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 가을여행] 스카보로의 추억을 찾아서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8/12/17 [10:22]

[요크 가을여행] 스카보로의 추억을 찾아서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8/12/17 [10:22]

선물은 줄 때와 받은 때가 있다. 아이들과의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열 서너살이 넘어서면 그 때를 잃어버린 것이다.-템즈

스카보로의 해돋이▲ GoodMorningLonDon


새로운 여행지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산악인이 새로운 등반 루트를 발견하는 기쁨에야 비할 수 없겠지만 분명 가슴을 설레게 한다.익숙한 곳에 찾아가는 맛과는 또 다르다.매년 콘웰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이번 스카보로 여행은 아이들과는 처음이다.

 

지구상의 어떤 국가 혹은 어떤 도시가 아무 의미 없는 곳이었다가 친구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 하나로 불 꺼진 창문에서 불 켜진,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뉴스 혹은 일기예보에 그 도시가 나오면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어도 친밀하게 다가온다.

 

이번 스카보로 여행은 여러 생각을 끌어왔다. 열두 살, 열 살짜리 아들녀석들과 남자 대 남자로 얘기를 나눌 때가 된 것이다. 내 자신과의 대화도 필요했고...

무엇을 어떻게 풀어낼까...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보로의 추억이라는 노래를 프린트 해 같이 부르는 가운데 여행지로 스카보로는 택한 이유를 큰놈이 물었다. 단순히 노랫말을 찾아서 가는 여행이냐는 투였다. 막둥이가 이제 영국 역사를 본격적으로 배울 때가 됐으니 요크에 들러 잉글랜드 중세 역사도 둘러볼 겸, 무엇보다 아빠가 생각할 게 있어서..... 아직 아이들은 아빠의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정리해준 영국 역사 프린트물을 대충 읽고는 휑하니 돌아선다.

 

얼마전 교회 예배 후, 집사님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그 와중에 스카보로 얘기가 나왔다.

스카보로 추억이라는 노래 배경이 어디죠? 누가 물었다.

사어먼 앤 가펑클이 미국 가수이니 당연히 미국이겠죠. 내 대답이다.

요크 옆에 스카보로 아닌가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집사님 답변이다. 결국, 핸드폰으로 검색결과 내가 틀렸다. 대중앞에서 무식함을 자랑한 꼴이라니...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 선생님과 그곳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보로 페어를 차 속에서 들으면서...당시 스카보로를 돌아보며 처음 세계 박람회가 열렸던 곳이라는 얘기와 그 박람회를 기념하는 노래가 스카보로 페어라는 것까지 얘기를 나눴었는데...어떻게 그 기억들이 송두리째 사라질 수 있는 것인가. 치매 증상인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다니....

 

요크가 아이들을 위한 여행지였다면 스카보로는 나를 위한 여행지라고나...가을이면 고인이 되신 장 선생이 무척 그립다. 등 기댈 바람벽조차 없는 이국 생활에서 가장 가까웠던 분이었으니까...창졸간에 헤어짐의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떠나신 지가 벌써 3년이 흘렀다.

 

이틀간의 요크 여행을 마치고 스카보로로 향했다. 동쪽으로 한 시간 넘게 가야 한다. 아이들은 익숙한 영국 전원 풍경에 시들하다. 아직 황무지의 맛을 모른다. 언젠가는 토마스 엘리엇이라는 시인의 황무지 를 아이들과 토론할 때가 오겠지만...아직도 매듭지지 못한 책 쓰는 일을 마지막으로 정리도 할겸 여행길을 나서게 된 것이다.

 

여행기간 동안 날씨가 신의 선물 그대로였다. 영국 날씨답지 않은, 전형적 지중해 날씨라고나...바닷가 바람은 심했다. 아이들은 파도치는 곳으로 달려가 장난을 친다.요크도 마찬가지지만 스카보로도 빈 가게들이 즐비하다. 한 때 풍요를 뽐냈던 호텔들이 철 늦은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다. 호텔들도 투숙객처럼 늙고 힘이 없어 보였다. 대부분 여행객이 은퇴한 노인들이다.

