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확실성의 상황, 두려운 전쟁의 그림자

우리 시대 가장 두려운 적은 전쟁 그 자체

권종상 | 기사입력 2017/08/13 [11:33]

이 불확실성의 상황, 두려운 전쟁의 그림자

우리 시대 가장 두려운 적은 전쟁 그 자체

권종상 | 입력 : 2017/08/13 [11:33]

사람이 늘 보던 것을 보지 못하면 불안합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발생한 산불과 들불로 인해 발생한 연기가 북쪽에서 내려와 워싱턴주를 덮으면서 시애틀의 여름을 상징하는 푸른 하늘이 뿌옇게 변했습니다. 출퇴근 때, 특히 퇴근 때 프리웨이를 달려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늘 손에 잡힐 듯 보이던 눈 쌓인 레이니어 산을 못 본지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최악의 산불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산불이 이 몇년동안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미주의 건조화, 그리고 덥고 건조한 날씨가 만나면서 어디선가 자연 발화했을 불씨가 거대한 재앙이 된 것입니다. 이 불길이 점점 캐나다의 뱅쿠버 쪽으로 가까이 오면서, 불길이 미국 쪽으로 번질 거라는 예상까지 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합니다. 

비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체부가 처음으로 비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맑은 날씨는 기분을 좋게 하지만, 비라도 많이 내려 이 흐릿함을 씻어내고 산불을 꺼 줄 수 있다면 폭우 속을 걸으며 우편 배달을 하더라도 기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불안감은 씻길 거니까. 

미국의 방송과 신문에서 연일 김정은과 트럼프의 설전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신문 1면에 두명의 얼굴이 보이고, 신문 만평은 기저귀를 찬 천방지축 아기 모습으로 그려진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싸움이라기엔 휘발성이 큽니다. 마치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일촉즉발의 기운이 그렇게 몇년을 돌았던 것처럼, 이상한 기운이 미국을 덮고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두 나라의 지도자가 뿜어내는 이 기운이 제가 사는 미국을 뒤덮고 있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젊어서 무모한건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늘 스스로 트위터를 통해서도 또라이 인증을 하고 있는 트럼프 역시 불안한 존재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이 불안한 기운이 얼른 걷혔으면 좋겠습니다.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대로, 아마 이렇게 가장 어둠이 짙고, 전운이 감돌 때가 사실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때일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북미간의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평화를 향한 걸음걸음을 옮길수도 있겠지요. 우리나라도 사실은 지금 갑작스레 찾아올 평화에 대비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전쟁과 평화, 우리가 모두 마음으로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오든, 그것이 우리 스스로 가져올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이 마음에 걸립니다.  우리 군대도 우리 마음대로 운용할 수 없는 나라, 그리고 갑질 박찬주 대장 문제에서도 보듯, 썩은 지휘관들로 채워진 우리 군으로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제대로 치뤄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겠지요. 

비바람이 조금 불더라도, 이 불확실성이 걷히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정부가 이 불확실성을 걷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결국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북-미 당사자이지만, 우리가 이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 불확실성의 구름이 걷히는 날, 남과 북이 다시 한 테이블에 앉아 평화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

벗님의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저보다는 훨씬 세상을 보는 눈이 출중한 분입니다. 

왜 손무는 백전백승을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 시대 가장 두려운 적은 전쟁 그 자체-

작성자: 나그네
출처: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모임/ 페이스북 시애틀 늘푸른 연대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군사학 책으로 칭송받는 손자병법의 가장 유명한 구절을 꼽으면 바로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일 것이다. 말 그대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손자병법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 했다고도 일컬어지는 이 유명한 구절을 자세히 보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 아니라 백전불태(百戰不殆)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이 백전불태를 백전백승으로 잘못 알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군사학의 시조이자 병성(兵聖)으로까지 칭송받은 손자가 백번 싸워 모두 이기는 것을 논하지 않고 왜 백번 싸워 위태롭지 않음을 추구했을까. 많은 이들이 손자가 백전백승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지만 손자는 애초부터 싸우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던 냉정한 공리주의자이자 철저한 현실론자였다.

