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간호사, 한국과 독일의 민간외교 역할

임정희 | 기사입력 2019/01/12 [10:06]

파독간호사, 한국과 독일의 민간외교 역할

임정희 | 입력 : 2019/01/12 [10:06]

 

▲ 왼쪽부터 남편과 필자. 자녀들 사돈들과 함깨 

 

 

어언 반세기전 독일의 간호사로 파견되어 이국땅에서 새롭게 제2의 삶을 알차게 일군 임정희여사는 이제 현역에서 은퇴하여 지난 날들을 새록새록 떠올리면서 생생히 회고하고 있다. 본지는 과거 한국의 어려웠던 시절부터 이국땅에서 고뇌와 집념의 진통속에서 전문인의 삶을 일구어낸 휴먼 스토리를 입수하여 자서전적 고백담을 독자들과 조우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1970년 무안중 수석졸업, 언니의 권고로 독일행 결정

 

71년 첫 도착한 본 대학병원 외과와 이비인후과 근무

 

 

1972년 첫 남편인 하인즈 담씨 독일생활 적응 큰 도움

 

1981년 독일국적을 취득, 영어실력 향상에도 주경야독

 

 

독일만의 독특한 제도, 교회 간호사로 새로운 변신시도

 

심신을 다루는 치료병원라인클리닉에서 2016년 퇴직

 

 

교회합창단 봉사활동과 만돌린 연주 손주 돌보기 새삶

 

모국을 늘 그리워하며, 전문역량 양국간 가교역활 소임

 

 

 

▲ 망중한! 남편 하트뭍과 손자들과 함께    


 

장학생에도 독일행 결정후 고교진학 포기

 

현재 독일의 수도 본에 거주하고 있는 저 임정희(독일 이름: Frau Jung-Hee Kühn)19521220일 임상길씨와 김귀례씨의 둘째 딸로 전남 무안군 일로면 산정리 2구 학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9602월부터 19662월까지 쌍둥이 동생 영희와 함께 일로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목포동광중학교 입학시험을 쳤습니다. 동생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중학교에 들어갔고 나는 간발의 점수 차로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집에서 1년을 쉬면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어린 소녀의 마음에 장학생이 못된 것도 억울했지만 경제적 형편상 중학진학을 막으시던 부모님도 이해는 되지만 원망스러웠습니다. 나는 그 때부터 밤마다 진학의 꿈을 꾸기 시작하고 쉬는 1년 동안 장학생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19672월에는 무안중학교 우수 장학생으로 선출되어 3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1970116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1년 반 전 독일에 간 친 언니의 권고로 독일행을 결정한 뒤 고등학교를 포기했습니다.

 

1970320일에 목포 간호조무사 양성소에 입학하여 다음해인 1971317일까지 12개월 동안 독일에 가는 꿈을 꾸며 간호조무사 공부를 마쳤습니다.

 

1971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은 목포 결핵병원에서 그리고 7월부터 8월까지 목포 고아원에서 실습하며 어린이들을 돌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당시 동생 영희, 병환이와 함께 자취를 하며 숙식을 책임졌습니다.

 

그 당시 나이 만 18, 19718월부터 1020일 출국 때까지 서울 괴테 어학원에서 3개월간 독일어를 배우면서 한국을 떠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국방부 공무원이던 첫 남편인 하인즈 담씨

  

▲  교회 간호사로 일하게 된 사연이 소개된 당시의  신문 보도  

19711020일 김포공항을 떠나 같은 날 듀셀도르프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도착한 본대학병원에서 외과와 이비인후과에 배치되어 환자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도착 후 5일 만에 근무와 동시에 독일어 강습도 시작 되었습니다. 오전엔 병동에서 수술 받은 환자들을 돌보고 오후엔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독일어 선생님인 헤르부레는 친절한 성격의 중년 남자분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마음이 슬펐지만 밤마다 꿈꾸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로가 되었고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19711220일 나는 독일에 온지 두 달 뒤에 만19세 생일을 맞았습니다. 아침마다 대학병원 직원식당에서 빵에 버터와 마밀레이드 쨈(오렌지나 레몬 등의 껍질이 재료)을 발라 먹고 신선하고 달콤한 오렌지를 까먹으면서, 그 때마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생각나 눈물을 훔쳤습니다.

 

1972년 가을쯤, 독일에 도착한지 1년 후 외과 남자 병동 근무처에서 독일 국방부 공무원이던 첫 남편인 하인즈 담씨를 만나게 되었고, 독일생활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독일어를 익히고 독일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연수차 4주간 병동에 배치되어 왔을 때 제가 도우는 일을 담당했고 그래서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1973915일에는 본 대학병원 간호학교에 입학을 한 뒤, 3년 후에는 엑사멘’(유럽연합 국가간호사 자격증)을 받고 간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대학병원 피부과 남자병동에 둘째 수간호사로 취임했습니다.

 

197612324세의 나이로 하인즈 담씨와 결혼을 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딸 시모네(Simone)가 태어났습니다. 딸 시모네는 현재(20191) 41세이고 83개월짜리 아들 루푸스와 47개월짜리 우나 딸이 있습니다.

 

 

수간호사 직책, 그리고 독일 국적 취득

 

1980414일부터 516일까지 4주간은 괴팅겐에 있는 간호대학에서 수간호사 공부를 마친 후 피부과 남자병동의 수간호사 직책을 위임 받았습니다.

 

19811030일 독일국적을 취득함과 동시에 한국국적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국적상실 통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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