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국은 여인들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연재무협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꽃이 시들어도'(11-1)

이슬비 | 기사입력 2017/09/03 [11:38]

"부상국은 여인들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연재무협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꽃이 시들어도'(11-1)

이슬비 | 입력 : 2017/09/03 [11:38]

 제11장 꽃이 시들어도(1)
 

<지난 글에 이어서> 칠거지악(七 去 之 惡).


조강지처(糟 糠 之 妻)를 중시 여기는 유교사회에서는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처를 함부로 내칠 수 없다 하였다. 그러나 처가 이를 믿고 방자하게 굴 것을 염려한 유학자들은, 처를 내칠 수 있는 일곱 가지 죄를 만들어, 여인들이 방자한 행동을 하지 않고 음전하게 굴 것을 요구하였는데, 이를 칠거지악의 죄라 한다 하였다.


이 칠거지악의 죄에 해당하는 일곱 가지 죄악에는,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불순구고(不 順 舅 姑)의 죄, 자식을 낳지 못 하는 무자(無 子)의 죄, 남편을 두고 다른 사내와 부정한 행동을 하는 음행(淫 行)의 죄, 남편의 첩에 대해 질투하는 투기(妬 忌)의 죄, 유전병이나 전염병 등의 나쁜 병을 얻는 악질(惡 疾)의 죄, 말을 많이 하여 쓸데없는 소문이나 말썽을 일으키는 구설(口 舌)의 죄, 손버릇이 나빠 도둑질을 일삼는 절도(竊 盜)의 죄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죄악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무자의 죄였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이 칠거지악의 죄를 명분 삼아 부()가 처를 쉽게 내칠 것을 염려하여, 처가 칠거지악의 죄에 해당하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절대 내칠 수 없는 세 가지 경우를 만들었는데, 이를 삼불거(三 不 去)라 하였다.


이 삼불거에 해당하는 세 가지 경우는,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을 때, 함께 부모의 3년 상을 치렀을 때, 혼인 전에 가난하였으나 혼인 후에 부자가 되었을 때였다.
 
세인들은 칠거지악과 삼불거를 지키는 곳은 유교국가인, 구하의 명과 사비국뿐이라고 여겼으나, 부상국의 무가들 또한 칠거지악과 삼불거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부상국의 무가들이 유교를 신봉해서도 아니요, 남녀가 평등하지 못한 가풍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김씨가를 제외한, 북방의 제화족 무가일수록 여성을 남성보다 높게 여기는 가풍을 가지고 있어 남성 후계의 행실과 권한을 제한하고, 남성을 억압하는 경우가 많아, 명과 사비국에서는 이를 두고, ‘부상국은 여인들이 다스리는 나라이다라고 개탄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국의 무가들이 칠거지악과 삼불거를 지키는 것은, 현재의 부상국이 칼이 지배하는 세상, 힘이 지배하는 세상, 약육강식의 세상,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짓밟히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혼란의 시대는 자연스레 무가들 간의 합종연횡을 불렀고, 이는, 어제의 동지였던 가문이 오늘의 적이 되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하여, 무가의 혼인이란, 가문과의 관계에 의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관계였고, 서로의 배우자를 적으로 여겨야 하는 관계였다.


따라서 무가에서는 유교의 칠거지악을 가져와, 배우자 가문과의 관계가 틀어졌거나 깨어졌을 때, 배우자와 이혼하는 명분으로 삼았고, 삼불거를 가져와 배우자 가문과 전쟁이 벌어져 그 가문이 멸문했을 때 배우자를 첩실이나 시종, 노예로 강등시키는 근거로 삼았다.


하니, 부상국 무가의 칠거지악이란 그저, 배우자 가문과의 관계에 따라 배우자와 이혼하기 위한 근거일 뿐이요, 삼불거란 삼불거에서 두 가지 경우를 뺀 일불거로, 배우자 가문의 멸문 여부에 따라 배우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 근거에 불과했다.
 
그리고 운한의 가문인 상씨가에서는 한 달 전, 가주 아연이 갓 난 손녀 신영을 기저귀를 찬 채로 김씨가에 출가시켰고, 정옥은 지금 그를 빌미로, 운한을 노예로 강등시킬 칠거지악의 죄를 찾고 있었다. , 정옥은 운한을 노예로 강등시킴으로써, 자식들을 끔찍이 아끼는 아연에게 한씨가와의 동맹을 소홀히 여긴다면, 추후 한씨가에 장가 올 너희 가문 남자들은 모두 이 꼴이 날 것이라는 경고를 전달하려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운한은 정옥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못했다. 정옥의 정부(正 夫)인 소씨가 방계 출신의 추을은 정옥과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지만, 추을보다 먼저 정옥과 혼인한 운한은 딸도 아들도 낳지 못하였다.
 
유흔이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한가운데에 놓인 탁자 위에는 하얀 자기로 만든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유흔은 방 안의 공기를 콧속 깊이 들이마셨다. 공기 중에는 묘한 약초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아침부터 차를 드시나 봅니다?”
 
유흔은 부러, 차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띄웠다. 운한은 성정이 이른 봄의 찻잎처럼 푸르고 맑은 사람이라 그만큼 상대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함정에 잘 빠지기도 하였다.
 
, 저의 본가에서 귀한 용정차를 보내와서요. 어머님께서 본인이 드실 것을 저에게 나눠 보내주신 터라, 자식 된 도리로 아니 맛 볼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부상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운한의 효심은 스스로를 함정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유흔은 다시 한 번 방 안의 공기를 콧속 깊이 들이마셨다. 이번에도 묘한 약초 냄새가 폐부 깊숙이까지 스며들어왔다.
 
참으로 향기가 좋습니다. 용정차에서 어찌 이런 향이 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좋은 향이군요.”


그렇습니까.”


그래서 말입니다만, 상씨가 가주님께서 보내주셨다는 용정차를 저에게도 조금 나눠주실 수 있겠습니까?”
 
운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유흔은 그런 운한의 반응을 살피며 주전자로 손을 가져갔다.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차라, 쉬이 나누어 주는 것이 저어되리라는 것은 잘 압니다. 하나, 본래, 차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또 다도(茶 道)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귀한 차를 서로 나눔으로써,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그로 인해 서로가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자형께서 저와 함께 다도를 이루는 다우(茶 雨)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만.”
 
운한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쌓여만 가는 것을 유흔은 놓치지 않았다. 유흔은 시종에게 빈 찻잔과 다식(茶 食)을 내오게 했다.
 
부용고라는 것이 말입니다. 실은, 다식으로 먹기에도 좋은 과자입니다. 연꽃을 닮은 생김새는 군자를 뜻하며, 너무 무르지도 않고 너무 단단하지도 않은 식감은 중용의 미덕을 뜻하고, 베어 물었을 때 입 안 가득 번지는 단맛은 마치 묵이 종이에 스며드는 것을 닮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까…….”
 
평소 그리 친하지도 않던 사람이 아침 댓바람부터 다짜고짜로 찾아들어와, 차를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하더니, 이제는 함께 차를 마시자며 자신의 찻잔을 준비시키는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두고, 다식으로 먹기에 좋다고 칭찬하며, 먹어볼 것을 강권하는 조금은 황당하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아침부터 이게 무슨 짓이냐며 쫓아낼 법도 하건만. 운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그저 유흔의 시선을 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글에 계속>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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