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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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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등 21곳 박정희현판 역사성훼손"
충무공 이순신 종부 소송패소, 사적지 걸린 혈서충성자 친필 떼야
 
서울의소리

현충사 등 21곳 박정희 친필 현판 “역사성 훼손”

현충사 현판. 숙종 현판(왼쪽)과 박정희 전 대통령 현판(오른쪽)

             현충사 현판. 숙종 현판(왼쪽)과 박정희 현판(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충무공 이순신 가문의 15대 종부(宗婦)인 최순선씨가 국가를 상대로 박정희 현판을 내리지 않으면 현충사 숙종 현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현충사에 걸린 친일반역자 박정희 글씨 현판이 그대로 유지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7부(김순한 부장판사)는 22일 최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인도 소송에서 최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조선 숙종 32년(1706) 사당이 세워졌다.

 

문화재청은 올 2월 현판 교체 안건을 심의한 끝에 두 현판에 모두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점을 들어 현행 유지를 결정했고, 이에 반발해 최씨가 소송을 제기했다.

 

현충사 현판을 둘러싼 다툼은 최씨가 지난해 9월 박정희가 쓴 현충사 현판을 숙종이 1707년 하사한 친필 한자 현판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면서 벌어졌다. 당시 최씨는 현판을 교체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는 난중일기를 비롯한 충무공 관련 유물의 현충사 전시를 불허하겠다고 주장했다.

 

지난 1707년 조선의 19대 임금 숙종이 하사한 현판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정책 이후 충무공 종가가 보관해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국민성금으로 현충사가 중건되면서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현충사 현판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박정희가 현충사 성역화사업을 하면서 규모를 늘리고 새로운 사당을 지어 영정을 봉안하고 자신이 직접 쓴 현판을 내걸었다. 신사당이 세워지면서 숙종 사액현판이 걸린 본래의 현충사는 구사당으로 불리며 사원의 중심적 위치를 상실했다.

 

이에 대해 그동안 종가 측은 박정희의 현판이 충무공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며 이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숙종 현판을 걸어줄 것을 요구해왔다. 종가 측은 문화재청에 현판 교체가 이뤄질 때까지 충무공의 유물을 전시할 수 없다며 난중일기 원본과 충무공의 장검을 회수하기도 했다.

 

교체를 논의한 문화재청은 "현충사 두 개의 현판 모두 의미가 있다"라며 "숙종 사액현판을 떼어내 옮겨 설치하는 것은 그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건물과 현판의 일체성을 훼손하는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이 이런 결정을 내리자 충무공 종가 측은 "충무공 가문의 가보인 현충사 현판이 영정도 없는 빈 건물에 걸려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한개의 추모공간에 현충사란 두 개의 현판이 각기 다른 건물에 걸려 있는 것도 현충사 품격에 맞지 않는 이상한 일"이라며 조정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어 종가 측은 "종가의 가보인 숙종 사액현판이 천대받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해 충무공 영정과 함께 봉안되지 않는다면 통영, 한산도 등 충무공과 관련된 장소의 다른 국공립기관이나 의미가 평가받는 곳에서 전시 보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충무공의 15대 종손 이재국씨의 아내 최순선 종부는 "문화재청이 숙종 현판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 이런 결정을 내렸다"라며 "지금 사액 현판이 주인 자리에서 쫓겨나 한구석에서 천대받고 있는 것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현충사뿐만 아니라 전국 사적지 21곳에 걸린 왜왕에게 손가락을 깨물어 충성 맹세 혈서를 바친 매국노 박정희의 글씨 현판이 역사성을 훼손하고 있어 대거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왜군을 섬멸한 충무공을 친일 반역자의 글씨로 기린다는 자체가 아이러니다.


박정희는 1960년대부터 성역화 사업을 벌이면서 충남 아산 이충무공 사당인 현충사에 사당을 새로 짓고 현충사, 충의문, 충무문 등 3개의 문에 박정희는 뻔뻔하게도 자신의 친필 현판을 걸었다. 박정희 친필 현판은 현충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윤봉길 의사 사적지와 만인의총에도 사당을 다시 건립하고 자신의 글씨로 현판을 걸어 놓는 등 전국에 있는 위인들의 사적지 21곳에 자신의 친필 현판을 내걸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사적지의 본래 의미를 희석시키고 역사성이 훼손된다고 우려했다.


원본 기사 보기: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8/11/30 [10:04]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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