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농민 생명평화, 더욱 절실해지는 때

1주기 추모대회 23일 오후 7시 광화문 중앙광장, 3천여명 참가

유미자 기자 | 기사입력 2017/09/24 [09:07]

백남기농민 생명평화, 더욱 절실해지는 때

1주기 추모대회 23일 오후 7시 광화문 중앙광장, 3천여명 참가

유미자 기자 | 입력 : 2017/09/24 [09:07]

생명평화일꾼 고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대회가 23일 오후 7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대회에는 부인 박경숙씨 등 유가족 박원순 서울시장 등 각계각층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그분은 불의앞에 항거하고, 진리앞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백남기농민 1주기 추모대회는 김덕진 백남기투쟁본부 공동집행위원장(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추모대회는 정현찬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가톨릭농민회 회장)의 대회사와 김윤진(중앙대학교 사회학과 17학번)학생의 약력보고 추모영상 이소선 합창단의 추모공연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추모사를 통해 “백남기농민이 마지막을 외친 쌀값 보장, 밥쌀 수입 반대의 외침은 단순한 생존권적인 요구를 넘어 한국농업의 절규였고, 그분의 철학이 담긴 간절함이었다”면서 “그래서 우리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위에 걸린 ‘쌀은 생명이다’라는 흰색 현수막이 백남기농민의 말씀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백남기농민의 생명평화가 더욱 절실해지는 시대”라면서 “대결과 냉전의 시대를 걷어내고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만들어가야 함에도 문재인정부는 불행하게도 한미동맹의 낡은 틀안에 갇혀 민족 대결만 고조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의장은 이 같이 말한 후 “문재인정부가 현재와 같은 외교정책과 통일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박근혜정부와 아무런 차이도 없는 정부가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다시 한번 불의앞에 진리를 앞세우며 생명과 평화를 만들어갔던 고 백남기농민을 추모하며 그 유지를 받들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김민문정(한국여성민우회 대표) 공동대표는 “저는 물대포에서 뿜어내던 그 날의 물줄기를 생생히 기억한다”면서 “우리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며 국가가 저지른 폭력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폭력에 안타깝게도 선생님은 희생되셨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2015년 11월 14일,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에 대한 열망으로 서로 연결되었고 그 연결은 광화문 촛불광장을 통해 확장되고 강력해졌다”면서 “다시는 국가폭력에 의해 그 어떠한 희생도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의 연결은 앞으로 더욱 공고해지고 강력해질 것”이라고 추도했다.

 

최종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직무대행은 “백남기 농민이 박근혜 정권의 무도한 국가폭력에 쓰러지신 후, 우리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다시 눈을 뜨지 못한 채 저희 곁을 떠나신지 1년”이라면서 “오랜 세월 백남기 농민이 생명 평화의 마음으로 일궈낸 밀밭은 세 번째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이라는 국민의 요구가 여전히 높다”면서 “변화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백남기 농민이 심은 민주주의의 밀알은 바로 우리 가슴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직무대행은 이 같이 강조한 후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며 민주노총이 약속드리겠다. 민주주의와 평등, 생명과 평화가 숨쉬는 세상을 만들고자 평생을 노력하셨던 당신의 뜻을 쉼 없이 이어가겠다”라고 약속했다. 

 

 

▲이날 대회에서 이소선합창단은 <불바람 그대>라는 노래를, 송경동 시인은 추도시 <시대의 밀알이 되어 우리 함께 가리>를 낭독했다. 가수 이상은씨는 <언젠가는>을 부르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 유미자

 

 

한편,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했던 백남기 농민은 경찰의 살인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이후 317일간 전혀 회복되지 못한 채 지난해 9월25일 서울대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다.

 

경찰의 살인진압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그 경찰들은 백남기 농민이 운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대병원에 경찰병력을 투입하여 강제 부검을 시도하였고, 이에 맞서 유족들과 수많은 시민들은 백남기농민을 지켜내기 위해 40여일간이나 장례도 치루지 못한채 무도한 정권과 싸움을 벌여야 했다. 결국 시민들의 힘으로 강제부검을 저지하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의 촛불은 광화문광장으로 옮겨 붙어 박근혜 퇴진촛불의 밑거름이 되었다.

 

위대한 촛불의 힘으로 ‘나쁜정권’을 쓰러뜨리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그제서야 서울대병원은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정정하였고, 경찰은 껍데기뿐인 사과였지만 사과를 했다. 그리고 1주기를 앞둔 9월19일, 정부는 ‘백남기 농민 사건은 공권력의 난폭한 사용으로 인한 사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공식 사과를 했다.

 

이에 백남기 투쟁본부는 정부의 사과를 받았지만 아직까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등의 과제가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다시는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백남기농민 1주기 추모대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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