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솔직히 고백하건대 지난 탄핵정국을 지나면서 나는 JTBC 뉴스룸의 광팬이 되었습니다. 저녁 8시부터 시작해 한 시간 반 동안 계속되는 뉴스쇼가 얼마나 흥미진진하던지요. 특히 손석희 씨의 앵커 브리핑을 볼 때마다 늘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옴을 느꼈습니다.
내가 JTBC 뉴스룸의 광팬이 된 것은 그 프로그램 자체의 매력이 큰 작용을 했지만, 다른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실망도 이에 못지않게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특히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KBS와 MBC가 처참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한 실망이 감당 못할 정도로 컸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이명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은 언론과 권력기관을 사유화해 민주질서의 근본을 흔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의 정권들도 언론과 권력기관에 자기편 사람 심어놓고 권력 보위의 방편으로 사용한 것이 아느 정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오늘은 마침 6.10 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날이군요.
전두환이 저지른 죄업 중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그렇게 언론을 사유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물러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정도로 언론을 사유화한 정권은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자기 편 사람을 심어놓고 여론을 자기네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골적으로 언론을 사유화하는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MB정권이 들어서면서 180도로 바뀌게 됩니다. 집권 초기 광우병사태로 톡톡히 혼이 난 MB는 방송 장악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 같습니다.
KBS와 MBC를 완전히 장악한 MB 아바타들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잘라내거나 한직으로 좌천하는 일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 두 방송국의 내 제자들에게서 전해들은 그들의 무자비한 횡포는 전율을 금치 못할 정도였습니다.
KBS와 MBC가 정권의 주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사업 관련 보도에서 한 점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공정한 보도를 하려 한다면 그 당시 4대강사업의 졸속 추진에 반대하는 수많은 양심적 지식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두 방송의 뉴스를 켜면 언제나 4대강사업의 허황된 청사진으로 점철된 용비어천가만 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KBS와 MBC가 공영방송 본연의 비판기능만 제대로 발휘해 줬어도 4대강의 비극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 있었다고 봅니다. 비판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이 두 방송은 끝끝내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 비극을 막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새 정부가 드디어 KBS와 MBC에 손을 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극단적 인사를 재외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KBS와 MBC를 근본적으로 손 봐야 한다는 데 감히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그런 일을 별 스스럼없이 마음대로 처리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부패한 권력의 주구이든 뭐든 임기를 보장해 주는 것이 맞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앉아 사사건건 사보타주를 하는 한 언론개혁은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새 정부가 KBS와 MBC를 망친 주범들에게 알아서 물러나라고 압력을 가하나 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또 한 번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언론 장악 운운 하며 새 정부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는 세력들이야 말로 과거 권력기관과 언론을 사유화하는 데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던 사람들 아닙니까?
어떤 보수언론은 새 정부가 KBS와 MBC를 장악해 어용언론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명박근혜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 경우에도 그런 비판은 새 정부가 정말 어용언론을 만든 다음에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영언론을 망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 그 자체가 어용언론을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공영방송의 암흑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 땅의 정의는 영원히 바로 설 수 없는 것이구요.
솔직히 말씀 드려 나 자신도 이 상황에서 새 정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알량한 원칙을 지켜 그들의 임기를 보장해 주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들의 죄과를 물어 솎아내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조그맣게나마 희망의 불빛이 보인다는 점에서는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처참하게 망가져 청취자들의 외면을 받는 공영방송을 지금 이 상태로 놓아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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