허기진 배를 호텔 방에서 피자를 주문하여 때웠다. 낡은 카펫이 꺼림칙하다. 그 느낌은 적중했다. 추위 때문이 아니라 낡은 카펫 먼지들이 내 목구멍에 기어들어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여행에서 돌아와 호된 기침으로 며칠 꼼짝을 못했다. 아이들이 아빠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스카보로에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다. 날씨는 맑았는데 마침 떠오르는 해를 가린 구름 탓에 해돋이 장관을 볼 수는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찾아갈 곳이 마땅치 않다. 대부분 관광지가 10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 스카보로 카슬 또한 문이 열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큰놈이 산길로 올라가 성터를 둘러보고 내려왔다. 막둥이는 춥다고 차에서 멀리 바닷가 주위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자치도시 시민과 그 상속인들은 매년 8월 15일(성모 마리아 축제일) 부터 9월 29일(성 미카엘 -대천사장) 성찬일까지 스카보로 시에서 시장을 열 수 있다.

스카보로의 명성을 간직한 웅장한 호텔의 모습▲ GoodMorningLonDon

스카보로의 한적한 바닷가 호텔들▲ GoodMorningLonDon



1253년 1월 22일 헨리 3세는 위와 같은 헌장을 공포함으로써 스카보로에 많은 특권을 안겨주었다. 이로써 요크셔의 한 해안도시에 불과했던 스카보로가 후기 중세 시대에 잉글랜드 전역에 걸쳐 소매상들에게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당시의 기준으로는 45일이라는 엄청난 기간 동안 시장이 열림으로써 영국 전역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덴마크, 발트 해 연안 국가들과 비잔틴 제국의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이러한 스카보로 페어는 600년 후인 1851년, 런던 하이드 팍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Expo)의 뿌리라 볼 수 있다. 보통 현대 국제 박람회 기간이 6주인 것도 이 당시 박람회 기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시장이 장기간에 걸쳐 열림으로써 단순 소매상들이 여는 소규모 시장보다 훨씬 많은 규모의 구매자와 판매자뿐만 아니라 구경꾼들까지 자연스럽게 몰려들었다.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종종 직접 물물교환이 이뤄지기도 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1383년, 이웃인 Seamer Scarborough에서 열리는 박람회가 번창함에 따라 원래 스카보로 박람회는 침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세기 초, 다른 도시들의 시장과 박람회와 경쟁할 수밖에 없었으며 세금의 증가로 인해 스카보로 박람회는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18세기에 시장은 다시 부흥했으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1788년 막을 내려야만 했다.전통적인 스카보로 페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매년 9월 원래 스카보로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소박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스카보로 해변의 성터▲ GoodMorningLonDon

스카보로 성 앞에서▲ GoodMorningLonDon

 

Scaborough Castle village 성터 앞 교회와 그에 딸린 공동묘지▲ GoodMorningLonDon

먼 훗날 아빠와의 여행을 이녀석들은 기억이나 할까...▲ GoodMorningLonDon

아이들은 여행보다 파도가 즐겁다.▲ GoodMorningLonDon



의외의 선물

 

점심무렵이 돼서 좀 더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전혀 정보도 없이 지도상에 나와있는 Whitby 라는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그곳에서 내려오는 길에 북 요크셔 황무지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해서였다.

 

조그마한 마을에 들어서자 불과 20마일 남쪽의 스카보로와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다. 우선 여행객들이 스카보로보다 북적거렸다. 물론 이곳 또한 여행객들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아이들과 가을 햇살을 즐기며 마을을 어슬렁거렸다. 멀리 강 건너 언덕 위에 폐허가 된 석조 건물이 보인다. 관광안내서에 Whitby Abby로 가장 유명한 이곳 명물이다. 영국의 대표 화가인 터너 또한 저 건물을 작품 속에 여러 번 그렸다고 나와 있다. 설레기 시작한다. 저 성당이 소설 드라큩라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드라큩라 박물관도 있다.

독일 군함에 의해 파괴됐다고는 하나 이미 그전 1909년 그림에도 와이트비 성당은 지금처럼 파괴된 채 등장하고 있다. 헨리 8세의 파괴가 치명타였다.

▲ GoodMorningLonDon

▲ GoodMorningLonDon

원본 기사 보기:goodmorninglond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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