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참 아름다운 피부를 가졌네요”

[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⑤] 유수프깔라 대선후보와 정치협약

윤경효 | 기사입력 2009/06/18 [17:01]

“당신 참 아름다운 피부를 가졌네요”

[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⑤] 유수프깔라 대선후보와 정치협약

윤경효 | 입력 : 2009/06/18 [17:01]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3일 동안 매일 같이 외출했더니 빨래거리가 산더미다. 세탁기도 없고, 가져온 옷도 몇 벌 안 돼 매일 손빨래를 하고 있는데, 빨래비누와 빨래판 없이 세제를 푼 물에서 반쯤 서서 주물럭거리다 보니, 한번 하고 나면 등골이 뻐근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젠장, 세탁기가 그립다.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추우나 더우나 매일 이런 고생을 한 게지.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맨 날 땅바닥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였을 것이고... 헐~ 빨래해대기 귀찮았을 터인데, 우리 어머니들은 아이들한테 옷 더럽히지 않게 놀지 말라는 잔소리를 별로 하지 않았더랬다. 그게 ‘어머니’의 마음인가?

가지고 온 바지 세벌, 면 티 4장을 다 빨아놓고 지금은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인 싸롱을 걸치고 앉았다. 잠옷 겸 모기 방지용으로 UPC에서 샀는데, 끈도 없는 그냥 원통의 천이다. 이를 어찌 입나 했더니, 몸을 원통 안에 넣은 후 반으로 접은 다음 윗부분을 쓱쓱 아래로 접어내리니 흘러내리지 않는다. 헐~

▲ 각 지방마다 싸롱의 무늬가 다 다른데, 이것은 술라웨시(Sulawesi)지방의 전통적인 무늬. 면 소재도 다양한데, 실크로 된 것이 가장 비싸다고. 내가 산 것은 중간 정도 질의 면으로 된 것이다.     © 윤경효

 
서 있을 땐 일자로 뚝 떨어져서 움직이는 게 불편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워낙 큰 원통을 반으로 접은 것이라 싸롱 안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 수도 있다. 몸 전체를 가릴 수 있을 만큼 커서, 여인들이 강에서 목욕할 때는 이 싸롱을 샤워커튼으로 삼는다. 때론 아기를 업는 포대기로, 때론 담요로도 쓰인다.
 
싸롱입고 양반다리로 앉아...
 
UPLink의 지역 회원조직 대표자들이 사무실로 속속 도착하고 있다. 내일 있을 대선후보 중 한 사람인 유수프깔라(Jusuf Kalla)와 정치협약(Political Contract)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와르다씨와 소수 몇몇 사람만 대선후보와 만나는 줄 알았더니, 각 지역 주민조직 대표 30여명과 자카르타 지역 주민조직 관계자 70여 명이 함께 대통령 후보를 만난다고 한다.

유력한 후보인 메가와티 전 대통령과 유도유노 현 대통령으로부터는 아직 연락이 없다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인사하고 짧은 인도네시아어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후다닥 지나간다. 어제, 오늘 유난히 더워서 지금 오후 2시인데, 가만 앉아 있어도 온 몸이 끈적인다. 벌써 여러 명이 망중한의 오수를 즐기는 중이다.

▲ 따식말라야 가는 길에 본 테라스형 논. 인도네시아에서도 산간지역 테라스형 논이 발달했는데, 워낙 좁은 면적으로 층층이 나눠져 기계를 이용하기 힘들다고. 저 많은 논농사를 오로지 사람의 노동으로만 한단다. 힘들게 일해도 자기 먹을 것보다 남한테 주는 게 더 많아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 윤경효

 
지난 토요일, 일주일 만에 다시 자카르타를 탈출하여 와르다씨와 함께 따식말라야(Tasikmalaya)로 출장을 다녀왔다. 산간지역에 위치한 따식말라야까지 산등성이를 구비 구비 돌아 들어가니 그 유명한 테라스 논도 보이고 계곡도 펼쳐졌다. 신선한 공기에 풀 냄새, 흙냄새라니. 아늑한 기분이다 했더니, 한국의 시골과 비슷한 느낌이어서 그런 것 같다.
 
따식말라야는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약 5시간 거리에 있고, 약 1백만 명이 살고 있는 중간 규모도시(인도네시아 사람들 관점에서)이다. 자수와 대나무 수공예로 유명하고, 상대적으로 서늘한 기후에 경관이 좋아서 관광객들도 꽤 많이 찾는단다. 1백만 명이 사는 도시치고 거리가 붐비지도 않고, 사람들이나 건물들도 여유로워 보인다. 출장길에 더위와 모기에 대비해 중무장을 하고 온 것이 무색해졌다.
 
