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기록37] 타클라마칸 사막 레이스2

김경수 오지레이서 | 기사입력 2018/02/23 [10:20]

[오지기록37] 타클라마칸 사막 레이스2

김경수 오지레이서 | 입력 : 2018/02/23 [10:20]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누른 채 잠시 눈을 감았다. 무엇이 또다시 나를 멀고 먼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향하게 하는지? 이미 내린 결론을 되물었다. 아직까지 직항노선이 없어 북경에서 국내선으로 중국 북서쪽 끝 신장위구르 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까지 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비행기로 호탄으로 건너가 차량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들어가야 했다. 어쨌든 모난 나를 더 다듬고, 나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자양분을 머금을 사막으로의 여정은 이제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구름 아래로 중국 대륙이 펼쳐졌다. 어둠을 밝히는 대도시의 야경과 대륙 곳곳을 잇는 고속도로 가로등 빛이 가늘게 뽑은 금실처럼 보였다 사라졌다. 대륙을 떠받치는 고봉들은 새하얀 고깔을 쓴 설봉의 모습으로 때로는 녹음으로 뒤덮인 채 굽이치듯 이어졌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중국이 꿈틀댔다. 중국의 미래가 보였다. 중국 최대의 분지, 최고의 고원, 장엄한 대초원을 간직한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대자연의 웅장한 경관 못지않게 유전과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과거 실크로드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이 지역은 지금도 중국 정부를 향해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 2016년 8월,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한 신라 고승 혜초가 걸었던 그곳에 들어섰다. 레이스 거리 100km, 제한시간 48시간. 더욱이 코스나 주변 여건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40명의 전사들은 외부의 지원 없이 자신의 장비를 짊어지고 달려야 한다.

 

 

레이스 시작 전에 경기방식과 주의사항에 대한 운영요원의 설명은 의외로 간단했다. ▸분홍색 푯대만 쫓아갈 것 ▸길을 잃으면 푯대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 그대로 서 있을 것 ▸카라카쉬 강은 깊고 물살이 너무 세서 익사할 수 있으니 CP4(56km)를 지나 만나는 강가에 절대 들어가지 말 것 ▸모두 완주하기 바람, Good luck.

 

 

오후 6시, 신발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출발한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몇 안 되는 선수들의 모습이 모두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막 한가운데 갇혀 고립된 느낌마저 들었다. 주로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산짐승처럼 눈알을 번득이며 주변을 살폈다. 그새 지평선 너머 서녘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석양은 사막마다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화려한 모습을 간직한 사하라 사막, 신비로움을 더하는 아타카마 사막, 나미브 사막은 웅장한 모습으로 기억되지만 저녁노을에 비친 타클라마칸 사막은 수수하고 꾸밈없이 다가왔다.

 

 

10시간째 잡념과 고통까지 잊고 오로지 레이스에만 몰두했다. 발톱이 검게 물들었다. 터진 발가락이 새벽녘 한기에 얼어 오그라들었다. 신발을 고쳐신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신발 끈을 풀어헤쳐 입구를 최대한 벌려 발을 밀어 넣었다. 발을 디딜 때 마다 들뜬 발톱이 들썩거렸다. ‘이 정도 통증쯤은 참아내야 진정한 마니아라고 할 수 있지.’ 스스로를 자위하며 새벽녘 CP3(43km)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으~ 아 악~~’ 첫발을 내딛는 순간 발바닥에서 전해오는 전율이 온 신경을 헤집었다.

 

 

무엇이 나를 이 지독히 외롭고 힘겨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내몰았을까. 호기심? 도전? 자아성찰? 호기심 탐구는 일상에서 충분히 답을 찾을 수 있다. 도전은 고지를 오르거나 기록 단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내면의 나를 찾기에 성전만큼 편안한 곳은 없다. 입 안 가득 꽉 찬 모래를 씹으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태양열에 녹아내린 그림자가 사막 한가운데 길게 늘어졌다.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절대 고독, 절대 강자, 절대 불가. 지금의 상황은 어떤 표현으로도 ‘절대~’ 일 수 밖에 없다.

 


하루를 꼬박 새우며 황량한 사막과 원주민 마을을 번갈아 오가며 달렸다. 아무리 비장한 결의도 포기 앞에서는 누구도 맥을 추지 못했다. ‘고통은 참아내면 되지만 포기는 영원한 상처로 남는 것을…’ 더 이상의 레이스를 거부한 선수는 나름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붉게 타던 석양 노을이 사라지고 사방이 어둠에 휩싸였다.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 타클라마칸 사막의 이틀째 밤을 맞았다.

 

 

프랑스 시인 오르탕스 블루는 「사막」이라는 짧은 시 하나를 남겼다. 그 사막에서 그는 / 너무도 외로워 /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첫사랑에 실패하고 심한 열병을 앓던 오르탕스는 사무치는 외로움 속에서 이 시를 썼다. 아마도 그는 절대 고독 속에 자신만이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몇 시간 전 투슬리코타크 마을의 농로를 지나다 모기떼에 뜯긴 자국이 퉁퉁 부어올랐다. 족히 이백 방 이상은 물린 것 같았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식빵 껍질로 한 겹 덧붙인 것처럼 흉측했다. 살갗이 가렵다 못해 감각을 잃었다. 쓰러질듯 휘청거려도 두 다리는 버거운 상반신을 지탱하며 제 역할에 충실했다. 생존의 문제 앞에 육체의 고통은 그리 대수롭지 못했다.

 

 

레이스 내내 끊임없이 불어대는 모래바람을 가르며 30시간을 넘게 달린 끝에 결승선에 바짝 다가섰다. 그곳에는 달콤한 유혹이 있다. 레이스의 종착역에는 한기를 녹여줄 장작불과 따끈한 온수가 기다리고 있다. 선수 누구도 그 이상의 호사는 원치 않았다. 호기를 떨며 대자연을 품을 듯 달려도 체력의 한계와 부상의 고통 속에 결국 완주 자체에 만족하고 만다.

 

 

최고의 기록을 위해 아등바등 할 필요가 없다. 속도가 더디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앞질러가는 선수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가 나보다 빠른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나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길을 묵묵히 갈 뿐. 나의 목표는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끝까지 가봐야 전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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