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나치즘의 동방판 기획범죄"

[제언] 김기춘 '단죄' 앞 발뺌 늙은범죄자, 조윤선 장관은 그럼 알바?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 기사입력 2017/08/07 [10:27]

"블랙리스트, 나치즘의 동방판 기획범죄"

[제언] 김기춘 '단죄' 앞 발뺌 늙은범죄자, 조윤선 장관은 그럼 알바?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 입력 : 2017/08/07 [10:27]

나는 7개월 전에 인권연대의 게시판에 민사재판의 맥락에서 ‘블랙리스트 소송’을 제안하였다. 2017년 7월 27일에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1심 형사재판이 매듭지어졌다. 재판에 나타난 문제점을 토론하고자 다시 쓰기로 한다. 아마도 이 문제는 고등법원에서 다투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김기춘에게는 연옥의 시간이 왔다. 나쁜 시대의 권력엘리트로서 김기춘의 날은 저물어간다. 그는 형사재판을 받는 것이 마뜩치 않았던지 차라리 정치적 패배자로서 독배를 마시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그는 항우도 아니고, 사육신도 아니다. 그는 <청문회>에서도, 영화 <자백>에서도 그저 책임 앞에서 발뺌하는 초라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정권이 망했다고 해서 그 정권참여자들을 모두 처벌하지는 않는다. 그가 권좌에 있을 때에는 정권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타격하는 데에 법을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법치국가의 법은 불법과 범죄를 자행한 자들만 겨냥한다. 김기춘이 유죄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 같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의 무죄에 대해서는 모두가 황당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장관이 알바인가?”라는 댓글도 있다(요즘 알바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민망한 표현이지만). 눈 딱 감고 진실에 대하여 치열하게 무지 하고픈 조 전장관의 열망이 결실을 거둔 것일까?

 

변호인의 뛰어난 기술과 네트웍이 통한 것일까? 어쨌든 국가개조와 좌파척결이라는 문체부의 사명과 당해장관이 무관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판결 부분은 관료제의 본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변명에 녹아버린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오물통에 빠져서 오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기술은 없다.

 

이 판결에서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책임에 관한 것이다. 판사는 중의적으로 말했다. 대통령이 구체적인 범죄를 지시하지 않았으므로 책임이 없고, 보수적인 정책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좌파를 배제하는 정책을 펼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견해가 모두 틀렸다고 본다.

 

또한 대통령은 무죄이고 블랙리스트 작성자만 유죄라는 재판의 결론도 틀렸다고 본다. 대통령의 발언이나 지시가 정상적인 정치행위라면, 이를 받들어 구체화하고 수행하는 행위도 무죄가 되어야 한다. 반대로 김기춘과 문체부 공직자들의 행위가 범죄라면 권력자로서 그 기본구상을 제공하고 실행을 지시하고 이행여부를 감독하고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대통령의 행위도 범죄에 해당한다.

 

이 쟁점은 고등법원에서 어느 하나의 방향으로 재정리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블랙리스트 작성자들이 모두 유죄가 되거나 모두 무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판사가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일부러 이렇게 판결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진다. 판결은 어쨌든 일관성이 없다. 

 

이제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대통령의 범죄에 대해서 거론해보자. 판사는 대통령이 구체적인 범죄계획에 관여하지 않아서 죄가 없다고 본 모양이다. 이러한 시각에서라면 대통령이 범죄자로 처벌받기가 참으로 어렵겠다. 지금도 자신이 시민들에게 총을 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는 전두환의 상투적인 변명이 떠오른다.

 

최고 권력자는 눈빛으로, 외마디로 통치한다. ‘배신자’ 또는 ‘진실한 사람’과 같이 권력자의 말은 단도처럼 짧고 암시적이다. 그래서 권력이다. 문체부직원이나 김기춘이 대통령의 의향과 무관하게 자가발전하여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운용하였다면 대통령은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좌파척결이나 국가개조를 말하고 영화제작투자사의 사장자리까지 흔드는 대통령이 블랙리스트의 발상과 무관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이해이다.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범죄의 총연출자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고작 중간기획자나 실행행위자들이다.

 

국민은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공천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척결의 달인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하였다. 박 전 대통령은 무능력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피아를 구별하고 찍어내기 부문에서는 아버지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블랙리스트나 배신자명부(공천살생부)는 그의 전문영역이다.

 

보수적인 정치인이 자신의 보수적인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으니 좌파를 배제하는 정책을 펼 수도 있다는 판사의 견해는 그럴듯하지만 더 생각해보자. 판사는 이 일이 공약의 이행이므로 별 문제가 없다면서 그를 당선시킨 국민에게 책임을 슬쩍 떠넘기는 것 같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히틀러가 유대인의 절멸을 내걸고 당선되었으니 유대인을 이제 척결해도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물론 유대인학살과 비판적인 문화예 인의 지원배제가 동일한 수준의 범죄와 악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판사는 정책과 범죄를 구별하지 못하는 미끄러운 언덕에 이미 서 있다.

 

원론적으로 생각해보자. 보수적인 정책을 내걸고 당선되었으면 보수적인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하고, 진보적인 정책을 내걸고 당선되었으면 진보적인 정책을 펴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그 정책이 인권,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원리에 반하는지 여부를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최고 권력자는 지지자의 이름으로 국가와 헌법을 처분하고 반대자를 몰살시킬 권한까지 획득할 수는 없는 것이다. 판사는 정책적 재량이라는 관념으로 헌법에 구멍을 내고 있다.

 

좌파척결이나 국가개조는 이른바 표적 집단을 상정한다. <국제형사재판소규정>을 들여다보면 블랙리스트의 의미를 어느 정도 구체화할 수 있다. 어떤 정책이 특정 집단이나 확인가능한 집단에 대한 광범위한 또는 체계적 공격의 일환으로서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민족적, 국민적 이유로’ 박해를 가하거나 비인도적인 행위를 의도한다면 그것은 ‘인도에 반한 죄(crime against humanity)’에 해당한다(제7조).

 

이는 박근혜와 김기춘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규범적 시발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헌법상의 평등의 의미를 구체화하였다. 이에 따르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 용역, 재정지원 등에서 차별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로 규정한다(제2조).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정부지원사업에서 배제하는 것은 헌법위반이다. 정부정책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인 영역이고, 공적인 영역은 권력자의 사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평등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박근혜와 그 도당들은 문화 예술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좌파척결을 내걸고 정치적 탄압을 자행하였기 때문에 반민주적인 세력으로 단죄해야 한다. 박근혜와 김기춘은 자유민주주의를 나치화하였다. 판사가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비판적인 예술인들을 억압하기 위한 발상을 보수적인 정책으로 상투화하는 것은 나치즘의 동방판이다.

 

어느 정권이든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민족적 이유로 특정집단을 표적으로 삼아 정책을 펼친다면 그것은 정치적 박해이고 때로는 인도에 반한 죄로 상승한다. 되돌아보면 긴급조치를 비롯하여 유신시대에 이루어진 억압은 박정희와 김기춘의 인도에 반한 죄들이다. 인도에 반한 죄에는 시효가 없다고 주장하는 담대한 검사와 판사가 조속히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어느 정권이든 헌법의 기본원리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국민적으로 수긍할만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것은 주로 경제정책이나 조세정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수행의 결과는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기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천년만년 집권하겠다고,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이데올로기적 과잉에 빠져 정치적 표적 집단을 설정하여 억압과 배제를 획책하는 블랙리스트는 정책이 아니라 범죄의 기획이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인권연대] 발자국통신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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