무수한 전쟁과 다툼이 일상이었던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갔던 손무는 고금의 전쟁 사례를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싸움에서 이기고도 나라가 쇠망하거나 도리어 이익보다 손해가 막심했던 경우가 엄청났음을 주목했고 이후 자신의 병법서에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최선이자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임을 못 박는다. 그랬기에 그는 ‘지피지기하면 백전불태’ 라 했지 백전백승이라 말하지 않은 것이다.

요컨대, 손자시대만 해도 국가의 군주나 제후들은 공명심이나 시기심 혹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전쟁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아니 이러한 경향은 인류가 전쟁을 시작한 이래 아주 오래동안의 추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자주 싸운 결과 이긴 승자도 결국은 국가가 쇠락하거나 도리어 패권을 잃는 경우가 속출했다. 손자의 지적대로 전쟁은 돈과 인력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 극단적인 소모성향을 가지고 있고 설령 싸워서 이겼다 하더라도 인명손실이나 국력의 소진이 많을 경우, ‘상처뿐인 영광’이나 ‘허울 좋은 승리’만 남게 된다.

천하의 강대국 중 다섯 번이나 계속 이긴 나라는 화(禍)를 불러 들였고, 네 번 이긴 나라는 피폐(疲弊)해졌으며, 세 번 이긴 나라는 패자(覇者)가 되었고, 두 번 이긴 나라는 왕자(王者)가 되었으며, 한번 이겼으나 이를 지켜나간 나라는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다.
-오자 병법에서 발췌-

같은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전략가 오기 역시도 여러 번 싸워서 득 될게 하나도 없다는 지적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불과 다섯 번 만 싸워도 재앙이 되는데 하물며 백전백승이라니. 손무가 백전백승을 말하지 않은 것은 싸우면 싸울수록 전쟁은 국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큰 재앙과 화를 부르는 괴물임을 간파해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강성함을 자랑했던 고구려다. 고구려는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와의 맞대결에서도 모두 승리했고 수를 이은 당과의 전면전에서도 당태종을 망신시켰을 만큼 전투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연이은 수·당과의 전면전과 분쟁이 오래 이어지자, 결국 고구려는 서서히 피폐해졌고 내부의 알력이 심해졌으며 이것이 화근이 되어 끝내는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전쟁의 논리와 이치는 이미 총력전의 시대가 되기 전부터 이처럼 확고하고도 불변이었다. 하물며 국가의 모든 요소들이 모두 투입 되는 총력전의 시대에 접어든지 오래인데, 만약 전면전이 발생하게 되면 교전당사국은 물론이요, 주변의 관련국들도 모두 극심한 손해와 불이익에 직면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작금의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바라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금처럼 미국과 북한이 서로 극단의 대치를 추구하면 둘 다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미국과 북한은 공공연하게 전쟁을 논하고 있다. 전면전 상황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장담하고 보장한다. 과거 50년대 한국전쟁 때보다 더 끔찍하고 확실한 지옥문이 다시 열릴 것은 분명하다. 다행이라 해야하나, 아직까지는 말로만 하는 전쟁의 양상이지만 지금 이런 식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한반도 관련 당사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막장의 형국이다.

대기 중에 인화성 물질이 짙게 기화되면 아주 사소한 불꽃 하나로도 엄청난 화마(火魔)가 우리를 덮칠 수 있건만, 8월 한반도를 감싸는 전운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으며 특히나 그 한복판에 서있게 될 우리는 가장 큰 패배자가 될 것이다. 막말로 한국전쟁이 다시 터지기라도 하면 우린 지난 수십 년간 애써 이룩한 성과물을 한 번에 날려 먹게 될 것이며, 특히나 한반도 이남에 집중 건설된 다수의 원전들 중 하나라도 터지기라도 하는 날엔 한반도 전체가 후쿠시마나 체르노빌을 능가하는 재앙의 땅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되는 날엔 한반도에 다시 사람이 살게 되는 시점은 25세기나 되어야 할 거다. 한반도는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작다. 원전 중 하나만 후쿠시마 꼴이 나도 한반도 전체가 인간이 살기엔 아주 부적합한 땅이 되고 만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과거 한국전쟁으로 구매하지도 않았던 복권의 대박이 났던 일본 역시 루저가 될 개연성이 아주 커졌다. 일본에는 다수의 미군기지가 존재하고 북의 핵탄도 미사일이 가장 현실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목표물들이 일본엔 널리고 널렸다. 4천만 인구가 밀집해 있는 도쿄 일대야말로 너무나도 매력적인 먹잇감 아니겠는가. 

