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기지가 문화비축기지로

서울 마포 매봉산 옛 석유비축기지 터, 민관협치 도시재생사업 통해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7/10/16 [10:50]

석유기지가 문화비축기지로

서울 마포 매봉산 옛 석유비축기지 터, 민관협치 도시재생사업 통해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

서울의소리 | 입력 : 2017/10/16 [10:50]

가을의 한 가운데 주말을 맞은 14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월드컵경기장 옆 옛 석유비축기지 터에서 문화비축기지 개원기념 시민축제가 열렸다. 천 개의 테이블 만인의 상상이라는 주제로 열린 시민축제에서는 예술놀이터, 전시, 시장(市場), 공연, 참여 분야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 문화비축기지 입구    © 서울의소리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옆 매봉산에는 거대한 탱크들이 늘어선 비축기지가 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1973년 석유파동을 겪고 석유 비축사업을 시작하여 1978년에 석유비축기지를 완성한다. 22년간 1급 보안 시설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던 석유비축기지는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둔 2000년에 주변 환경 정비를 위해 폐쇄되었다. 이후 십수 년간 방치되던 공간은 박원순 서울시장 시기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낡은 것을 부수기보다 고쳐 쓰는 방향을 택하는, 박원순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은, 거의 버려졌던 땅에 문화비축기지라는 훌륭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2013년 옛 석유비축기지 터를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생하기로 결정한 이후, 2015년 착공하여 지난 2017년 9월 1일부터 시민에게 개방했다.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에서의 민관협치 모델이라고 밝힌 문화비축기지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다른 지역에서의 도시재생사업의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개원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    © 서울의소리

 

박원순 서울시장은 14일 문화비축기지 문화마당에서 열린 개원식에 참석했다. 박 시장은 축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은 대단한 도시"라며, "그러나 개발시대에는 세월이 지나면 보물이 될만한 옛것들을 버려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시장이 되고 나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다며, 문화비축기지 개원이 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은 런던과 비엔나의 유사 사례를 거론하며 서울도 그러한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하여 "그곳에서는 주로 고정된 전시를 하지만 이곳은 시민의 참여로 채워지는 공간"이라며, "그들도 서울을 부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석유비축기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고건 전 서울시장 덕분이라며 이후 그 공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문화비축기지는 서울시민의 협치와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며, 탱크도 중요하지만 그 앞의 비어있는 공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공간이 더 많은 문화로 채워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문화비축기지 착공 전 땅을 점유하고 있던 문화로놀이짱 등을 거론하며 문화비축기지는 모두와 함께 채워나가는 공간임을 강조했다. 박 시장은 문화비축기지가 있게 한 시청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축사를 마쳤다.

 

▲ 신축 탱크(T6) 앞에서 내려다 본 문화마당(T0)    © 서울의소리

 

지난 14일 시민축제 첫날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넓은 공간인 문화마당에는 개원식 무대를 비롯한 크고 작은 무대와, 아이들이 즐길 놀이터, 사람이 옮길 수 있는 플라스틱 통에 화분을 심어 만든 이동식 텃밭 등이 설치되어 있다. 점심 시간 무렵부터 해질녘까지 곳곳에서 작은 행사들이 열렸으며, 밤에는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달시장과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는 밤도깨비 야시장이 열려 먹거리와 공예품 등을 판매했다.

 

과거 탱크가 있거나 있던 자리는 공연장, 복합문화공간, 전시실 등으로 개조했다. 이렇게 조성된 공간에서는 문화 공연을 즐기거나 비축기지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다. 이날 탱크 건물에서는 설치 미술 전시, 기록영상 상영, 비축기지 역사 전시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또한 이날부터 시작되는 시민 투어 프로그램은 직원과 활동가가 비축기지 전체를 돌며 시민들에게 비축기지의 역사, 조성 과정, 탱크별 공간 활용 방향 등을 설명하는 코스이다. 이 프로그램은 사전 신청을 받아 올 연말까지 운영한다.

 

▲ 야시장 먹거리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    © 서울의소리

 

이날 먹거리 시장에서는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식기를 빌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었다. 일회용품 소비를 지양하는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이날 열린 문화비축기지 달시장과 밤도깨비 야시장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사전에 식기를 빌려 먹을 것을 담아 먹은 후 설거지하여 반납하거나, 식기를 빌리지 않은 경우 실내 식당에서처럼 다 먹고 식기반납소에 식기를 반납해야 한다.

 

먹거리를 파는 모든 상점을 둘러본 결과 일회용품 제한이 엄격하게 지켜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다수의 상점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여, 당위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나타내었다. 그럼에도, 야외 축제에서 식기를 빌리기 위해 줄을 서고 자신이 먹은 식기를 세척하는 모습은 특이한 광경으로, 이를 취재하기 위해 나온 방송사 카메라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문화비축기지는 특정한 목적을 가진 공간이 아니며, 그 내용은 시민의 참여로 채워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원기념 시민축제가 끝난 이후에도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의 프로그램들이 끊임 없이 이어지며, 월드컵경기장 바로 옆에 있어 공간 그 자체로도 나들이하기 좋은 도시 공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개원식 축사에서 밝힌바와 같이, 서울 곳곳이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문화비축기지처럼 자유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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