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금족령에서 풀어줄 사람을 이미 정했어"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그대를 잊은적 없다'(13-2)

이슬비 | 기사입력 2017/11/02 [10:20]

"나를 금족령에서 풀어줄 사람을 이미 정했어"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그대를 잊은적 없다'(13-2)

이슬비 | 입력 : 2017/11/02 [10:20]

제13장 그대를 잊은 적 없다(2)
  
그 이야기를 네 번째로 들었을 때, 서란은 어쩌면 파르바티가 샤르한을 시험한 것이 아니라, 샤르한이 파르바티를 시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황후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덕목은,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배우자인 천자를 믿고 따를 수 있는 신의, 그리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황후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기품이었다. 그러니 샤르한은 파르바티의 신의와 기품을 시험해봄으로써, 그녀가 황후의 덕목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시험한 것이 아닐까. 서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 서란은 파르바티도, 샤르한도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파르바티는 샤르한을 시험하여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샤르한 또한 파르바티를 시험하여 자신의 곁에 있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르바티와 샤르한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신들의 명에 의해 혼인을 한 것 외에, 서로를 위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위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대체 왜? 누군가를 나의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서로를 위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그를 위해 힘을 합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의 사람이 되었을 때, 서로를 위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운한이 돌아가고 나서, 서란은 자리에 앉아, 시종이 가져다주는 차를 한 잔 마셨다. 아침에 입맛이 없어하는 서란을 위해, 아침상에는 언제나처럼 차와 떡, 과일이 올라와 있었다. 서란은 오늘 올라온 과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과일은 서란이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타원형 과육을 감싸고 있는 붉은색 껍질에 바늘 같은 돌기가 나 있는 것이 마치 거북이 등딱지를 보는 듯하였다.
 
이게 무슨 과일이야?”

 

이건 여지(荔 支)라는 거야.”


여지?”


. 일 년 내내 날씨가 더운, 구하 대륙의 남쪽에서 나는 과일이야. 화야, 너 구하의 귀비 양씨 알지?”


, 알아.”


그 구하의 귀비 양씨도, 이 여지를 많이 먹어서 예뻐진 거래.”
 
유흔이 작은 과도를 들고 솜씨 좋게 여지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별안간, 서란은 침상을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이리 나와.”


……?”


보현.”
 
보현이 휘장 뒤에서 나와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나타난 보현을 바라보는 유흔의 표정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러나 얼떨떨했던 유흔의 표정은, 곧 떨떠름하게 바뀌었다.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냐?”
 
서란에게 독을 먹였던 5년 전 그날 이후로, 유란은 서란과 유흔을 찾아오기는커녕, 시종을 보낸 일조차 없었다. 그러니 유흔은 유란의 시종이 자신과 서란을 찾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란의 의도를 잠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유란님의 시종 보현, 유흔 공자님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공자님. 한씨가 내에서 가주의 양자는, 영주의 아들을 부르는 공자라는 호칭 대신, ‘도련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현은 이를 한사코 거부하며, 유흔을 공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저희들, 삼백족에서는 귀한 집안의 아들을 모두 공자라고 부른다며.
 
보현은 제화족 식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조아려 이마가 마룻바닥에 닿게 했다. 호칭 같은 언어습관에 있어서는 삼백족과 제화족의 풍습을 섞어 쓰는 녀석이, 인사 같은 생활예법에 있어서는 온전히 제화족의 풍습을 따르고 있었다.


유흔은 그러한 보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현의 그러한 태도는 마치 유흔에게 서란이 나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내가 서란을 따라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일어나, 보현.”
 
서란의 말에 보현이 숙였던 고개와 허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서란은 아침상에 올라온 과일 몇 개를 골라 보현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 먹어. 아직 아침도 안 먹었을 거잖아.”


감사합니다, 아가씨.”
 
보현이 고개를 깊이 숙여 서란에게 감사를 표했다. 유흔이 보현에게 물었다,
 
내 분명히 너에게 여기는 어쩐 일로 온 것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느냐. 대답하여라.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냐?”


유흔.”
 
서란이 여지 껍질을 벗기는 유흔의 손을 잡아 멈추게 했다. 유흔이 서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유흔, 내가 아까 그랬지? 나를 금족령에서 풀어줄 사람은 내가 정한다고.”


. 그런데?”


유흔, 나는 나를 금족령에서 풀어줄 사람들을 이미 정했어. 그 두 사람은 이미 내 사람이었고, 지금도 내 사람이고, 앞으로도 내 사람들일 거야. 나는 그렇게 확신해. 그리고 그건 유흔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어. 유흔도 그 두 사람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확신해.”


……?”

 
자신을 금족령에서 풀어줄 사람들을 찾았다고? 서란의 말에 유흔은 그 사람들이 누구일까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쉬이 떠올려지는 인물들은 없었다. 지금 이 한씨가에서 서란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 한 사람뿐이었다.


한데, 두 사람이라니……? 유흔은 한씨가 내에서 자신 이외에 서란의 사람일 누군가를 떠올리려 애썼다. 물론, 서란이 노예경매시장에서 데려온 보현도 서란의 사람이라면 서란의 사람일 수 있었다. 가만, 보현……? 보현……?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이슬비 홍매지숙명 오컬트무협 연재소설 관련기사목록
이슬비 오컬트무협소설 연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