따식말라야, 아늑한 시골느낌
 
따식말라야 주민조직 활동가들과 회의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갔는데, 모든 관심이 나에게로 집중된다. 서툰 영어로 피부가 희어서 예쁘다고 부러운 듯 말한다. 대부분의 동양인들이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흰 피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단지 피부가 그들보다 흴 뿐인데, 그 때문에 나를 예쁘다고 생각해주는 그들이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가슴 아프다. ‘흰 피부=좋다’, ‘검은 피부=안 좋다’라는 공식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 따식말라야 신규 주민조직 대표들과의 회의 모습(왼쪽). 따식말라야만의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집마다 작은 양식장을 두었다. 붕어, 잉어 등이 노닐고 있는데, 종종 낚시해서 먹는다고.     © 윤경효

▲ 따식말라야 변두리 마을 풍경. 1백만이 사는 도시치고는 너무 시골스럽다. 새파란 하늘 아래 야자수와 더불어 있는 집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심지어 말이 끄는 마차도 다닌다니. 헐~     © 윤경효

 
“세상에는 4 종류의 피부색이 있어요. 흰색, 노란색, 갈색, 검은색. 나는 노란색이고 당신은 갈색이네요. 흴수록 피부결이 별로 안 좋고, 검을수록 피부가 매끈해요. 당신은 아름다운 피부를 가졌네요”라고 말해 준다. 그것 아는가. 우리가 매끈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7~12가지의 화장품을 바르고 마사지며 팩 등을 하거나 피부과에 다니는 반면, 이들은 로션 1~2개 만으로 촉촉하고 매끈한 피부를 유지한다.
 
토요일 밤 늦게 자카르타에 도착하여 새벽녘에야 잠든 탓에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려는데, 크리스틴(Cristin)이 아침 일찍 나를 흔들어 깨운다. 오늘 아침부터 오후까지 수카르노-하타대통령 기념광장에서 자카르타의 빈민촌 사람들이 모두 모여 빈민후보 정치협약에 관한 회의가 열릴 예정이란다. 얼마나 모일지 모르지만 500명을 초대했으니 꽤 많은 사람들이 올 거라고 한다.

이건 또 웬 뜬금없는 소린고 했더니, 지난 금요일 주간회의 때 일정이 공고되었는데, 나만 몰랐던 거다. 와르다씨가 대선후보들을 만나기 전에 어떤 얘기를 할지에 대해 빈민촌 사람들과 직접 토의하는 자리라 흥미로웠던 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지도 궁금하여 졸린 눈을 비비며 서둘러 외출채비를 한다.

▲ 자바춤을 선보이고 있는 공연팀과 빈민후보와의 정치협약을 하기 위해 방안을 논의 중인 빈민촌 사람들.     © 윤경효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30분 걸려 도착하니 광장 저쪽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UPC 퍼포먼스팀이 한창 공연 중이다. 빈민촌 아이들로 구성된 전통춤 공연팀으로 이번 대선 빈민후보 캠페인뿐만 아니라 UPC의 주요 집회 때마다 퍼포먼스를 벌인다고. 자바 전통춤인데, 처음으로 보는 전통공연이라 넋 놓고 구경했다. 사진 찍으려고 고개를 드니, 넋 놓고 구경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새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어 구경 삼매경이다.
 
정치집회에 전통춤 공연
 
오후 2시. 500명을 초대했지만, 정작 모인 건 100여명 남짓이다. 유독 더웠던 날씨 탓도 있겠고, 생활에 바빠서 일수도 있겠다. 원하는 누구든 앞에 나와서 발언할 수 있는데, 몇몇 사람의 사뭇 비장함이 묻어나는 연설에 사람들의 호응열기가 뜨겁다.

1시간여의 주민 발언시간을 가진 뒤에 와르다씨가 주민들과 빈민후보에 대해 함께 논의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주민들과 직접 호흡하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이 엿보인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발언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나 100여 명에 달하는 각 주민조직 대표들과 함께 대선후보를 만나는 것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 UPC의 지원으로 진행된 UPLink 주민들의 시위현장. 부드러운 문화적 분위기가 풍겨난다.     © 윤경효

▲ 무슬림연합의 미국 및 신자유주의 정책 반대시위. 강하고 위협적인 분위기가 묻어난다.     © 윤경효

 
월요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내무부와 개발부 정문 앞에서 수라바야(Surabaya)시에서 자행되고 있는 강제철거문제에 대한 항의 집회가 진행되었다. 수라바야 시장이 애초의 약속과 달리 강제철거를 진행하고 있어 현재 주민들과 대립 중이다.

밖에서는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수라바야 대표진이 UPC 활동가와 함께 장관을 만나러 안으로 들어가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집회는 소규모로 상당히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심지어 경찰이 고생한다며 생수 한 박스를 가져다준다. 같은 날 진행된 무슬림의 대규모 집회와는 대조적이다.
 
▲ 굉장한 투사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매연과 뜨거운 햇살을 피하려고 한 모습. 사람들 생각과 달리 나는 한 번도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가는 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다. ©윤경효
저녁 7:40. 현재 내일 유수프 깔라 대통령 후보 면담을 위한 사전 토의가 한창이다. 열기가 뜨겁다.
 
어김없이 모기는 극성이로고
 
오늘과 내일 지역에서 올라온 30여명의 사람들이 UPC사무실에서 자야 하기 때문에 내 방을 비워줘야 할 듯하다. 벌써 어떤 사람이 내 방에 들어가 잠든 탓에 안야네 집에서 자기로 했다. 오늘 처음 알았다. 다른 사람이 내 자던 곳에서 자는 것을 찜찜해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UPC 활동가에게 싫은 소리했다. 무슨 죄가 있다고. 엄밀히 보면, 내가 객인데. 헐~ 오늘 밤도 어김없이 모기들이 극성이로구나. 쯥.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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