새 모기향을 피우기 위해 버스럭 모기장을 제치고 나왔다. 아, 호시탐탐 공격할 타임만 찾고 있는 이 녀석들을 어찌 한담… 모기향이 몸에 좋지 않음을, 모기방지로션이 피부에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것들이 없으면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없다. 창문도 없이 모기향 때문에 더 더워진 방에서 땀으로 젖은 채 깨어날 때면, 지레 지친다. 샤워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잠시 변기에 앉아있는 새에 11방을 물렸다. ㅜ.ㅜ 영리한 놈들…틈새를 공략하다니… UPC사무실에서 모기를 없애보겠다는 의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주변 환경이 오염되면 모기가 득세한다는데, 자카르타는 온 도시가 모기로 뒤덮였다. 어딜 가나 웽웽거리며 따라다니는 모깃소리에 익숙해지기는커녕 점점 예민해지고 있다. “ㅜ.ㅜ ... 정말 영리한 놈들” 오랜만에 사무실이 고요하다. 유도유노 현 대통령과 메가와티 대선후보와의 면담약속이 얼른 잡히지 않아, 결국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지난 금요일에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메가와티 후보는 관심이 없는 듯하여 힘들 것 같고, 재선이 유력한 유도유노 대통령과 면담약속을 잡기 위해 주력하고 있는데, 시간을 잡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유도유노 대통령의 바쁜 일정 속에서 틈새시간에 면담타이밍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면담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사이 1백만 표 모으기 캠페인팀은 한 달여 만에 45만여 표를 더 모아 현재 578,566표를 달성했다. 선거일까지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기어코 1백만 표를 모으고야 말겠다는 주민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캠페인팀 중 뮤직팀을 담당하고 있는 도도는 지금 자카르타 위성도시 지역을 도느라 몇 일째 사무실에 오지 못하고 있다. 1백만 표를 모은다 해도, 대선후보와의 정치협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큰 절망을 가져다 줄 지도 모른다. 작년 미국 대선시 1백만 표 캠페인을 벌인 시민단체들이 오바마 후보와 정치협약을 한 후 성공한 사례에 힘입어 도입했는데, 역시 정치문화 차이 탓인지 쉽지 않은 듯하다. 1억이 넘는 유권자 중에서 어찌 보면 정치적으로 1백만 표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권력이나 금전, 종교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집단이 아닌 그저 통치대상인 빈민들에 불과하지 않은가. 유도유노 대통령면담 쉽잖고... 때문에 이번 주 UPC 주간회의에서는 정치협약이 실패할 경우와 대선 이후 1백만 명의 결집된 역량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6/17(수)에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UPLink 전국회의가 있을 예정이란다. 이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 나갈 지 자못 궁금하다. 오늘은 왠지 크로와상, 쿠키와 따뜻한 커피로 가볍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어 짝짝(Cakcak)에게 물었더니, 차타고 1시간 넘게 가야 한단다. 하는 수 없이 결국 사무실 근처 와룽(Warung, 간이식당)에 가서 인도네시아 음식을 먹었다. 최근 들어 불쑥불쑥 쓸데없는 소비욕구가 돋는다. 한국에서도 즐기지 않던 군것질이 하고 싶어지고, 괜히 옷도 사고 싶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내 안의 소비욕구를 더 자극하는 것 같다. 풍족할 때는 모르다가 없으면 아쉬워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직 서양의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테리아는 중산층 이상이 주로 이용하는 고급식당이고, 서민들은 대개 집에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길거리 간이바(우리나라 포장마차 같은 것)를 이용한다고. 어찌 보면, 서민들이 소비문화나 건강 면에서 훨씬 나은 것 같다. 서양의 서민음식인 패스트푸드가 뭐 그리 좋다고... 어느새 내 몸에 베여버린 서양식 습관에 한 쪽 가슴이 뜨끔해 진다. 원래 한국 생활문화가 그러냐고 되묻는 인도네시아 친구에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한때는 온 국민의 일용한 간식이었던 떡이 어느 순간 서양의 빵과 케이크에 밀려 이제는 주변에서 떡집 찾기가 수영장 찾기보다 힘들어졌다. 어느새 한국은 서양문화와 서양식 사고에 젖어 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낮 부끄러워진다. “원래 한국 생활문화 그러냐?” 나는 건강에 안 좋은 서양 음식을 먹기 위해 내 손에 들고 있던 건강에 좋은 떡을 내팽개친 것이 지금 이 순간 너무 창피스럽다. 내팽개칠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저 받는데 급급해서 갖고 있는 것을 생각 없이 버려버린 어리석음이 쪽 팔리다. 줄곧 외치던 ‘자랑스런 한국문화와 자존심’은 립서비스일 뿐이었나? 자국에서 한국에 대한 선망의 마음을 갖고 한국으로 유학을 온 한 외국친구는 한국에서 본 것은 미국을 향한 해바라기뿐이었다고. 한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유학 갈 것을 잘못 온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우리의 어리석음은 언제쯤에야 깨달을 수 있을까? 어리석음을 깨닫고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면 사회가 좀 더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글쎄, 한국 사회에서만 살아서는 쉽지 않을 듯하다. TV방송미디어 채널구성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제한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지 알 수 있는데, 몽골은 인구가 채 3백만도 안되지만, 러시아, 중국,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인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여러 외국 TV채널들이 방송되어 사람들이 쉽게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랍권 방송채널까지 더해 기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외국 채널이 10개가 넘는다.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외국채널 하면 CNN, BBC, CCTV, NHK 등 미국, 영국, 중국, 일본 채널이 다다. 세계화를 열심히 외치지만 한국의 세계는 이 네 나라가 다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보다 다양한 시각을 갖고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지기란 요원해 보인다. 미·중·일밖에 모르는 한국인들 이제라도 미국, 영국, 중국, 일본, 4개 나라 말고 다른 나라들, 다른 문화와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피상적이 아니라 뼈 속까지 깨달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외 다른 아시아 국가를 생각하는 것이나 인도네시아의 대선 후보가 1백만의 빈민들을 생각하는 것이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구먼. 그 1백만이 조만간 아쉬워질 터인데...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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