이제 막 대국의 굴기를 시작하려던 중국 역시도 자신의 앞마당에서 다시 한 번 50년 한국전쟁 상황이 재연된다면 역시나 득보단 실이 막대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고 막강한 군사력과 국력을 자랑하는 초강대국 미국은 괜찮을까.한반도 전면전 상황이 재연되면 여태까지 누렸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구도가 깨질 공산이 가장 크다는 개연성과 함께 동북아에서 미국이 누렸던 기득권들도 고작 북한 하나 때문에 모조리 달라지거나 상실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미국이 얻을 쥐꼬리만한 이익이나 영광에 비하면 잃거나 달라지는 것은 너무도 많다. 

만에 하나 미 본토가 북핵에 의해서 9.11상황과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면 이후 미국이 어찌 달라질 것인가 상상해보라.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전면전을 하기에 작금의 상황은 너무도 부적합하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짓이 아니다.

손무나 오기 같은 옛 시대의 전략가들이 잦은 전쟁을 경계한 것은 전쟁 그 자체가 주는 불확실성과 의외성이 인간의 머리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전쟁을 하기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선으로 보았던 것이고 백번 싸워 모두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백번을 싸우더라도 위태롭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봤다.

클라우제비츠가 역설한대로 전쟁은 피를 흘리는 극단의 정치수단이다. 그러나 이제 그 극약처방의 한계와 부작용은 너무도 많은 사례를 통해 알려질 만큼 알려졌고 특히나 히로시마 원폭 투하이후 활짝 열린 핵무기의 시대에 가장 무서운 적은 라이벌이나 상대국가가 아니라 바로 전쟁 그 자체라는 점을 직시해야만 한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면전이 발생하면 이번에도 주변 당사국들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모두 이 전쟁에 말려들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과거 50년 한국전쟁 시점과는 달리 각 국이 얻을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막심하다는 점도 분명하다. 지금은 지도자의 수사법이나 자존심만으로 전면전쟁을 하는 시대가 전혀 아니다. 결국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으며 트럼프에게 달려있다. 

현재 미군의 전력으로 백번 싸워 백번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백번 다 싸우려고 하다간 아주 위태로워진다. 이미 2차 대전이라는 큰 싸움을 통해서 미국은 세계 1강의 위치를 굳혔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잦은 전쟁개입으로 여러 번 위신의 손상과 국력의 낭비 그리고 내정의 피폐를 부른지 오래다.

이라크 아프간 전쟁의 개입으로 미국이 탕진한 돈보다 몇 백배 더 많은 재정손실과 인력의 희생이 불가피 한 전쟁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지금 한반도 핵 위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기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이 최선이자 유일한 현실적 타개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지도자는 행동할 준비가 끝나지 않는 한, 적을 위협하지 않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행동을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갈한 미 상원 군사위원장 존 매케인 의원의 말은 참으로 시기적절했다. 하노이 힐튼에서 무려 5년이나 전쟁이라는 지옥을 몸소 체험했던 원로의 입에서 나온 쓴 소리는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고 협상의 여지가 있으며 미국 내에도 백전백승이 능사가 아님을 간파하는 인물이 있음을 보여주니 말이다.

손자는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그리고 싸워도 위태로워지지 않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지금 한반도의 관련 모든 국가의 지도자들이 이 금언의 맥락과 속내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출처] 시애틀에서... 권종상


원본 기사 보기:서울의소리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